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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로드 Dec 04. 2023

무기력증 다루기

두려움과 걱정의 수준을 통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의 하나는

날마다 하루를 계획해서
'일상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키우는 것이다.

작은 일부터, 실현 가능성이 높은
기분이 좋아지는 일부터 계획하고 차근차근 실천하라

당신의 의지대로 선택할 수 있는
 수많은 일들에 집중하다 보면
일상에 기대감을 갖기가 훨씬 쉬워진다.

선택의 반대가 무력감이다.


                        - 외로움의 해부학, 틸스완




무기력은 '선택의 반대'이기도 하고, 두려움과 걱정을 동반한다. 무언가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높은 기준을 달성하려고 할 때, 이룰 수 없는 막연한 두려움과 이루고 나서도 잘 해낼 수 없는 걱정이 따라붙는다. 그 두려움과 걱정이 누적되면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증이 시작되는 것이다.


과거를 돌아보았을 때 내가 극도로 무기력을 느꼈을 때가 떠올랐다. 20대 중반, 해도 안 된다는 기분이 나를 장악했었다. 당시 승무원을 준비했었는데, 사실 그 직업을 동경했던 건 그렇게 '활짝 웃을 수 있는 모습'이 되고 싶어서였다. 나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잔병치레가 많고, 체력이 약한 내가 그 직업을 감당할 수 없을 거라는 것과 내가 진정 그 직업을 원한다기보다는 어디를 가도, 무엇을 해도 기본적으로 갖추어져야 할 사회적 스킬을 배울 수 있다고 여겼다. 일종의 자기 계발 차원에 가까웠다.


소아우울증과 불안증인지도 모르고 보낸 어린 시절은 청소년기의 방황으로 이어졌고, 성인이 되어 그 증상은 조금씩 더 크게 드러났다. 악순환의 고리를 물고, 나의 선택에 상관없이 가족들의 성화에 내가 선택하지 않던 진로에 몇 년을 고스란히 날려버렸다. 그 진로를 버리고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 직업이 승무원이었다. 승무원 학원에서 처음으로 웃는 연습을 하는데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던 피드백은

울지 말고 웃으라고


그랬다. 내 마음은 아픔과 슬픔, 울분으로 가득했다. 상처받은 어린아이는 일부러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자랐으며, 갑자기 웃는 모습을 연출하며, 마음의 기쁨과 행복을 느껴주려 하자, '먼저 네 안의 울분과 슬픔에 주목하라'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내 안의 아픈 감정들을 소화하지 못한 채 웃는 모습을 연습했었고, 이따금씩 무기력증에 빠졌던 기억이 난다.


"해도 안 되는구나" 느꼈던 것 같다. 이미 태어날 때부터, 또는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출발점이 달랐다. 사랑받고, 감정을 수용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자유롭게 스스로를 표현하는 친구들은 한 번에 합격했고, 나처럼 어딘가 무의식에 자리 잡은 어두운 그늘을 가진 친구들은 들러리를 서야 했다. 나는 유아기 3년 동안 벽만 보며 멍하니 보내던 '방임'에서 벗어나 그때 못 배운 사회성을 발달시키기 위해 한 발짝이라도 가는 길이라며, 유아교육을 제때에 받지 못한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동시에 위로했던 것 같다.


32살에 명상을 배우며 조금씩 불안을 다루게 되었고, 무기력증에서 벗어나 진정한 도전이라는 걸 시작했다. 더 이상 유아교육을 받는 자기계발 차원이 아니라, 직업을 구하고하는 마음이 이따금씩 있었다. 신기하게도 나는 날마다 전보다 나아졌지만, 이미 그때는 너무 늦었는지 '나이 많다. 늙었다.'의 지적은 늘 따라다녔다.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은 늙은 나의 나이에 위로를 받는 듯했다. 적어도 '나는 저 언니보다는 낫다.. 나느 저 언니보다 나이는 어리다..' 같은 위로를 받는 것이다.


명상으로 5~7세의 어린 내면의 불안증은 다룰 수 있었지만 여전히 '눈치가 없는' 사회성 부족은 지속되었던 것 같다. 겨우 어느 관에 통역요원으로 취업을 했지만, 거기서도 비슷한 지적을 받았고, 더불어 6살 때부터 겪은 선택적 함구증의 습관으로, '내 말을 못 하는 탓'에 회사에서 불이익을 당하기도 했다.


최근 법륜스님 강의를 들으니 나처럼 사회성 부족의 고민을 가진 사람에게 "혼자 하는 일을 하면 된다."라는 아주 간단한 조언을 들었다. 그 조언을 일찍 깨닫고, 내 업에 맞는 혼자 하는 일을 일치감치 찾아 노력했더라면 난 그 분야에서 뭔가 이뤘을까?나의 적성이 순수 미술 분야라는 걸 나는 일찌감치 알고 있었지만, 도저히 입시미술을 할 형편은 안되었기에 지레 포기했었다. 그거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면, 그 때의 나이에 무의식정화나 명상을 할 줄 알았다면, 달라졌을 텐데 말이다.


굳이 사회성을 기르려고 애써온 20대는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나는 그저 내 본모습을 찾고자 애를 썼다. 3살 때에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도 부르던 적극적인 아이였다고 했다. 난 내 안에 진짜 내 모습이 유아기 3년 동안 방임으로 일그러졌고, 그것을 바로잡고자 애썼을 뿐인데, 수도 없이 무기력증을 경험했다. 이미 밝고 사회성이 좋은 마인드는 내게 있어 '넘사벽'의 세계였으니까.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마음의 안정을 전보다는 많이 찾았다. 그리고 내 유아기 3년 동안 멍하니 혼자 있으며, 관심과 사랑에 목마르던 그 시절도 그저 내 일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이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해 나가기로 했다.  이상 예전처럼 굳이 사람과 정에 목말라 휘청거리지도 않으며, 사회성을 기르겠다고, 맞지도 않는 옷을 입으려 애를 쓰지도 않는다. 3살 때의 나의 모습은 지워버렸다. 그 때의 나를 되돌리기에는 이미 불가능한 시절을 보내왔음을 인정해버렸다.


혼자가 편하고, 혼자하는 일이 편하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나도 모르기 불안증이 도져 도저히 집중을 못하는 '나'이다. 이런 나를 인정한다. 이런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실현 가능성이 높은, 기분이 좋아지는 일부터 매일매일 계획하고 차근차근 실천며 내 안에 자리잡은 무기력증을 흘려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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