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뜨거워질 무렵, 정말 많이도 떨어졌다. 기자 공채에.
'딱 1년만 더해보자'하고 시작했던 올해다. 소속감을 채우고 하루 루틴을 지키기 위해 시작한 문서수발, 탕비실 정리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루도 게으르지 않았다. 아침 8시 30분에 출근해 매일 신문을 읽고, 스터디 면제권도 쓰지 않을 정도로 성실히 참석하고, 저녁엔 뉴스까지 챙겨보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렇게 상반기 가장 기대했던 회사 네 곳(뉴스1, 한국일보, SBS, JTBC) 신입공채가 열렸지만 모두 서류전형에서 광탈하고 말았다. 수백대 경쟁률을 뚫고 인턴을 하고, 최종 면접까지 갔던 곳들도 있어서 더 뼈 아팠다. 죽을 용기는 없지만 "죽고 싶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여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서 아랑 카페 채용게시판 공고를 모두 뒤졌다. 계약직이든, 인턴이든, 육아휴직 대체든 지원할 만한 공고를 모두 책상 위 화이트보드에 적었다. 싹 긁어모아보니 4-5개 정도가 나왔다. 더 이상 간절할 힘도 없지만, 한 자 한 자 열심히 자소서를 적었다.
여느 때처럼 문서수발을 하고, 연세대 학생식당에 들어서려는 순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오전 11시 59분. 직감했다. KBS구나. 오늘이 KBS 서류발표날인 걸 아침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네, 여기 kbs고요. 서류 지원하셨죠. 일단 서류전형은 합격하셨고요. 면접 관련해서 알려드릴게요." 이 말을 듣자마자 입이 귀에 걸렸다. 발걸음을 멈춰 서고, 크게 숨을 들이쉬고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지나가는 학생들이 신기하게 쳐다봤다. 이게 얼마 만에 서류합격이던가. 밑바닥까지 떨어졌던 자존감이 지하 1층 정도 높이까진 올라온 듯했다. 최종 결과와 상관없이 상반기 내내 후려 쳐진 서류전형을 붙었다는 사실 자체가 기뻤다. 오랜만에 정말 기분 좋게 밥을 먹었다.
면접은 이틀 뒤쯤 진행됐다. 한 달에 한번 주어지는 휴무는 여름휴가인 일본여행에 사용하는 것으로 예정돼 있었기에 차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근무시간을 조정해, 평소보다 조금 일찍 퇴근해 참석하기로 했다. 따라서 면접을 보던 날 아침도 출근해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문서수발을 했다. 비가 미친 듯이 쏟아지는 날이었다. 문서수발 업무를 하려면 넓디넓은 연세대 캠퍼스 끝에서 끝을 걸어 오가야 하는데 사실 날씨가 너무 덥거나 비가 오거나 하면 하루 미룰 수도 있는 업무다. 그렇지만 그러기 싫었다. 가뜩이나 하는 일 없는 포지션인지라 그것까지 못 가겠다고 하는 것이 죄송했다. 오후에 일생일대 가장 중요할 수도 있을 면접이 잡혀 있었지만 우산을 들고 캠퍼스를 나섰다.
진짜 미친 듯이 비가 쏟아졌다. 천둥 번개가 수시로 치고,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면접을 위해 입은 단정한 바지와 신발이 모두 젖었다. 바지는 무릎 위까지 통째로 젖었다. 빗속을 뚫고 캠퍼스를 가면서 '나는 정말 군인 같다'고 생각했다. 이건 내가 자기소개서에 나의 장단점을 설명하며 쓴 말이자 실제로 듣는 말이기도 하다. 이게 뭐라고, 나를 지키기 위해 미룰 수 있었는데 비를 다 맞아가면서 일을 해내려고 하는 모습이 군인 같았다. 장대비를 뚫고 걷고 있을 때쯤 친한 동료 H 선생님께 걱정이 담긴 안부 연락이 왔다. 비 엄청 오는데, 쉰다고 하지 어떻게 가고 있냐고. 그렇게 머리와 바지가 다 젖은 채로 학생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데 춥고 처연했다. 오후에 있을 면접이 걱정됐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택시를 타고 도착한 KBS 신관.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고 온 지원자들도 있었다. 면접자는 나를 포함해 총 7명. 1명 뽑는데 뭐 이리 많이 부르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모두 여자였다. 나와 국민일보 면접 때도 만났던 숙대신보 후배 혜원이도 만났다. 덕분에 긴장이 조금 풀렸다. 사실 크게 긴장이 되진 않았다. 면접을 대기하는 동안, 옆에 지원자가 있음에도 에어컨 A/S를 신청하는 전화를 할 정도였다. (이때쯤 집 에어컨이 망가져 너무 더웠다. 덥기도 더운데 습한 걸 참기가 힘들었다. A/S 신청한 지 일주일이 지났는데 기사님 연락 한 통이 없어서 반드시 전화를 했어야 했다. 나랑 같이 대기하던 지원자는 무슨 생각을 했을지 모르겠다. 미안하다.)
