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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tterist Nov 28. 2024

속옷은 개지 않는다, 당연히.

퇴직 편집자의 시시콜콜.

나는 집안일을 곧잘 한다. 요리는 양식의 경우 내가 아내보다 확실히 뛰어나며 한식에 있어서는 굳이 따지자면 약간의 열세다. 설거지도 문제없이 잘하고 분리수거 및 음식물 쓰레기 처리에도 능숙하다.(음식물 쓰레기는 쌓이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다) 특히 내가 강점을 보이는 것은 청소인데 특히 내 방의 경우에는 어떤 물건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까지도 아주 정확하게 알고 있다. 물론 청소란 것은 무선청소기가 있는 덕에 그리 어려운 집안일이 아니지만 아무튼 그렇다는 것이다.


때문에 나와 아내는 집안일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유독 한 가지, 다 된 빨래를 개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예외다.


나는 속옷을 개지 않는다. 개지 않을뿐더러 개지 않는 게 더 합리적인 일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이 생각을 처음 떠올린 게 자그마치 20년도 더 전이니 이건 나름 굉장히 유서 깊은 생각인 셈인데 나는 그 20년가량 동안 이 생각으로 인해 온갖 핍박을 받아왔다.


먼저 나의 생각을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내 논리는 다음과 같다.


속옷은 속에 입는 옷이다, 그래서 조금 구김이 간다 한들 문제가 되지 못한다. 그리고 속옷은 얇은 옷이기에 옷장에 대충 넣어놔도 딱히 구김이 깊이 생기지도 않는다. 대충 넣어놔도 구김이 깊이 생기지 않고 설령 생긴다 한들 어차피 겉옷 안에 입는 속옷일 뿐이다. 속옷에 구김 조금 가 있는 게 무슨 흠일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속옷은 굳이 갤 필요가 없는 옷이다. 속옷은 그냥 속옷이 있을 위치에 적당히 개지 않은 채 던져놓고 입을 때마다 팡! 하고 펼쳐 입으면 그만이다. 시간은 귀중하다.


대충 이 정도인데 나의 이 빈틈없는 논리를 나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여인네 두 명은 전혀 인정해주질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 명은 인정해주지 않았고 한 명은 인정해주지 않고 있다)


결혼 전, 그러니까 내가 본가에 살 적에도 나는 이 논리를 고수하며 세탁이 다 된 내 옷들 중에서도 속옷만큼은 얼른 쏙쏙 골라내어 속옷장에 박아두곤 했는데 이런 내 모습을 볼 때마다 내 모친께서는 ‘너 또 속옷 안 개고 그냥 박아두냐!’ 정도의 타박을 하셨다. 그리고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은 같은 결의 타박을 내 아내가 하고 있는 것이다.


뭐, 사실 말은 내가 핍박이라고 했지만 이들의 타박이 날 그렇게까지 낙심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애초부터 큰 기대를 하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일전에, 그러니까 내가 아직 본가에 살 적에 내가 그래도 나만큼이나 합리적이고 대단히 이성적이라 생각하는 나의 부친께서 모친의 타박에 대항하는 나의 ‘속옷 개기 무용론’을 함께 들으시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엄마 말 들어’라고 하셨던 것은 대체 무슨 이유 때문이었을까? 그게 바로 결혼 생활을 오랜 시간 평화롭게 하고 있는 자의 지혜라는 것일까? 아직 내 결혼 생활 기간은 그만큼이 되진 못했기에 그 이유를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어쨌든, 나의 생각은 완고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는 런닝, 팬티, 양말 등을 번거롭게 굳이 시간을 들여 개야 하는 합당한 이유를 모르겠다. 어쩌면 이것은 ‘그냥 그렇게 해왔으니까’, 혹은 ‘그냥 다들 그러니까’ 라는 말에 여기서에서조차 굴복하지는 않으려는 내 이성의 마지막 보루일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모르겠다. 개면 구김이 쪼끔 덜 가긴 하지만 대충 쑤셔 넣는다 해도 어차피 얇아서 주름이 깊게 지지는 않는, 그리고 어차피 안에 입는 속옷, 그래서 누가 볼 일도 없고 이걸로 멋을 낼 것도 아닌 속옷을 대체 왜 나의 소중한 시간을 써가며 개야 하느냐 말이다. 라고 나는 어젯밤에도 나름의 열변을 토했지만 아내의 반응에 유의미한 변화는 없었다.


그렇지만 괜찮다. 사실 이게 뭐 그리 큰 문제인 것은 아니다. 어쨌든 아내는 아내가 옷을 갤 때는 내 속옷까지 모두 다 곱게 개서 넣어준다. 그리고 나 역시 내가 옷을 갤 때, 비록 내 속옷은 개지 않지만 아내 옷은 모두 다 곱게 개서 넣어준다. 속옷까지도 말이다. 이건 여담인데 내가 결혼 후에 굉장히 놀란 것 중에 하나는 여자 옷은 대부분이 딱히 갤 이유가 없어 보이는 옷이라는 것이다. 내 아내의 옷은 대부분 매우 작고 또 흐물흐물해서 굳이 갤 이유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다 개서 넣어주고 있는 것이다.


볼테르의 말이었던가? 볼테르의 말이라고 잘못 알려진 말이었던가? 확실하진 않지만 아무튼 볼테르 하면 나오는 명언 중에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난 니 생각에 동의하진 않지만, 그래도
니가 말할 자유를 위해 싸우겠다.


그러니까 나와 아내는 매일 옷을 갤 때마다 참으로 볼테르스럽다.


건조기에서 슈베르트의 송어가 울린다. 이제 그만 옷을 개러 가야겠다.


물론, 볼테르처럼 말이다.

18세기 프랑스의 계몽철학자, 볼테르(Voltaire)



2024. 11. 28.

건조기 필터 청소를 한 날에,

레터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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