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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 Dec 24. 2024

06.리더스 옥션

'리더스 옥션' ... 나의 직장이다.


경매업계의 리더가 되겠다는 사장님의 큰 포부로 시작한 회사명이다. 이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 사장님의 면접 방식을 보고. 이 회사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3년이란 시간을 지나고 있다. 난 사장님이 뽑은 첫 번째 직원이었다. 그래서 나머지 직원들의 면접을 옆에서 다 지켜볼 수 있었다. 사람 보는 안목이 없는 건지, 면접이 귀찮은 건지 내가 봤을 때 사장님의 면접은 기준이 없었다. 내 합격 소식도. 당일 바로 연락 준거 보면 그리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갑자기 씁쓸해진다.


사장님은 전직 세무공무원으로 외모상으로는 깐깐하고 고지식해 보이지만, 생각 외로 무난한 사람이다. 나는 사장의 직위는 당연히 직원들보다 많은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하고, 그러므로 직원들을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보다 모르면 무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사장님은 지식이 정말 차고 넘치는데, 뭔가 단호함이라는 게 없다. 경매는 입찰비용만 해도 어마 무시하다. 낙찰가의 10%이기 때문에 물건 분석을 잘못한 경우 입찰비용은 그냥 날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직원들의 꼼꼼한 업무 능력이 필요하다. 그만큼 직원 채용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이다. 그나마 초기에 잘못된 물건 분석으로. 몇 번 손해를 본 후, 현재 경매가가 높은 물건은 사장님이 직접 하신다.


부장님은 중년의 도끼병 증세가 있는 사람이다. 남성스러운 훤칠한 키와 외모, 중후한 목소리로 얼핏 옛날 영화배우 남궁원이 보인다. 그래서인지 부장님의 고객은 대부분 여성이다. 평소 과하게 외모에 신경 쓰는 부장님이 마땅치 않았지만, 그런 부분이 실적으로 이어지니 딱히 불만이 없었다. 다만. 꼼꼼하지 않은 일 처리에 사장님의 잔소리 90%는 부장님. 몫이었다. 하지만, 멘탈에는 별 타격이 없으신지, 3년 동안 별 불만 없이 이 회사에 다니고 계신다.


대리는 20대 후반의 스마일 맨이다. 공인 중개소에서 일을 하다가 경매를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어 입사했다. 고객을 대해본 경험이 있어 이미 미소가 기본 장착되어 있다. 처음에 봤을 때는 큰 키에 마른 몸, 하이톤의 목소리는 무게감도 없고, 사람이 가벼워 보여 신뢰가 가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얼핏 걱정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내 선입견이었다. 열심히 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대리를 보면 정체되다 못해 퇴보되고 있는 나를 돌아보게 된다.


중간중간 입사했던 사람들의 빈번한 이직으로 사장님은 근 시일 내에는 인원 충원할 생각은 없으신 듯했다. 조금 가르쳐 주면 그만두는 일이 반복되니 지치신 것 같았다.


회사에서 정시에 출퇴근을 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대부분 입찰로 인해 법원에 가거나 물건 분석을 위해 외근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나는 경매 물건 입력 및 내방, 전화 상담이 주 업무이다. 대부분의 직장인이 그렇듯 나 또한 큰 변함없이 회사 생활은 반복된다. 문득 최근 폴 댄스를 시작했다는 친구가 생각났다. 매일 똑같은 생활패턴에 무감각해지는 것 같다는 나에게 뭐라도 하라며 갑자기 잔소리를 퍼부어댔다. 정말 뭐라도 해야 하나!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4층 이하의 다세대주택과 배달업체가 대부분이다. 판데믹 이후 식당들은 대부분 배달 전문 업체로 바뀌었다. 그래서 직접 가서 먹을 수 있는 곳은 골목 초입의 작은 편의점뿐이다. 최근에는 1인분 배달도 가능한 곳이 많아지긴 했지만, 배달비 때문에 그 금액도 만만치 않아 편의점에서 도시락, 김밥을 구매하는 게 차라리 손쉽고 저렴해서 작은 편의점이라도 감사할 뿐이다. 재개발한다고 하지도. 꽤 오래된 걸로 아는데, 건물주들과의 합의가 안되는 건지 차일피일 미뤄지더니 지금은 아예 얘기가 쏙 들어갔다. 그로 인해 타 지역보다 저렴한 월세가 고마울 뿐이다. 편의점의 환한 불빛은 동네 초입만 비춰줄 뿐 띄엄띄엄 놓여있는 가로등은 동네를 간신히 밝힐 뿐이다. 가끔 가로등이 꺼져있을 경우에 골목은 암흑이다. 인적도 드문 곳이라 이 동네가 익숙지 않은 사람은 자칫 작은 소리에도 겁을 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걷고 있는데 웬일인지 평소와 달리 저 멀리서 환한 빛이 보였다. 궁금증에 종종걸음으로 그곳으로 향했다. 닫힌 커튼으로 인해 내부는 볼 수가 없었다. 문득 가게의 어닝을 보니 'OASIS'라고 쓰여있고, 작은 글씨로 'cafe&dessert'라고 쓰여있었다. 요즘 카페가 치킨집보다 많다고 하더니 정말 그런 모양이다. 상가가 거의 없는 이. 동네 그것도 골목에 무슨 배짱인지 건물주인가. 여하튼 저녁 이 어둠의 골목에 편의점 불빛이 아닌 또 다른. 불빛이 생긴 건 기분 좋은 변화였다. 나중에 오픈하면 한번 가봐야겠다.

