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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Dec 17. 2023

잘못할 수 있어!
그러나 5가지만 알아두렴!

MZ세대에게 남기는 엄마의 유산 13

살다 보면 숱하게 많은 잘못을 저지르게 돼. 인간은 영원히 완전할 수 없거든. 그렇다고 매번 ‘잘못했다.’. ‘어쩔 수 없었다.’로 일관할 수는 없겠지?


그래서 오늘은 

이미 저지른 '잘못'에 대해 네가 어떻게 인식하느냐의 문제,

또 하나는 되도록 '잘못'의 양을 줄여야 하는 문제. 

이 두 가지에 대해 말해보려 해.     


'잘못'은 잘하지 못한 것이지. 

그렇다면 우선 잘하는 것을 알면 되겠지.

'잘하는 것'이 뭐지? 

옳은(선,善) 것, 도움되는(이로운,利) 것이겠지. 


이에 대해서는 누구라도 이견이 없을테니 더 거론하지 않을께. 

잘하는 것을 제거하면 '잘못'한 것이 선명해지지. 

또한, '잘못'은 그것의 경중에 따라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어. 

작은 것들은 '실수'라 하기도 하고 규율이나 법에 어긋난 것은 '죄', 자연이 부여한 이름은 '악(惡)'이라 하지. 


참고로, 엄마는 네가 죄나 악의 범주가 아닌 법의 테두리 안에서의 실수와 잘못에 국한해서 얘기하도록 할께. 엄마는 네가 법망을 넘어서거나 자연에 해가 되는 친구라고는 결코 여기지 않으니까 우리 그 정도의 삶의 기준을 가진 수준에서 얘기를 하도록 하자.


자! 네가 잘못했을 경우부터 차근차근 얘기해보자!


우선, 잘못을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닐거야. 이것은 분명하지. 가령, 네가 누군가에게 거짓말을 했을 경우, 그 거짓말이 어디서 의도되었는지 따져볼 때, 거짓을 통해 얻고자 하는 무언가가 있었을거야. 결국, 얻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얻지 못할까 봐, 즉, '잃기 싫은 마음' 또는 '얻고 싶은 마음'으로 인해서 거짓을 말하게 된 것이겠지. 또 이럴 수도 있어. 상대를 제대로 알지 못한 오류. '그 사람은 이렇게 말해줘야 해'와 같은 잘못된 판단때문에 그를 대하는 적합한 방법으로 '거짓'을 택한거야. 


물론, 거짓을 잘했다고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의도'에 대해 얘기하는 중이니 '의도'자체를 폄하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야. 거짓을 말한 '의도'가 너의 욕구였으니 너 자신을 '부정'한 사람으로 몰아갈 필요까지는 없다는 말이야. 거짓은 잘못이지만 네가 부정한 의도를 품은 부정한 사람이라는 자책까지는 할 필요가 없단다.  


그러면 우리는 여기서 분명한 한가지를 짚어낼 수 있어. 

의도는 선했으나 방법이 잘못되었다면 

분명 의도와 방법 사이에 놓인 

'판단'에서 '오류'가 났다는 것이 분명해지지. 

'판단'에 의해서 '선택'이 이뤄지니 '잘못된 선택'을 했던 것이며 잘못된 결과를 초래한 거야.      


자, 잘못은 판단의 오류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연역된 이해로써 알길 바래. 

이 연역이 이해된다면 

'잘못'으로 자책하는 감정보다 오류를 찾는 이성의 정신활동에 너를 더 우선해서 사용해야 해.     


그렇다면 '오류'가 뭔지 알면 잘못하는 일이 줄어들겠지? 

'오류'는 네가 부정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인식의 결핍' 또는 '결여'에서 비롯되는 것이야. 배움이 부족해 지식의 양이 적거나 잘못 입력되어 지혜의 깊이가 얕고 힘이 약한 것이지. 결과적으로, '잘못'하는 일은 '배움'으로 확실하게 줄일 수 있다고 결론내도 되겠지?     


다시 말하면, 계속 배운다면 오류가 줄어들고, 즉, 인식의 결핍과 결여를 메울 수 있고 그 인식의 깊이와 정도만큼 판단은 제대로된 방향성과 힘을 갖게 되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실수에서 악에 이르기까지의 수많은 경중의 잘못을 피해 갈 수 있는 것이야. 아니, 피해간다기보다 너 스스로 만들지 않게 되지.     


