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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그늘 Dec 04. 2022

EP. 7 < 마음의 장소 >

22.12.04 日





< 공간의 정의 >


지리학에서는 공간(space)과 장소(place)를 꽤나 구분하는 편이라고 한다. 공간은 물리적으로 실재하는 설명 가능한 개념이고, 여기에 인간의 애착과 의식이 더해진 것이 장소라고 바라본다. 애착과 의식이라는 단어가 참 와닿는데, 온도로 비유하자면 공간이라는 단어는 차가운 느낌이고, 장소라는 단어는 따듯한 느낌이다. 공간은 광활하고 신비로운 듯 하지만, 장소라는 단어에는 정서가 담겨있다.



그중, 그 어느 곳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한 추억과 시간이 담겨있고, 온갖 감정과 역사가 깃들어있는 '장소'가 '집'이다. 선천적 N극(MBTI도 INFP이다)을 안고 태어난 나는 S극(속세)의 삶과는 철저히 상극인지라 그 극으로부터 처절히 밀리고 밀려나간다. 밀리고 밀리다 결국 낭떠러지 까지 밀려날 때면 집은 늘 그곳에서 위태롭게 춤을 추는 나의 손을  끌어당겨 주었다. 상상만으로도 거친 나의 마음이 평온해지는 곳. 옮겨 붙은 불을 식혀주는 곳. 하루의 노고를 씻어주는 곳. 엄마의 사랑처럼 늘 그곳에 자리하며 아낌없이 내어주는 곳. 간단히 말하면 나에게 가장 편한 곳. 그런 장소가 바로 집이다.



한 달 전 즈음, 평일 이틀만 근무를 함께하는 빅터(상은 비밀, 부끄러움이 많은 타입)라는 뽀글 머리 인물이 문득 집에 스탠딩 책선반을 두고 싶다는 말로 대뜸 포문을 열었던 적이 있다. 일반적인 책장이 아닌 집 크기를 고려해 최소한의 자리만을 차지하는 책 선반을 두고 싶다는 것이었다. 처음 이야기를 나눌 즈음엔, 나는 특정 가구를 들여오거나 들여온 가구를 어떠한 방식과 느낌으로 배치하는 것과 같은 홈 인테리어 행위에 대해 관심이 없었기에 그 가치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저 간단한 의견만을 얹었다. 우리는 그 얘기를 며칠에 걸쳐 간간이 떠들었고 그는 얼마 안 가 결국 책선반을 샀다.



그리고 어느 순간, 빅터는 '삶의 질'이라는 단어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물질을 사고 싶은 욕구를 합리화로써 포장하려는 의도가 아닌, 진심이 담긴 언어로써 말이다. 나는 헛헛해 보이던 그의 마음의 수위가 차오르는 모습을 보았다. 단순히 책선반을 하나 샀을 뿐인데 행복에 겨워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깨달았다. 집을 꾸민다는 것이 단순히 집을 꾸미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님을.



동시에 내가 사는 집에 대해서도 들여다보게 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약 한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에게 집은 그저 집일 뿐이었다. 눈뜨면 밥을 먹을 수 있고, 퇴근 후 돌아와 피곤하면 잘 수 있는 그런 집이라는 기능만 할 뿐인 곳이었으며, 펜션이나 모텔처럼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자리해도 위화감이 없는 말 그대로 공(空) 간일 뿐이었다. 물론, 그 기능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가치가 있는 곳이 집이라는 공간이지만, 그걸 '나'의 집이라 부를 수 있냐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아니라고 답할 수 있었다. 나의 집엔 나의 색채가 너무나도 옅었다. 깨달음의 후에, 나는 내 이름 석자가 선명한 나만의 장소를 갈망하기 시작했다.



어떤 가구가, 식물이, 향기로 채워져 있다는 것은 철저한 의도와 생각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나 또한 그저 그런 공간이 아닌 내 의도에 따른 선택이 나를 가장 선명하게 말해줄 수 있는 그런 장소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사랑하고 나에게 편한 것들을 집이라는 삶의 가장 가까운 공간에 두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내가 사랑하는 것은 무엇이고 나에게 편한 것이 무엇일까?



그때부터 스스로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호두나무와 블랙 색상의 철제 골조, 내가 가장 사랑하는 조합. 때로는 과감하게, 때로는 스스로와 타협하기도 하며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하나씩 사모으기 시작했다. 그 모든 순간이 설레고 또 설렜다. 호두나무와 블랙 색상의 철제 골조, 내가 가장 사랑하는 조합이다. 월넛의 거뭇한 나뭇결과 포근한 색상, 모든 색을 품을 수 있는 블랙을 사랑하기에 월넛을 감싸줄 수 있도록 블랙의 골조로 이루어진 가구들을 들였다. 근처에 커피를 두었고, 투박한 기타를 세웠고, 반짝이는 조명을 걸었다. 마침내, 지금의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들여놓았고, 은은한 미소가 공간에 사람 냄새를 더해주며 나의 장소는 어느 정도 구색이 갖춰졌다.



마음의 공간이 넓어질수록

그 공간(空)은 장소(所)로 바뀐다.

마음의 장소는 행복과 안식을 선물한다.

그렇기에,

집을 꾸민다는 것은 꾸미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집을 꾸민다는 것은 삶의 질을 높이는 행동이다.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은 마음의 공간을 장소로 바꾸는 일이다.

나아가 마음의 공간과 장소를 넓히는 일은 내가 바라고 원하는 사랑을 나누어주는 일과도 맞닿아있다. 사랑을 나누어주는 일도 나의 마음의 크기가 넓을 때 더욱 풍요롭게 나누어줄 수 있기에.



신기하게도, 공간을 들여다보고 장소를 들여다보니 내가 보인다. 나의 마음이 보였다. 삶에서 나의 장소를 들여다보는 일은 이제는 나에게 떼놓을 수 없는 소중한 하나의 가치가 되었다. 나를 말하는 하나의 색깔이 되었다. 이 글을 통해 모든 이들에게 삶에서 한번쯤은 본인의 공간과 장소를 들여다보는 것도 참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집이라는 곳을 공간(空)으로만 들여다보는 것보다는 마음의 장소(所)로써 바라본다면 더욱 사랑 어린 마음을 갖고 살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덧붙이며.




Youtube : 김그늘

Instagram : @mingk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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