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애덤스 On the Transmigration of Souls
청명한 하늘을 뒤덮은 검은 물결
2001년 9월 11일 화요일 오전, 일순간 검은 안개가 뉴욕 상공을 뒤덮었다. 오전 8시 46분, 뉴욕 상공을 아슬하게 날던 여객기가 쌍둥이빌딩의 노스타워(North Tower)와 충돌한 직후다. 쌍둥이 빌딩은 “세계무역센터” 제 1, 2동을 맡고 있던 세계 경제의 센트럴 타워였다. 출근하던 사람들은 급히 몸을 돌려 내달렸고, 건물 안 사람들은 패닉에 빠졌다. 얼마지나지 않아, 쌍둥이빌딩의 사우스타워(South Tower)에도 여객기 한 대가 돌진한다. 노스타워가 충돌한지 17분 만이다.
오전 9시 59분, 두 번째로 충돌했던 사우스타워가 무너졌다. 건축물 잔해와 가루가 도로 위의 사람들을 덮쳤다. 비상구를 이용해 탈출하던 사람들은 빠져나오지 못했다. 20분 후, 노스타워역시 붕괴됐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은 하루아침에 바닥과 맞닿았다.
4번의 충돌과 3개의 건물 붕괴 후에야 잠잠해졌다. 실종자 4700명, 사망자 2977명, 부상자 2만 5000명, 그리고 울음소리만이 남았다.
범인은 사건 후 이틀 만에 밝혀졌다. 바로 이슬람 무장조직 “알카에다”다. 걸프 전쟁 시기, 미국은 이슬람 성지였던 메카와 메디나에 군대를 상주시켰고, 이에 반발했던 이슬람 의용군들이 반미국 투쟁을 벌리며 알카에다가 탄생했다. 911테러 역시 미국에 앙심을 품고 있던 알카에다의 계획된 소행이었다.
1999년 말, 알카에다는 미국의 정치, 경제, 군사적 요지를 하나씩 쳐내겠다는 작전을 세웠다. 이를 위해 영어로 소통 가능한 테러 가담범을 영입하고, 테러를 위해 비행기 조종을 교육시켰다. 그후 2001년, 알카에다는 이들에게 위조여권을 쥐어주며 4대의 비행기에 나눠 태웠다.
한 번의 테러는 무려 21년동안 사람들을 괴롭혔다. 2011년 알카에다의 수장이었던 오사마 빈 라덴의 사살 이후에도,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점령으로 전쟁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야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끝났다.
존 애덤스와 미니멀리즘
작곡가 존 애덤스도 이에 깊은 애도를 표했다. 존 애덤스는 미국의 대표적인 미니멀리즘 작곡가로, 다양한 시사적 소재를 사용하여 규모가 큰 미니멀리즘 음악을 추구한다.
음악에서의 미니멀리즘이란 최소한의 요소나 멜로디를 반복해 곡을 이끌어가는 경향을 뜻한다. 길어야 한 마디인 요소를 겹치게 두거나 엇갈리게 두기도 하고, 빨라지거나 느려지면서 청자에게 새로운 청각적 자극을 제시한다. 마치 최소의 물품으로 최대의 효율을 뽑아내는, 삶에서의 미니멀리즘과 닮았다.
존 애덤스는 원래 클라리넷 연주자였다. 그러다 작곡으로 하버드 음대를 진학하며 음열 등 복잡한 현대음악을 배웠다. 히피문화에 매료되기도 했다. 히피가 좋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하고는 미니멀리즘 작곡가 필립글래스를 접했다. 이들의 총합은 현재의 시사를 반영하는 미니멀리즘 음악을 작곡하게 된 계기다.
On the Transmigration of Souls
오케스트라와 합창이 함께하는 <On the Transmigration of Souls(영혼들의 환생)>은 911테러가 일어난 지 약 1년 후,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위촉을 받아 작곡됐다. 다양한 시사적 이슈를 소재로 끌어다 쓰는 애덤스는 911테러에 대해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있었다. 막 작품에 녹아내겠다고 다짐했을 때, 뉴욕 필의 위촉을 받았다.
애덤스는 911 테러 희생자의 유족들을 표현했다. 곡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MISSING이 이를 표한다. 갑자기 나의 소중한 사람을 잃게 되었을 때의 상실감을 표현하려 했다. 희생자를 표하려는 타 추모곡과의 차이다. 안믿겼다가 현실을 자각하고, 허망했다가 파노라마처럼 기억이 으개지고, 폭풍같은 감정들을 쏟아내며 그 사람과의 기억이 추억으로 남는 과정을 담았다.
가장 특이한 점은 그런 생생한 감정을 과장하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보통의 작품이라면 재현을 위해 사건에 서사를 부여했을 터다. 그러나 애덤스는 현실을 반영했다. 사건이 이미 충격적인 이미지로 대중의 머리에 박혀있었기 때문에, 거창한 이야기로 꾸며내거나 과장되게 표현해 재현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였다. “사람을 찾습니다”와 같은 “MISSING”과 더불어 실종자의 이름, 이후 추모 행렬에서 사용된 피켓의 문구를 차용했다.
그의 음악에서는 "MISSING"이라는 가사 위에 실종자의 이름과 문구, 주위의 소음이 차례로 쌓인다. 각자의 존재가 각자로 남아있길 바란, 그의 마음이 녹여들었다. 그 상황에서 보이는 장면들의 평범한 소리를 엮어 반복함으로써, 영혼들의 환생을 표현했다.
애덤스가 표현하려던 것은 “기억의 공간”이다. 존 애덤스는 “당신이 당신의 생각과만 함께할 수 있는 곳에서 이 음악과 글은 자극을 줄 것이다. 하지만 이 음악은 전혀 당신의 감정을 지시하지 않고, 당신의 관점을 건드리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대중들이 이 때의 감정을 그대로 간직하길 원했다. 그러다 만약 다시 이 순간이 생각나 감정이 고양될 때마다 이 <On the Transmigration of Souls>라는 노래가 하나의 기억상자가 되어 다시 꺼내볼 수 있었으면 했다.
우리는 대개 부정적인 감정을 감추려 한다. 숨겨지거나 미화되길 원한다. 그러나 부정적인 감정은 그냥 감춰지지 않는다. 뱉어내고 뱉어내다 무뎌질 뿐이다. 당신에게도 이렇게 그대로 간직하고픈 부정적 감정이 남아있는가?
글 - 슈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