네가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이 순간 살아있다는 것이고 이는 쓸모있는 사람이라는 증거야. 쓸모있다는 것은 세상에 이롭다는 의미지. 그런데 이롭다는 것이 네가 맑고 투명한 천사를 닮아서이기도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아. 누구는 천사인데 누구는 악마라는 말이 아니라 인간 개개인 안에 천사와 악마가 공존한다는 말이지. 다시 말하지만, 네가 악마라서 부정한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너의 인식의 결여로 인해 악마가 그 틈을 파고든 것이지.


네 안의 악마는 항상 정신의 빈공간에서 살고 있거든. 

그래서 정신을 양식으로 채울수록 악마가 살 공간은 부족해져. 

이 부분은 이 책의 '배움'에 대한 글 ‘엄마의 유산10-가장 환상적인 인생으로 안내할께’에서 충분히 언급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자, 너는 천사같지만 네 안에는 악마도 있어. 항상 둘은 같이 다녀. 사람이라면 누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림자를 품고 있는 것과 같지. 해가 있을 때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네게 어떤 상황이 될 때 천사든 악마든 네 안에서 출몰하는 거지. 그래서 너 하기에 달려 있어. 태양은 변하지 않지만 네가 움직임으로서 그림자의 크기와 길이를 조절할 수 있듯이 네가 어떻게 무엇을 주입시키느냐에 따라 네 안의 악마의 힘을 조절할 수 있어. 악마에게 먹이를 주려면 정신에 공간을 만들면 되고 천사에게 먹이를 주려면 정신을 배움으로 계속 채워주면 돼. 채운다는 의미는 인식의 결여와 결핍이 메워진다는 의미지.      


누군가가 세상에 탄생한다는 것은 세상에 이롭기 때문이야. 

누구나 이로운 사람으로 태어나지. 

왜? 

세상도, 자연도, 우주도 다들 자기 할 일을 하거든. 

모든 천지를 조화롭게 유지시키는 게 그들의 일이야. 

그들이 너라는 존재가 필요하니 너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거야. 


그런데 네 속에 악마를 심어두고 잘못을 저지르게 하는 것은 그것으로 인해 네가 천사가 있음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야. 또한 악마를 심어둠으로써 그들이 챙기지 않고 걸러져야 할 인간들을 자체적으로 거르는 시스템도 만든거지. 그러지 않으면 인간은 겸손하지 못하고 늘 자기가 잘난 줄 알고 자연에게 덤비거든. 피곤해지지. 그래서 '오류'를 겪게 하고 이로써 네 안의 천사를 호출하는거야. 그렇게 계속 세상을 이롭게 하는 쪽으로 필요한 인간들을 추출해 내.     


너에게는 좋은 것만 들어가지 않아. 

세상엔 분명 악한 것들이 존재하고 

그것은 네가 살아있는 한 어떤 경로로든 네게 침투할 수밖에 없어. 

좋은 게 들어가면 좋은 것이 나오고 나쁜 것이 들어가면 나쁜 것이 나와. 


네가 아무리 깨끗하게 샤워를 해도 가래나 농, 콧물이 안에서 기다리다가 밖으로 나오지. 

이미 네 몸속에 있거나 만들어질 것들이잖아. 

나쁜 것이 나오면 버리지, 다시 너에게로 넣지 않지?


정신도 마찬가지야. 

나쁜 것들은 나쁘게 나오게 되어 있어. 

너도 모르게 네 안으로 들어간 나쁜 정신들이 '잘못'으로 나오는 거야.

나올 게 나온 거지. 

그렇다고 다시 넣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 늘 조심하기보다 '잘못'을 저지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그 잘못을 해석할 수 있는 방향으로 네 이성이 움직여야 해. 

네 인생에 '잘못'이라는 것이 개입했다는 것은 '자각'하여 다시 

바람직한 것을 넣어주라는 의미야. 

그러면 다음엔 바람직한 것이 나오지.


지금의 잘못을 제대로 해석하면 

잘못이 몸집을 더 이상 키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같은 모습으로는 결코 등장하지는 않아.    

그러니, 

잘못을 했더라도

'반성'이라는 감정활동에 집중하지 말고

'자각'이라는 정신활동에 집중하렴.


인간의 '감정'이란 유효시간이 굉장히 짧아. 금새 망각하지. 그래서 같은 감정을 늘 끌어안고 살아.

