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미 Jan 18. 2023

사진실력에 미치다

적응하고 망각하는 것이 우리의 여행에 이롭다

여행에서 사진이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면 좋겠건만, 나는 싸이월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거쳐온 세대답게, 여행에서 사진은 8할을 차지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예쁘게 찍힌 사진을 보면, 찍는다고 땀을 흘리고 온갖 고생을 해도 기분이 좋아지고, 여행에서 돌아오고 나서도 간간이 사진을 들여다보면, 다시 여행 온 듯한 기분이 든다. 예쁜 사진을 인스타에 올렸을 때 댓글과 좋아요로 열렬히 호응해 주는 친구들의 반응도 빼놓을 수 없다.


물론 사진에 대한 욕심이 매번 넘쳐흘렀던 것은 아니다. 혼자 여행을 다닐 때는 사진에 대한 욕심을 자연스레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원하는 각도로, 배경으로, 찍어주는 사람이 가뭄에 콩 나듯인 데다, 삼각대로도 담기지 않는 나만의 감성도 있기 때문이다. 얼굴이 김태희나 한가인처럼 예뻤다면 어떻게 찍어도 예뻤겠지만, 그것도 아니니, 사진은 포기하는 편이 정신건강에 이로웠다. 혼자의 여행에서 할 수 없는 것이 있음을 깨닫고 일찌감치 포기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적당히 셀카나 남기고 적당히 예쁜 풍경을 남기는 것에 만족하고 익숙해졌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니 말이다.


그리고 사람은 또한, 망각의 동물이다. 멋진 사진을 남기는 것이 힘듦을 알면서도,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드니, 또다시 사진에 대한 욕심이 슬금슬금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다. 사진을 찍어줄 동생이 있다. 동생이 멋지게 찍어줄 수 있지 않을까? 영어로 각도를 이렇게 해달라느니 조금 멀리서 찍어달라느니 할 필요도 없다. 속사포로 한국말로 내뱉어도 되는 코리안 동생이 있다. 나 어쩌면 희망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여행에 미치다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멋진 사진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고 말이야!


[여행에 미치다]는 여행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인스타그램에서 보게 된 sns 페이지다. 여기에 올라오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사진을 잘 찍는지, 여행을 가고 싶게 만드는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사진이 늘 올라왔다. 나도 그런 사진 보며 여행을 꿈꿨고 그런 멋진을 남기고 싶었다. 여행에 미치다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그런 멋진 사진 말이다. 오랫동안 잠재워져 있던 나의 욕망이 다시 활활 타오르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불발. 실상은 여행에 미친 사람이 아니라 사진 실력에 미쳐버릴 것 같은 나만 존재하고 있었다.


서영이가 똥손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탓이었다.


“좀!!! 진짜 답답하다. 이렇게 밖에 못하나.”

“아 미안.. 다시 찍어줄게”

“아 잘 좀 해봐 진짜 나는 니 사진 이렇게 예쁘게 찍어주는데”

“언니가 다시 구도 좀 잡아줘.”

같은 장소에서 찍은 것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 나는 왜 자꾸 눈음 감고 있니?

내가 그렇게 어려운 걸 요구한 걸까. 나도 사진 그만 찍고 편하게 놀고 싶다. 그런데, 건질 수 있는 사진이 없으니 자꾸 찍어달라는 거다. 그냥 내가 동생을 찍어준 것처럼만 하면 된다는 데 그게 어려운 일일까. 답답함을 넘어 억울한 마음까지 들었다. 사진이 죄다 이상해 나는 인스타에 업로드조차 못하고 있는데 동생은 잘도 올린다. 사진에 관심이 많은 나는, 인스타에 못 올리고 있는데 사진에 관심이 없는 동생은 그래도 자기 사진이 마음에 드니 하나씩 올리고 있단 말이다.


더 열불이 나는 건 서영이가 사진에 관심이 별로 없으니, 내 사진을 찍어주는 열정도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찍어달라고 하면, 진짜 여기가 어딘지만 찍는 것 같다. 여기랑 내가 어울리게 찍어줄 수는 없는 건가? ‘여기’와 ‘나’는 합성한 사진 마냥 따로 놀고 있다. 사진의 구도를 모를 수도 있겠다 싶어 서영이 먼저 찍어주고 똑같이 찍어달래도, 결과는 변함이 없다. 그래, 똥손이 한 번 만에 금손이 될 수 있나. 이대로 계속 찍어달라고 요구하다간, 서영이랑 나 둘 다 폭발할 일이 불 보듯 뻔했다.


결국 평화로운 자매 여행을 위해, 삼각대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어쨌든 자매 여행이니, 비슷하게 옷을 맞춰 입고 자매 사진이라도 남기자며 말이다. 올드타운의 예쁜 골목 가운데 자리를 잡고 삼각대를 놓았다. 모델들처럼 한껏 포즈를 취해가며 타이머로 시간을 맞추고 여러 장을 찰칵 찍어댄다.


‘뭐 한 장은 건지겠지’라는 기대를 가지고 사진을 살펴본다. 음,,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원래 이렇게나 몸뚱이가 짧았던가? 머리는 또 왜 이렇게 산발이야? 나 또한 망각했다. 내가 김태희처럼 예쁘지도, 장윤주처럼 멋진 몸매를 가지지도 않았다는 것을. 그렇다면 사진에 예쁘게 나올 수 있는 포즈나 표정이라도 취해야 하는데 사진 속 내 모습은 영 어색하다. 다시 말해, 서영이의 손만이 문제는 아니었던 것이다. 나 또한, 똥모델이었던 것. 혼자 여행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사진을 포기하고 지내다 보니, 사진 찍히는 것이 실로 오랜만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어정쩡한 포즈와 어색한 시선처리의 콜라보. 서영이가 아무리 잘 찍어줄래야 잘 찍을 수 없을 터. 서영아, 미안하다.

둘다 어색한 포즈와 시선처리

서영이가 사진을 한 번에 잘 찍을 수 없듯이. 나도 한 번에 멋진 포즈를 자연스레 취할 수 없었다. 뭐든 해봐야 늘지. 근데 우리의 짧은 2주 여행 동안 서영이가 멋진 사진을, 내가 멋진 포즈를 취할 리는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 절대 우리의 실력은 늘 수 없다. 그러니 다시 한번 적응하고 망각해야 할 때다.


서영이의 사진 실력과 내 어정쩡한 포즈에 적응하자. 그리고 그런 똥사진이 찍혔다는 걸 금방 까먹기로 하자. 적응하고 망각하는 것만이 우리의 여행을 위태롭지 않게 만들 테니. 서영아, 언니가 너한테 사진 못 찍는다고 구박했던 거 다 잊어버렸지?

너무 예뻤던 나의 동생, 서영이
작가의 이전글 입이 짧은 언니와 뭐든지 잘 먹는 동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