오래 기다려서 끝에서 2번째로 입장하게 된 면접실. 면접관과의 거리가 상당히 멀고 앞에 요상한 모니터 같은 것이 있는 컴퓨터실 느낌이라 심리적으로 안심이 됐다. 오전에 급히 준비한 자기소개를 하는데 다대일 면접이라 그런지 집중해서 들어주시고, 시간제한도 크게 없어서 여유롭게 모든 멘트를 마쳤다. 이후에 여러 가지 질문들이 오는데 솔직히 난 예감이 들었다. 붙었구나. 최대한 솔직한 인상을 주려고 노력했다. 추후에 되새김질해 보니 너무 간절해 보였던 모먼트들은 힘을 좀 뺐어도 좋았을 것 같지만, 그게 나인 걸 어쩌겠나. 그리고 굳이 필요 없는 부연을 줄이는 버릇을 좀 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색하면 나오는 버릇이다. 면접이 진행될수록 거의 나를 확정하고 묻는 듯한 느낌이라 더더욱 자신감이 붙어 자연스럽게 답했다.
사실 면접 발표 기간까지 시간이 꽤 됐다. 주변엔 '한 명 뽑는 자리라 될지 안 될지 잘 모르겠다'라고 하거나 거의 알리지 않았는데 역시 합격자 발표날 오전 전화가 왔다. 아르바이트하는 직장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다가 전화를 받았다. 서류 합격 전화를 받았을 때 이미 번호를 저장해 뒀던 터라 'KBS'라는 발신자가 떴을 때 심장이 짜릿했다. 휴가를 하루 앞두고 입사일자를 조정하는데 이슈가 있었긴 하지만 말이다. (회사 측에선 출근 예정일 이전, 그러니까 합격 발표 이틀뒤 곧바로 채용검진을 받길 원했지만, 난 이미 해외 출국이 예정된 날짜라 곤란한 상황이었다.) 1명 뽑는 자리에 7명에 최종면접자가 있었으니 혹시나 후순위로 밀릴까 하여, "그렇다면 그냥 여행을 취소하겠습니다"라고 말했지만 다행히 배려해 주어 출근일 오전에 검진을 받기로 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 신체 건강해요. 번거롭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라는 말로 통화를 끝냈다.
전화를 받은 날짜는 수요일, 출근예정일은 월요일이었다. 그런데 목, 금, 토 일본여행이 예정돼 있어서 공교롭게도 새직장에 출근하려면 아르바이트 직장에 출근하는 날은 수요일이 마지막이 되는 것이었다. 나는 그래서 'KBS 기자 합격 소식을 알림'과 동시에 '오늘 퇴사해야 한다'는 소식을 전해야 하는 민폐 아르바이트생이 되고 만 것이다. 물론 내가 살면서 만난 직장 중 거의 손꼽힐 정도로 가장 좋은 사람들로 가득한 아르바이트 자리였기에 평소 나를 응원해 주던 차장님과 팀장님을 비롯해 모든 직원들이 축하해 주었지만 어쩐지 죄인이 된듯한 기분도 들었다. 차장님과 팀장님은 내게 가끔씩 새롬 씨 같이 매일 신문 읽고, 열심히 준비하는 사람이 꼭 기자가 돼야 할 텐데 라며 응원해 주시고, 채용 공고는 언제쯤 뜨냐고 여쭤보셨다. 나는 사실 숱하게 서류전형을 떨어지고 있었지만 "하하, 보통 하반기에 열려요"라고 거짓말로 둘러댔다. 그렇지만 이렇게나 빨리 떠나가게 될 줄이야. 후임 인수인계는 물론 후임 자체를 구하지도 못했다.