하지만 정신은 차곡차곡 자신을 키워나갈 수 있어. 그러니 정신을 차리면 호랑이굴에 들어가도 두려움을 이겨내고 살아나오게 되는거야. 감정말고 정신!  


정리해볼까? 

우리 인간은, 너는 잘못을 저지를 수밖에 없어.

네 속에 사는 악마에게 먹이를 줬기 때문이야.

악마의 먹이는 무지(無知)와 무식(無識)이야.

무지와 무식은 정신에 배움의 양식을 주지 않은 너의 자세 때문이지.

하지만, 잘못은 판단의 '오류'때문이지 너 자체가 부정한 사람이여서가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오류는 곧 천사를 불러오게 되고 천사는 널 배움으로 이끈다는 사실.

그렇게 오류가 줄어들면 잘못할 확률도 줄어들고 너는 더 선하고 이로운 사람이 되어가지.


선하고 이로운 것은 세상이, 자연이, 우주가 바라는 쓸모를 갖는다는 의미이니 너는 세상에 더 필요한 사람으로 되어가는 거야. 모든 것을 갖춘 완벽한 자연이 크게 필요하다고 판단한 사람에게 많은 것들을 지원하지.

세속적인 물질부터 영적인 선물까지.

영적인 선물, 말하자면, '행운'같은 것이야. 

    

처음에 언급했던 '잘못'에 대해 네가 어떻게 인식하느냐의 문제, 

되도록 '잘못'의 양을 줄여야 한다는 문제.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되는지 이제 알겠지?     


그런데 혹 누군가는 '왜 세상에는 이리 악한 사람들이 많지? 신은 인간을 선하게 창조하지 않고 왜 저리 만들었을까? 도대체 신이 있는거야 없는거야?'라며 툴툴거리기도 해. 그런데 이런 발상은 결코 도움되지 않아. 없는 답을 찾아 헤매는 정신의 낭비지. 신의 존재여부를 떠나서 신은 왜 악한 인간을 만들었을까? 신이 만든 것은 신이 알지 인간은 알 수 없어. 네가 무언가 필요해서 만들었다면 그 필요목적은 그것을 만든 사람 너밖에 모르거나 네가 제일 잘 알지. 남이 들쑤신다고 그것의 목적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겠니? 겨우, '이유가 있겠지' 정도로 마무리될걸! 마찬가지야. 신의 목적은 신이 알지, 인간은 몰라, 간혹 이를 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도 신이 아닌 이상 완벽히 안다고는 할 수 없겠지. 데카르트가 이렇게 말했어 '신의 목적을 알아내려는 것은 주제넘는 짓(주1)'이라고. 참 명쾌하지?     


그러니, 

네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 잘못은 그것을 기인시킨 원인, 

즉, 어떤 인식이 결핍되서 이 사태가 일어났는지에 국한해서 사고하는 버릇을 가지렴. 

잘못은 뒤로 하고 세상탓, 신탓, 운명탓하는 것은 결국, 네 이성을 활동하지 못하게 하고서 다시 널 데리고 놀고 싶어하는 악마의 소행이야. 지금의 잘못을 연역적으로 이해하려는 사고를 하다보면 정신에 먹이를 줄 때 악마는 자기랑 놀아주지 않는 널 싫어하게 되고 천사는 너를 더 큰 정신, 즉, 전체에서 바라보는 힘을 선물할거야.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반성하고 자책하는 감정에 사로잡히는 것도 감정의 낭비이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아. 반성이란 것은 감정의 영역이야. 반성을 하는 이유는 자각을 위해서인데 반성만 하고 자각하지 못한다면 그저 감정으로 잘못을 덮어버릴 수 있다는 오만, 종교인들이 주로 저지르는 행동없는 회개만 일삼는, 다소 효과없는 감정놀이라고 할 수 있어.


반성이 많은 이들은 자신이 얼마나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있는데 

네가 잘못한 것을 아는 순간, 

우리에겐 2가지의 문이 앞에 놓이지. 

하나는 비굴의 문이고 하나는 신망의 문이야. 


