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天葬)’ 하늘로 치르는 장례
'조장(鳥葬)'이라고도 불리는
티베트의 전통 장례 의식
천장대 근처에 가면 누구나 이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 수 있다. 공중을 날고 있는 독수리 떼, 그리고 진한 피비린내. 그간 티베트 라싸에서, 동티베트 리탕에서 천장대에 몇 번 가보았지만 감히 전 과정을 두 눈으로 지켜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천장에 참석해 보겠냐는 현지 친구의 말에 나도 모르게 ‘응’이라고 대답했다. 티베트에서 가장 큰 불교 대학이 있는 곳, 신앙의 도시라고 불리는 써다 지역이었다.
티베트 문화에 항상 관심이 많았고 그곳의 광활하고 웅장한 자연 풍경은 늘 내 가슴을 뛰게 했지만 막상 약속을 하고 나니 이번에는 다른 느낌으로 가슴이 콩닥거렸다. 머리로는 그들의 문화를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천장을 직접 '경험'하는 것은 '이해'와는 또 다른 장벽이 있었다.
티베트 지역에는 마을마다 천장을 치르는 장례식장이 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례식장 모습은 아니다. 뒤에는 높은 산이 있고 아래로는 평원을 내려다보는 위치의 산중턱쯤, 주변에는 티베트 경전을 적어놓은 타르초와 룽다가 휘날리고 있다. 조금 규모가 큰 현대식(?) 천장대는 시멘트로 벽을 쌓아서 작은 공간을 만들어 놓은 곳도 있다.
이 하늘로 치르는 장례는, 돌아가신 후에 시신을 독수리에게 내어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사자(死者)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육체 전체를 보시하고 이생을 떠나는 것이다. 윤회 사상에 기초한 티베트 불교에서는 몸은 자연으로부터 빌려온 것이며, 영혼이 떠난 육체를 독수리들에게 줌으로써 독수리들이 사자의 영혼을 하늘로 인도한다고 여긴다.
천장대로 들어서면 먼저 머리카락을 땋아서 걸어놓은 변발탑을 먼저 만나게 된다. 그리고 마치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입구 같은 하나의 동굴, 양 옆으로 두 마리의 독수리가 지키고 있는 이곳 안에는 두개골이 빽빽하게 벽을 둘러싸고 있다. 밖으로 나오니 돌로 만들어 놓은 조형물, 천장대에 누워있는 사자의 시신 주위를 독수리와 티베트 불교의 여러 신들이 둘러싸고 있다.
이날은 총 다섯 분의 장례가 치러졌다. 장례가 시작되기 전 조문객들이 천장대 외부에 있는 돌 위에 한 명씩 누웠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한다. 죽음 이후의 모습을 먼저 체험해 보는 것. 티베트인들은 이 과정을 통해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된다고 하지만, 그 돌 위에 누우면 하늘을 날고 있는 독수리들이 보인다. 웃으며 그 돌에 누워보는 이들의 마음이 가늠되지 않았다.
천장대 근처로 갈수록 코를 자극하는 냄새에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마스크를 착용하고 온 조문객도 있었다. 음습한 기운이 들었다. 그때 어디선가 높은 음고의 노래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시신이 천장대로 들어오면서 조문객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말하자면 돌아가신 분을 위한 티베트 장송곡인 듯하다.
천장대 근처에서는 한 스님이 불경을 한 시간째 외고 있다. 마이크를 통해 천장대 전체에 울려 퍼지는 사자를 위한 진언. 음의 높이로 따지자면 분명 불경은 낮고 장송곡은 높은데 마치 같은 주파수가 이 지역을 가득 채우고 있는 느낌이다. 두려움이 파고들 틈이 없이 말로 표현 못할 성스러움이 전해진다. 시신이 들어오면서 두 소리는 더욱 커진다.
시신은 헝겊에 쌓인 채 가족의 등에 업혀서 혹은 나무 상자 안에 들려서 이곳으로 들어온 후 우선 티베트 백탑을 몇 바퀴 돌게 된다. 그리고 장례가 치러지는 곳으로 모셔지는데 그곳에는 천장사가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 위쪽 언덕에는 이미 수많은 독수리들이 기다리고 있다.
땅에 있는 독수리들보다 공중에 있는 독수리들이 더 많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독수리들은 신기하게도 땅으로 바로 내려앉지 않고 의식을 치르듯 천장대 위를 몇 바퀴씩 돌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준비가 된' 듯한 독수리들은 한 마리씩 언덕으로 내려앉아 자리를 잡았다.
천장사는 마지막으로 가족까지 내보낸 후에 사자의 마지막 보시를 준비한다. 독수리들을 부르는 역할을 하는 스님(천장사)이 있는 반면, 독수리들을 정해진 시간까지 막는 역할을 하는 스님도 있다. 너무 성급히 다가오지 않도록 막고 있다가 준비가 끝나면 독수리들에게 길을 터준다.
천장 의식은 감히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머리로 알고 있었던 것과 몸으로 경험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그 감정을 몇 문장으로 표현하기는 힘들 듯싶다.
다만 장례 의식을 지켜보는 동안 이상할만치 마음이 평온했고, 문화의 차이라는 것이 그렇게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종교는 없고, 티베트인도 아니지만 이 분들이 부처님의 자비를 온몸으로 실천하는 분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 또한 한 명의 조문객으로서 마음을 다해 기도할 수 있었다.
눈물을 보이거나 슬퍼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신 미소를 보이거나 노래를 부르는 이는 많았다.
그들의 깊은 신심은 무엇일까, 그것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각 나라와 민족은 자신의 자연환경에 맞는 장례 문화를 이어가고 있다. 티베트 지역은 해발 고도가 높기 때문에 매장을 할 경우 시신이 부패하지 않기 때문에 전염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고, 또한 나무가 부족하기 때문에 화장도 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내게는 이러한 자연환경적인 측면이 아닌 종교적 문화적 의미가 더 강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윤회를 믿게 되었다. 나누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감사할 수 있었다. 이후 인생에 어떤 변화가 다가올 것이라는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모르는 분의 장례에 참석한다는 것, 그것도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이 성스러운 공간에 들어간다는 것이 왠지 죄송스러운 마음이었는데 오히려 친지, 친구분들이 먼저 다가와주셨다.
장례가 끝난 다음에 함께 내려가자며 손을 이끌었고 길이 험하니 쉬어가자며 옆자리를 내주셨다. 수유차를 마시겠냐며 낯선 이방인에게 본인의 일용할 양식을 건네었다. 산을 내려오니 한 스님이 비닐로 움막을 만들고 그 앞에서 수행을 하고 계셨다. 장례를 마치고 내려오는 분들은 지나치지 않고 그분께 작은 보시를 했다. 나눔으로 시작해서 나눔으로 끝나는 장례.
티베트인들은 천장을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고 위대한 보시이자,
가장 순수하고 순결한
장례 의식이라고 말한다.
관련 영상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