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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유 Feb 23. 2024

1종 운전면허 취득하기(1)

이미 지나간 시간의 공허함을 무엇으로 채울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만한 서른. 10대와 20대를 암흑 속에 보냈다. 나에게 20대, 30대가 없을 거라 여기고 나는 늘 터널 속일 줄 알았다. 그렇게 긴 터널을 뚫고 나온 뒤 햇빛을 맛보고 정신이 드니 내가 허우적거리던 시간에 그 길이만큼 공백들이 생겨났다. 이제 와 시간을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후회나 미련 같은 마음을 더 이상 내 안에 두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때 못 했던 것을 지금 다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경험을 하면서 때는 중요한 게 아니니.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1종 운전면허를 따는 것이었다. 나의 20살로 돌아가면 그때의 나는 무기력에 빠져 있었음에도 면허를 취득했다. 면허도 땄고 이제 와서 굳이 1종을 따겠다는 건 뭘까 싶을 것이다. 당시에 나는 트럭을 모는 것이 그렇게 멋져 보였다. 트럭을 몰 일도 없을 텐데…디스토피아 세계관에 떨어져 모든 것을 다 잃고 급하게 도망쳐야 할 때 트럭이 눈앞에 딱 보인다면 변속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했지 않을까 하는 정도의 그런 소박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20살 때 운전학원에 등록하러 가니 보통 여자는 2종을 딴다고 한다. 요즘은 트럭도 다 오토매틱으로 나오고 2종만 있어도 다 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말에 나는 직원의 말대로 등록하고 나왔다. 늘 하는 말인 듯 무심하게 말하는 직원의 그 말에 나는 솔깃한 게 아니었다. 그때의 나는 보통의 인식을 거스르고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못 하는 ‘나’였다. 나는 용기를 내지 못했던 크기만큼 비워져 갔다. 그런 인식하지 못하는 작은 것들이 모여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다. 공허의 감각 같은. 그것을 인식하고 하나씩 채우고자 마음을 먹었다.


서른의 나는 곧장 학원으로 가서 1종 수강으로 등록했다. 첫 수업 때 트럭을 운전하기 전에 2종 면허가 있고 운전하고 있다고 강사님께 말했다. 강사님은 정말 의아한 표정으로 ‘근데 왜 따요? 이제 메리트도 없는데’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20살의 나와 다르게 그런 말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나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인생에 쉬운 게 하나도 없음을 증명하듯 생각보다 트럭이 너무 낡았고 발과 변속 페달과의 거리도 멀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페달을 더 강하게 눌러야 했다. 그런데 와중에 기어도 바꾸고 전방도 주시하고 브레이크, 엑셀도 생각해야 하니 아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운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예 운전을 처음 하는 사람보다 못하는 것 같았다. 이제 막 20살이 되어 보이는, 훨씬 잘하는 사람들을 보며 비교하게 되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불현듯 ‘이거 잘못 시작했나?’ 하는 불안감이 스쳐 갔다. 그 불안감이 점차 커졌고 결국 시험 때까지 떨치지 못했다. 예전의 나처럼 나를 믿지 못한 것이다.


불합격 통보를 받자 아차 싶었다. 예전의 나라면 이런 결과가 나왔을 때 ‘내가 그럼 그렇지’라며 실패를 내재화하고 돌아섰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니! 내가 놓친 면허 취득에서 통용되는 도로 수칙과 주행 도로의 4가지 코스를 계속해서 외웠고 변속도 확실히 정리했다. 제일 중요한 실전은 아버지의 낡은 트럭을 빌려 운전하기 좋은 곳으로 가서 주행과 주차 연습을 했다. 내가 두려운 이유는 연습이 부족했고 내가 쌓은 게 없기 때문이라는 걸 객관적으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전의 나는 감정이 앞서서 객관적으로 뭐가 부족한지 파악하기도 전에 책망하고 자책하고 돌아설 뿐이었다. ‘두려울 땐 직면하자!’ 그렇게 또 한 번 면허 시험을 봤고 그땐 합격했다. 결과적으로만 보면 한번 낙방하고 붙은 뻔한 스토리이지만 그 안의 스토리는 개인적으로 나에게 기적 같은 일이었다. 찰나의 판단으로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는 거구나. 성공하는 사람들은 이런 작은 습관을 들인 거구나. 처음 세상에 태어나 걸음마를 떼듯 서른이 되어 그 감각을 깨달았다. 감각을 한번 깨치니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스킬을 얻은 느낌이었다. 어떻게 보면 나는 1종 면허증을 따고자 하는 결과가 아니라 용기 내지 못했던 나의 마음가짐을 바꾸고 싶었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탓하고 시간 여행을 꿈꾸는 대신 지금 여기서 모든 걸 되돌려 놓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완벽하지 않은 것임을 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완벽함이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으니. 원을 삐뚤게 그려도 원은 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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