단어에서 딱 감잡았겠지만 비굴은 잘못 뒤에 숨어 이 핑계 저 핑계만 대는, 눈치살피며 요령피려는 수작, 천하지. 아주 쫄보지. 반면, 신망의 문은 당당하게 잘못을 인정하기에 잘못보다 더 위대한 신뢰의 길로 나아갈 수 있어. 귀하지. 반성은 정작 용서를 구해야 할 세상앞에서 눈치살피다 변명 뒤에 숨어서 자기 스스로 자기를 용서하는 이상한 결과를 가져오는, 비굴의 문입구에 서 있는 쫄보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농후해. 니체가 말하길, '양심의 가책은 점잖지 못하다(주2)'고 했어. 반성 이면엔 비굴함이 숨어 있을 수 있단다.... 


큰 시야가 없으면 수많은 경우의 수에 단 하나의 퍼즐만 맞추는 격밖에 안된단다. 

부분적으로 보면 '잘못'일 수 있는 사태가 네 인생 전체를 볼 때 '필요'에 의해 의도된 사태인 경우가 아주 많아. 그러니 커다란 시야로 지금의 잘못을 연역하여 사고한다면 앞으로 네가 살아갈 수많은 경우의 수에서 더 많은 퍼즐들을 맞춰갈 수 있을거야.     


그래서 잘못은 그 자체로도 배움이고 

더 나은 배움으로 너를 안내하고 

그것은 너를 점점 더 세상에 쓸모있는 사람이 되게 하여 네 인생을 가치있게, 부유하게 만들지. 

아주아주 많은 면에서...

아주아주 다양한 시점에서...

아주아주 적절한 무언가로서...     


네가... 구름을 헤치고 떠오르는 달과 같길 바란다.

너의 잘못이 너를 그리 만들어줄거야...


'남의 잘못을 찾아내기는 쉬운 일인데 자기의 잘못은 요술쟁이가 소매깃으로 물건을 감추듯 감추는 법이다. 사람들은 남의 행동 중에서 잘못된 것에만 눈길을 던지고 있다. (중략) 그러는 사이에 그는 욕심이 불타올라 그 욕심때문에 옳고 그름을 헤아릴 능력을 잃고 마침내 착한 사람들의 위치에서 점점 멀어지고 만다. 중요한 것은 이미 저질러 놓은 그릇된 일을 곧 착한 일로 그 자국을 덮어버리는 데 있다. 이와 같이 행동하는 사람은 구름을 헤치고 떠오르는 달과 같은 존재이다(쟌빠따, 주3).



이제 다른 이가 네게 잘못을 했을 때는 어찌 해야 할까?


네 주변에는 크고 작은 실수나 잘못으로 너를 힘들게 또는 피곤하게 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거야. 이러한 사람을 대할 때도 지금껏 언급한 인식의 눈으로 바라봐야 할거야. 무시나 비난, 심지어 경멸이라는 감정을 앞세운다면 너에게도 신경질, 짜증과 같은 감정이 올라오게 되거든. 그저 ‘모르는구나.’는 관점으로 바라보면 된다. 대부분이 성격탓으로 이를 무마시키려 하는데 성격이나 성향 역시 습관이 만든 것이며 습관은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성격탓이라고 무마시키지 않길 바란다. 그러한 상대가 너와 밀접한 연관이 있거나 네가 가까이 하고자 하는 누군가라면 네가 몸소 보여줌으로써 알려주길 바래. 지시하거나 가르치려 하기보다 그저 보여주면 된단다.     


때로는 잘못을 저지른 이가 네게 도움을 청할지 몰라. 이 때에는 2가지만 명심하렴. 우선, 그 잘못된 사태가 그 사람 혼자의 힘으로 해결될 일이라 판단된다면 돕지 마라. 이는 그가 스스로 길러내야 할 힘을 지켜주기 위함이야. 네가 도와주지 않아 원망을 받더라도 괜찮아. 원망받는 것보다 상대가 스스로 성장하는 것이 더 가치롭거든. 그리고 만약, 혼자힘으로 해결하지 못할 경우 도와라. 네가 할 수 있다면 네가 돕고 네 역량이나 여러 요소에서 부족하다면 더 도움되는 사람을 찾아 네가 무릎을 꿇고 도움을 청해서라도 끝까지 도와라. 


그리고, 네가 도왔을 경우 그 어떤 것도 바라지 마라. 오로지 너의 선택이었고 네가 쓰여야 할 곳에 쓰인 것이니 이에 대한 보상도 너의 삶 어떤 시점에 네게 올 것이니 도움받은 상대에게 뭔가를 요구하거나 기대하지 않길 바란다. 물질적인 것은 물론이고 인정, 칭찬과 같은 감정적인 모든 것까지도. '내가 이렇게까지 도왔는데 나한테 이런 대접을?'과 같은 생각은 아예 하지마라. 상대는 상대 인생에서, 너는 네 인생에서 스스로 대가를 치르고 보상이 오는 것이니 네 할일 했으면 된 것이다.

