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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 Nov 21. 2022

가격표

나의 젊음은 부모님의 젊음을 발판 삼고

내 젊음 어느새 기울어 갈 때쯤
그제야 보이는 당신의 날들이


김진호의 ‘가족사진’이라는 노래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다.


한 달 후면 서른을 바라보고 있는 내 나이를 ‘젊음이 기울어갈 나이’라 말하기에는 부끄럽지만, 나보다 앞서 당신이 지나온 날들을 내가 한 발자국씩 뒤따라 걷는 것을 보면 마음속에서는 조금씩 젊음이 기울고 있는 것 같다.


아직은 가정을 일구지 않아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부모로서 두 분께서 느꼈을 심정은 헤아리지 못한다. 하지만, 나이에 따라 책임감도 늘어나게 되니, 부모라는 이유로 해야만 했던 것들, 하지 못했던 것들이 너무 많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내가 장성하여 경제적으로 자립한 사이, 태산같이 높게만 느껴졌던 부모님께서는 많이 연로해지셨다.


취직해서 안정적인 급여가 들어오면 만사 행복할 것만 같았는데, 원하던 직장에 자리 잡아 일하다 보니, 지금까지의 여정은 마치 시작도 아니었다는 듯이 앞으로 해나가야 할 태산 같은 과정들이 나를 비웃고 있는 느낌이다.


하고 싶은 것들도 많고, 해야 할 일들도 많다는 핑계로 나를 위해 쓰지 못하고, 부모님께 드리는 것들에 인색해졌다. 마치 당당한 채권자가 된 것 마냥 주변에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물질들을 자랑하는 사람들을 보면 괜히 심술이 나서 남 모르게 배 아픈 적도 많았다. 그런 마음들이 쌓여서 어느 날 아무 일도 아닌 것에 괜스레 성질을 낼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남는 것은 후회뿐이었다.


얼마 전 작은 동생이 군대에 가, 몇십 년 만에 두 분 만의 시간을 갖게 되셨다. 요즘 두 분을 보며, 꽃다운 청춘에 하고 싶었던 것들을 뒤로하고, 때로는 꿈을 포기하며 자식들을 뒷바라지했을 모습들이 자주 상상된다.


나의 젊음은 그렇게 부모의 젊음을 발판 삼았다.


나는 내가 드리는 모든 것들에 가격표를 매기고 있지만, 내가 받았던 모든 것들에는 단 하나도 가격표가 매겨진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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