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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현숙 Sep 27. 2023

탄천은 비오는 날 걷는 게 제 맛이지.

탄천 예찬론

수원, 용인, 성남을 거쳐 한강까지 탄천이 흐른다. 탄천변을 따라 5.5km 떨어진 정자역까지 걷기를 좋아한다. 가는데 1시간, 오는데 1시간 걸리는데, 카페에서 혼자 즐기는 아이스라떼 타임 또한 너무 좋다. 그래서, 3시간 걸린다. 중간에 노느라 1시간을... 오전 7시 이전에 떠나지 않으면, 그 날은 걸을 수 없다. 일찍 일어나게 하는 원동력이다.


이른 아침, 해가 떠 오르긴 했겠지만, 구미동 언덕 뒤에 숨어서 동쪽 탄천길은 여전히 시원한 그늘일 때가 좋다. 서쪽길은 흐린 날에만 걷는다. 더 넓고 뻥 뚫렸지만, 동쪽길이 늘 붐빈다. 다 같은 마음이겠지.



탄천에는 나의 미래가 있다. 손자 손녀와 함께 놀러나온 할머니, 한 걸음 한 걸음 힘겹지만 서로 손을 잡고 의지하며 함께 걷는 노부부, 아들과 함께 걷는 할머니, 늘 같은 시간에 만나는 이름모를 할머니 러너... 나의 10년 뒤, 20년 뒤, 30년 뒤의 모습을 미리 만난다. 나도 저렇게 늙고싶다.



비 소식이 있으면, 신나서 예상강수량을 찾아본다. 보슬비 맞으며, 걷는 것이 너무 좋다. 어차피 2시간을 걸으면, 흠뻑 젖는다. 부담없이 마음껏 비를 맞을 수 있는 기회다. 어릴 때도 동네 친구들과 부담없이 비 맞으며 뛰놀았던 기억이 있다. 부담없이 비 맞으며 걷는 건 재밌다. 1mm가 넘으면 좀 부담스럽다. 0.1~0.4mm 정도면 좋다. 우산과 수건을 챙겨간다. 우의도 챙겨는 간다. 예상과 달리 좀 더 많이 내리면, 필요하다. 썬글라스도 필요없어 더 좋다. 어차피 비 맞을테니, 반바지의 가벼운 차림도 좋다. 단, 슬리퍼는 안된다. 미끄러진다. 마찰력이 좋은, 젖어도 좋은, 빨아야 할 운동화가 좋다.



무더운 여름 날, 에버랜드에 가면 미스트 뿌려주는 대형 선풍기 앞에서 더위를 식히던 기억이 난다. 하늘에서 내리는 보슬비도 그런 느낌이다.




오늘도 보슬비가 내려 청둥오리도 거의  안 보이는데, 회색 왜가리 한 마리가 늘 있던 곳을 지키고 앉아있다. 징검다리를 힘겹게 건너가시는 할아버지를 지켜보는 모습이 꼭 친구를 배웅하는 것처럼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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