    

그저 너는 배움으로 전체적인 시야를 가지도록만 해. 물론, 그 시야가 '이건가?' 영원히 알 수 없을지 모르지만 '전체로서의 너'를 볼 수 있도록 계속 너를 탐구하여 점검, 검열해야 해. 이렇게 너를 들여다보는 탐구는 지금의 잘못이 전체에서 필요하기 때문에 존재했음을 깨닫게 해 줄거야.    

  

우주의 시선으로 지구를 봐봐. 많은 오류들이 있지만 그 오류들도 다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런 미운 모습으로 등장한 것이거든. 우주가 완전을 향해 가는 길에 오류도, 오류가 아닌 것도 존재할 수 있어. 이렇게 너를 하나의 우주로서 바라보는 시야를 갖는다면 지금 미운 모습으로 네 인생에 등장한 '잘못'도 결코 쓸데없는 오류가 아니라 쓸모있어서 네게 개입된 의도된 오류가 되는 것이지.     


'나같은 사람이 잘못할 리가 없잖아!' 라면서 잘못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 그런 부류는 잘못을 모르거나, 잘못을 인정하지 않거나, 잘못할 일이 벌어질까봐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고 자신의 한계에 갇혀 사는 사람이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거든

뭐라도 하기 때문에 잘못도 하고 실수도, 실패도 하는 거거든!

그러니, '나는 잘못이 없어!'라는 사람은

잘못을 모르는 것이 잘못, 시도하지 않고 자신의 몫을 삭감시킨 것이 잘못이야. 


혹 네게 잘못한 누군가가 있다 하더라도 네가 지적하고 벌하려 하지 마라.

길잃은 양을 네가 벌할 필요는 없단다. 

길을 잃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벌을 받고 있는 것이니

상대의 벌은 상대의 몫으로 남겨두고

그저 너는 너 자신을 키우는 것에 더 의미를 두기 바란다.

그렇게 한다면 원망도, 배신감도, 복수도.. 이런 무서운 단어가 네 인생에서 힘을 쓰지 못할거야.


세상 살면서 내가 알고 저지르는 잘못이 1이라면 모르고 저지르는 잘못이 100이 넘는대. 

그러니, 네가 알고 저지르는 잘못만이라도 줄여가며 살면 된단다.     



자, 5가지로 정리해보자.


첫째, 누구나 잘못할 수 있다. 그러니 자신을 부정한 사람으로 여기지 말것.

둘째, 잘못했을 경우 '잘못'은 인식의 결여나 결핍이 원인이니 '반성'같은 감정말고 '자각'의 정신활동에 집중하여 '잘못'이라는 미운 모습으로 네 인생에 등장한 녀석의 의도를 파악할 것.

셋째,  가래나 콧물과 같이 네 속에는 오물도 있어. 나쁜 것이 네 밖으로 나오면 다시 주워담지 않듯이 같은 잘못을 하지 않기 위해 배움에 널 머물게 해라.

넷째, 누군가가 잘못한 후 네게 도움을 청할 때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을 돕는 것은 오히려 상대가 힘을 기를 기회를 뺏는 것이니 돕지 말고 정말 네가 도와야겠다 판단된다면 끝까지 너의 모든 것으로 도와라

다섯째, 네게 누군가가 잘못했을 경우, 잘못한 그 자체가 이미 벌이니 네가 벌주려 하지 마라. 이유는 원망, 복수와 같은 무서운 단어가 네 인생에서 멀어지게 하기 위해 등장한 사건이니 오히려 네게 잘못한 이에게 감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랑이 넘쳐서 모든 것을 주고 싶은 맘이 가득하지만

먼저 산 한사람으로서 줄 수 있는 것은 

네 정신이 제대로 된 방향을 향하고 힘을 갖도록 권유할 수 있는 것밖에 없구나.

엄마는 엄마의 전부를 너에게 주고 싶단다...      


주1> 데카르트, 방법서설, 1997, 문예출판사

주2> 니체, 우상의 황혼, 2015, 아카넷

주3> 젊은 날의 사색, 2010, 피닉스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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