그렇게 정신없는 축하와 이별인사를 전하곤 근무하고 있는데 가장 친하게 지냈던 H 선생님이 오늘 마지막이니 점심을 같이 먹고, 커피를 먹으러 가자고 하셨다. (나는 원래 캠퍼스 문서수발을 다녀온 후 학생식당에서 혼자 먹는다.) 그래서 함께 점심을 먹고 카페를 가려는데 H 선생님이 업무가 있다면서 먼저 가 있으라고 하셨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카페에서 N선생님과 같이 H 선생님을 기다렸다. (워낙 업무가 정확하고, 꼼꼼한 분이라 이날도 '열일'하시는 줄 알았다) 그런데 카페로 온 H 선생님 손에 표창장? 이 들려 있었다. 그걸 나한테 주는데... 열어보니 나를 위한 표창장을 금세 제작해 오신 거였다. 평소 내가 좋아하던 쿠로미 캐릭터와 내 프로필 사진과 함께.. 상 이름은 '고생했상'이었다. 이걸 보자마자 점심시간 만석인 카페에서 울음이 콰앙 터져 버렸다. 눈물이 또르륵 또르르륵 흘러 옷이 다 젖어버렸다. 그 순간 느낀 감정은 뭐랄까. 어찌 됐든 회사에 폐를 끼치고 급작스럽게 나가게 돼 미안하고 죄송스러운 마당에 짧은 시간 나를 축하해 주려 마음을 써줄 생각을 했다는 것에 대한 감동과 제작된 상 이름이 너무 마음을 울렸다. 고생했다는 말은 흔한 말이기도 하지만, 나를 가장 가까이서 8개월 동안 지켜봐 와 준 선생님이라면 그 말을 진심으로 썼을 것 같아서. 아무튼 여러 복잡한 감정에 눈물을 그치지 못했던 것 같다. 웃으면서 울었다. 사진도 많이 찍혔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리 정리를 하는데 이번에는 휴게실로 부르는 거였다. 이때도 생각 없이 따라갔다. 그런데 이번엔 정말 깜짝 서프라이즈 파티였다. 벽에 내 사진과 함께 걸린 KBS 합격 축하 문구. 이때는 진짜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아 울었다. 모든 직원들이 함께 휴게실로 와서 축하해 주셨다. 고작 아르바이트생일 뿐일 수도 있는데 이렇게 가족처럼 축하해 주시다니 너무 행복하고 감사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이게 다 H선생님 덕분. 이 순간을 꼭 기억하고 싶어서 다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정말 힘들고 지치고 외로울 때 꺼내볼 사진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이때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이 있다. 연세대 근무는 총 11개월 계약으로 원래대로라면 오는 11월이 계약 만료인데, 내 졸업식이 8월에 예정돼 있었다. 졸업요건인 토익 고득점 점수를 몇 달 전 겨우 달성해 6년 만에 졸업식을 하게 됐다고 기쁜 소식을 전했었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이 아르바이트 자리는 사실 '재학생, 졸업예정자'만 근무할 수 있는 자리였고 '졸업생'은 불가능했기 때문. 나를 조기 퇴사 시킬지 말지를 두고, 차장님과 팀장님, 그리고 H선생님 사이에 논쟁이 오갔었다고 한다. 미안하지만 규정상 퇴사시켜야 하지 않겠냐는 팀장님과 규정은 그렇지만 새롬 씨를 절대 그렇게 보낼 수 없다고 말려준 차장님, H선생님. 나는 입방정으로 인해 나도 모르게 논란의 불씨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절대 나에게 티 내지 않아 준 직원분들. 결국 좋은 날 이렇게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해 듣게 돼 다행이고 행운이었다.
그렇게 모두의 축복 속에서 연세대 근무를 마쳤다. 근무랄 것도 없이, 매일 출근해서 공부만 하고 한 일도 거의 없지만, 좋은 사람들과 좋은 환경에서 소속감을 가지고 8개월을 보낼 수 있어서 행복했다. 마지막에 짐을 싸서 나오는데, 뭐가 이렇게 가득한지. (그 와중에 옷장에 가을 재킷을 두고 와서 조만간 가지러 가야 한다. 인사드릴 겸 얼른 가고 싶다.) 나중에 꼭 파리 특파원이 되라며 급히 파리 바게트에 가서 쿠키와 우유를 사 와준, 예쁜 편지까지 써준 Y쌤에게도 고맙다. 양손 가득 짐을 들고 택시를 타고 집에 오는데 기분이 정말 정말 묘했다. 이제 정말 새로운 시작이다. 집에 가득 차 있던 토익책과 토플책을 포함해 취업에 관한 교재들, 먼지 쌓인 신문 수개월치를 싹 내 다 버리고 책장을 새롭게 채웠다. 교수님께 선물 받은 취재와 보도 책, 그리고 기자가 되면 쓰라며 교수님과 JTBC Y 선배께 받은 만년필 박스를 예쁘게 배치했다. 이 만년필들 평생 못 쓰나 했는데, 드디어 쓸 수 있게 됐다.
아 맞다 도쿄여행 D-1이었지. 캐리어를 꺼내 짐을 쌌다. 남자친구랑 1주년 겸 여름휴가 겸 여행이 어쩌다 보니 취업여행이 됐다. 나의 새로운 챕터는 이렇게 시작됐다. 다음 편엔 출근 후 일주일이 어떻게 흘렀는지 써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