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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로드 Nov 10. 2023

부모와 절연. 그 후, 엄마가 쓰러졌다.


엄마가 쓰러졌다. 성당에서 미사보는 중에 쓰러지셨다고 한다.


지난번에 내가 보낸 장문의 메시지가 충격이었나 싶어 마음이 쓰였다. 6살 때부터 몇십 년을 선택적 함구증이라는 불안장애로 살며 표현하지 못하고 감정을 억눌러왔다. 얼마 전 비로소 표현하게 된, 몇십 년의 억울함과 분노가 담긴 메시지로 인해 엄마는 적지 않게 놀라셨을 거다. 내 속은 모른 채 그저 왜 연락도 없느냐며 서운해하던 사람이다. 말을 안 하는 내 속내가 그리도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는지, 아무리 눈치를 줘도 이해하지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던 분이었다. 그저 그녀가 살아온 방식대로 '그런가 보다' "그게 뭐? 그땐 다 그랬다"며 나만 유별나고 예민한 아이인 탓으로 돌리던 그녀였다.


나의 장문의 메시지 안에는 친정이 너무도 불편해서 가기 싫다는 내용과 더불어 그동안 당신의 땍땍거리는 말투와 친척들에게 내 흉을 보는 당신 언행 때문에 지옥 같다는 등 그동안 못하던 말들이 담겨있었다.


아마 5년 전에도 비슷하게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때도 그녀는 "미안하다"했지만 그때뿐이었다. 돌아서면 다시 친척들에게 내 흉을 보던 사람이었다. 아마 내가 결혼을 안 했다면 아직도 그녀의 눈총을 받으며 기죽어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결혼을 했을지라도 선택적 함구증이라는 불안장애가 어린 시절부터 이어져 왔었는지, 나의 내면상태를 나 조차도 몰랐더라면 여전히 말도 못 하고 나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내 안의 나를 향하던 공격성이 그녀를 향하자 고혈압이 있는 그녀를 뇌동맥류라는 병명으로 쓰러지게 했다. 의사는 얼마 전 별세한 영화배우 강수연 씨와 같은 뇌동맥류라고 진단하고 빠른 수술을 권했다.


죄책감이 들어 김상운 선생님께 '나 때문에 엄마가 쓰러진 것인지'메일로 문의드렸다. 답변은 [ '서로 각자의 우주 속에 살기 때문에 남 때문에 생기는 병은 없습니다. 엄마의 무의식 속에 자신을 공격하는 살기가 억눌려있는데, 나의 살기와 공명해 자신을 공격한 겁니다.']


내 안에서 올라오는 살기가 그녀 스스로를 공격하는 살기와 공명했다니......


생각해 보니 그렇다. 그녀가 습관적으로 하는 말들 '멍청이' '바보네'등의 말속에는 자기혐오가 가득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도 모르니 어찌 자식에게 사랑을 줄 수 있었겠나. 그녀는 그저 자기감정을 마구잡이로 쏟아내며, 걱정하는 게 사랑이라 믿던 사랑에 무지한 어리석은 사람이었을 뿐이다.


생각해 보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녀도 사랑다운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했다. 그녀의 무지는 너무 싫지만, 그렇다고 지속적으로 사람을 미워하는 건 내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다.


 내가 태어나기 전 영혼의 상태였을 때, 어떤 인연법에 의해 나는 그런 부모를 선택했고, 힘든 삶을 선택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버티듯이 견뎌 왔지만, 40이 된 지금에 이르러서야 깨달은 것도 있다.


나도 모르게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엄마에게 통화를 시도했고, 그녀는 울먹이며 '미안하다'라고 했다. 나도  "나 때문에 그런 건 줄 알았다"며 울먹였다.


그 후로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연락을 끊고, 이따금씩 생각이 날 때, '내가 너무 연락을 안 하나'싶은 마음이 올라왔다. 그럴 때면, 다시금 과거를 소환해 증오의 감정을 되새기며 연락하지 않으려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이번 통화로 서로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도 풀려 나가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가까워지길 바라지는 않지는다. 마음을 표현했기에 어느 정도의 정서적 거리는 둘 수 있다는것에 만족한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고, 내 모습과 참 닮아 애처로운 부모의 모습에는 '나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는 나'도 있기에, 부모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건 나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일이기도 했다.


아직 수술은 하지 않았고 언니는 수술할 병원을 알아보고 있다. 엄마는 상태가 괜찮다는데, 무의식에 관심 많고, 자연치유를 추구하는 나는 수술을 안 했으면 한다. 그러나 결정은 본인이 하는 거니까. 크게 관여하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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