퇴근 후 저녁 7시 30분~8시쯤 집에 도착한다. 3천보도 걷지 못한 손목 워치를 보며, 이러다 다리가. 퇴화되지 않을까 하는 생뚱맞은 걱정이 엄습했다. 골다공증 예방을 위해. 햇빛을 보며 하루에 만보는 꼭 걷는다는 엄마를 떠올리며 신체 나이는 내가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년 내내 달라지는 건 없고 걱정만 늘고 있다. 대충 씻고 편의점에서 사 온 삼각김밥을 들고 노트북 앞에 않았다.


40분 동안 움직임이 없을 경우 울리는 손목 워치의 진동 덕분에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다른 분들은 모두 외근하시고, 사무실에는 나만 남아있다.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는데 순간 문밖에서 누가 급하게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미인형의 화려하신 여성분이 사무실에 들어오셔서 다짜고짜 부장님은 찾으셨다.

- 여기 김문철 부장이라고 있죠?

난 상대방이 누구인지도 모른 체 답을 드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서 찾는 이유를 물었다.

- 무슨 이유 때문에 찾으시는 건가요?

- 저 그 사람 부인이에요. 지금 어디 있냐고요?

무슨 일인지 화가 단단히 나신 것 같아 관련이 없는 나에게도 언성을 높였다.

부장님을 생각해서 최대한. 성질을 죽여가며 말을 이었다.

- 핸드폰으로 연락해 보셨나요?

- 워크숍을 간다더니만, 그것도 거짓말이었나 보네. 또 병이 도졌군

순간 부장님이 사무실로 여성 고객 한 분을 데리고 들어오셨다.

사무실에 계신 본인 와이프를 보고 놀랐는지

- 여기에는 왜? 나가서 얘기하자

사모님 팔을 잡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순간 사모님은 거칠게 팔을 뿌리치며

- 또 어떤 년이야. 지랄맞은 새끼 어째. 한 달을 못 가냐

같이 오신 여성 고객은 어안이 벙벙했는지 놀란 눈으로 부장님 부부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빨리 고객님을 고객상담실로 안내했다. 그런데, 그 고객님이 상담실로 가지 않고, 부장님을 쳐다보며 조용히 말을 건넸다. 톤 다운된 목소리가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김 부장, 무슨 일이죠? 와이프. 되시는 모양이죠?

부장님은 안절부절 하며, 여전히 화가 나있는 사모님 눈치를 보았다.

-네, 제 와이프입니다.

-오해가 있으신 모양이에요, 저는 김 부장 고객일 뿐입니다. 상담할게 있었는데, 아무래도 오늘은 안되겠네요. 다음에 연락 주세요.

그러자, 부장님이 고객님께 연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모셔다드릴게요.

사모님은 고객님의 차분한 대응에 어찌해야 할지 몰라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였다.

부장님은 나를 쳐다보며 사모님을 부탁했다.

-우리 중요한 고객님이야. 모셔다드리고 올테니 사무실에서 기다려. 미안하지만 김대리 부탁해요.

부장님은 엘레강스한 고객님을 에스코트하며 사무실 문을 나섰다.

순식간에 사무실 안은 정적이 흘렀다. 정적을 뚫고 사모님이 힘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죄송했습니다. 그만 가보겠습니다.

-부장님 바로 오실 텐데요. 제가 차 한 잔 드릴게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사모님을 고객 상담실로 안내하고. 심신 안정을 위한 국화차를 가져다드렸다. 아무래도 커피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고맙습니다. 많이 놀라셨죠?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천천히 드세요.

옅은 미소를 짓는 사모님을 뒤로하고 내 자리로 돌아왔다.

30분 이후 돌아오신 부장님은 내게 사장님께는 말하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사모님과 함께 사무실을 나가셨다.


순식간에 짧은 폭풍이 사무실을 휩쓸고 지나갔다. 확실히 부장님은 얼굴값을 하긴 하는 모양이다. 아니면 사모님이 의부증이 있을 수도 있다. 나는 결혼에 부정적이다. 평생 한 사람만을 사랑할 자신이 없다. 사랑의 무게가 같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랑에 올인하는 것은 본인과 상대방 모두에게 비극이다. 내게 사랑은 그렇다. 평소에 생각지도 않았던 사랑의 의미를 곱씹다가 이내 울리는 전화기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수화기를 들었다. 수화기 너머로 사장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 별일 없었죠? 아무래도 늦을 것 같으니 먼저 퇴근하세요.

-그럼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퇴근을 위해 짐을 주섬주섬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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