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도시에서 자그마치 20년을 살다가, 공기 좋은 곳에서 노후를 보내려고 머나먼 남쪽 땅으로 내려왔다. 이곳에서 살다 보니 도시에서 누리던 문화와 농촌의 문화는 너무도 판이하게 다가왔다. 이런 환경의 격차 앞에 개인적으로 낯선 환경을 적응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생활 곳곳에는 전통적인 관습이 깊게 뿌리 박혀있었다. 농촌 문화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데에는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로마에서는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듯, 함께 호흡하는 일원이 되기 위해 스스로가 서서히 물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자연이란 환경은, 감히 알량한 금전으로는 그 가치를 판단할 수 없을 만큼의 귀한 선물이 돼 줬다. 하지만 생활의 불편함과 문화적인 삶은 좀처럼 충족이 되지 않는 가운데 있다. 손만 뻗으면 곧 닿을 것 같은 편리한 환경이 아쉽도록 생각이 나고, 때로는 그 도시를 그립게도 만든다.
도시에서 살았던 집은 오랜 시간이 쌓여 낡은 집이 되었다. 그러나 주변 환경이 주는 만족지수는 최상급이었다. 편리하게는 집 가까이에 지하철역이 있었으며, 공설운동장과 수영장, 그리고 구청이 있고, 민속오일장과 백화점, 또 교회와 공립도서관 등이 있었다. 이곳에 좋은 공기만 갖춰 준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錦上添花)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중에 가장 큰 아쉬움으로 다가오는 것은 바로 제법 큰 규모를 갖춘 공립도서관이다.
도서관을 찾을 때마다 내게는 설렘이 일어나는 기분 좋은 일이었다. 각문헌실 책장마다 빼곡하게 꽂혀있는 수많은 도서는 큰 행복이 되어 돌아왔다. 마치 여러 가지 음식을 큰 식탁에 놓고, 먹고 싶은 대로 선택하여 덜어가는 뷔페식당과도 같았다. 도서대여는 일인에 한하여 2주 동안 6권까지 허락하였다. 책에 대한 과욕일지 몰라도, 갈 때마다 6권씩 빌려다 보았다. 여러 도서를 대여해서 독서를 하는 동안은 가장 행복했고, 지식의 목마름이 해갈되는 원천(源泉)이 되기도 했다. 거기에는 평생 읽어도 다 못다 읽을 책들이 태산처럼 쌓여있었다. 다양한 도서를 많이 읽어보고 싶은 꿈이 있어서일까. 그 도서관을 무척 좋아했고, 집 주변 가까이 있는 게 내게는 큰 자랑거리가 되었다.
얼마 전 아직도 그 도서관의 회원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되었다. 코로나 팬데믹의 답답한 환경이 온 세상에 덮였을 때, 사람과의 대면 또한 모든 공공시설에서 모임이 자유로울 수 없을 때, 집합금지 명령이 담긴 문자가 날아오기도 했었다. 오랜만에 받아보는 도서관 알림 문자를 보니, 나를 아직 잊지 않고 있다는 게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이곳 농촌에도 도서관은 있다. 핑계를 대자면 멀어서 가기가 쉽지 않을 뿐이고, 더 솔직한 것은 나의 게으름이다. 모든 상황을 고려할 때 지금은 도서비를 지불하여 책을 구입하는 현실이 됐고, 덕분에 빈 책장은 시간이 흐를수록 채워지고 있다. 그 도시에 대한 미련은 아직도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그때는 생활의 편리성에 대해 고마움을 몰랐었다. 그러나 그곳이 살기 좋은 곳이었음을 느끼며, 이미 쌓아놓은 추억을 그리움으로 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