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새롬 Aug 14. 2024

KBS, 꿈꾸던 회사의 일원이 되다

정신없이 열흘정도가 흘렀다. 피곤해도 일기쓰기(브런치)라고 책상 위 화이트보드에 적어뒀지만 처참히 하루도 지키지 못하고 말았다.


도쿄에 다녀오자마자 하루동안 출근준비를 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아주 가까운 주변부터 조심스레 소식을 알렸다. 특히 전화로 알리고 싶었던 방송진행과 아나운싱(이하 방진아) 친구들, 그리고 MBC저널리즘스쿨(이하 엠저리) 동기들에게 차례로 전화를 걸었다. 다들 진심으로 축하해주어 또다시 감동을 받았다. 방진아 친구들은 대학교 2학년(바야흐로 2019년) 때 만난 숙대 동기들이다. 우린 서로 다 학과도 학번도 다르지만 이금희 선배님 수업에서 우연히 짜인 팀프로젝트에서 만난 이후로 지금까지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먼저 취업하고 자리를 잡아 멋지게 사회생활을 해내고 있는데 올해들어 자주 만나지 못했다. 나 때문인가 싶어 미안하기도 했다. 그래서 꼭 이 친구들에게는 한 명, 한 명 전화를 걸어서 소식을 들려주고 싶었다. 특히 KBS는 우리를 이어준 이금희 선배님의 회사이기도 하니까. 


엠저리 동기들은 지음 팸이라고도 하는데,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용산 지음이라는 청년 공간에 모여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친구들 덕분에 저널리즘스쿨 수료 후에도 기자직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달려올 수 있었다. 같은 상황, 같은 고민에 처해 있기 때문에 더 말도 잘 통했고, 힘들 때 기댈 수 있었고, 무슨 소식이라도 있으면 진심으로 서로를 응원해주고 도와주던 그런 사이다. 사실 합격 소식을 알리기가 조금 미안하기도 했는데 분명 나보다 더 좋은 곳에 갈 친구들이라 그런지 진심으로 축하해주어 고마웠다. 조만간 맥주를 사도록 해야지. 진짜 이 친구들 안 데려가는 언론사들 너무 바보다.


출근 첫 날 입을 정장과 구두를 준비하고, 샘소나이트 가방을 샀다. 샘소나이트 가방은 나보다 먼저 기자가 된 남자친구(엠저리 출신)의 가방을 따라서 샀다. 나도 꼭 기자가 돼서 매일 보던 그 가방을 매고 싶었는데 뭔가 버킷리스트를 이룬 기분이 들어 좋았다. 그 친구처럼 나도 우산을 꼭 넣고 다닌다. 연애 초기에 항상 우산과 텀블러를 가방에 가지고 다니는 모습이 멋져 보였었다. (근데 이제 안 가지고 다님. 나만 가지고 다님) 또 출근할 때 신을 단정한 운동화를 샀고, 수첩과 볼펜, 카드 지갑 등등을 샀다. 명품 아니고 모두 무인양품에서. 남자친구는 이해 못하지만 무인양품이 나에겐 곧 명품이다. 3만원짜리 운동화가 얼마나 편하고 예쁜지. 220이고 깔창을 까는데도 좀 크다는 것이 단점이다. 아이폰 사용자이기 때문에 에이닷으로 통화녹음이 가능한 SK로 번호이동을 하려다 일요일이라 실패했다. 지금 집 인터넷부터 TV까지 몇 년 째 LGU를 사용하고 있는데 바꾸려니 여간 번거롭다. 언제 통화녹음 해주실 건가요? 저번에 전화가 왔길래 제안도 했는데 아직 더딘가 보다. 


그러다보니 하루가 금방 흘렀다. 여행의 피로와 출근 준비 긴장 탓에 잠을 설쳤지만 월요일 아침이 밝아왔다. 회사에서 지정해준 기관에 건강검진부터 하러 갔다. 평일 오전, 여의도 한복판에 누가봐도 신입사원 같은 모나미 정장과 새것냄새나는 가방과 운동화를 신고 걸으니 뭔가 머쓱하기도 했다. 건강검진은 빠르게 진행됐다. 요새 건강검진은 정말 한국답게 빠르고 효율적으로 진행된다. 모두가 똑같은 가운을 입고 앉아 있으니 사람들이 되게 기계의 부품같이 느껴졌다. 속옷을 벗고 있어서 그런지 혹은 검진 결과가 새삼 두려워 그런지 표정이 다들 어딘지 모르게 긴장돼 보인다. 각각 검진처에서 카드를 태그하면 접수가 되고 다음 번호에 따라 쭉쭉 이동하면 된다. 텍스트로 설명을 잘 못하겠는데 하여튼 한국답다. 교정 시력이 1.0이라 다행이었고, 몸무게는 42kg. 올해는 좀 더 찌워야겠다.


출근까지 시간이 남아 스타벅스에서 신문을 읽으며 파니니와 커피를 마셨는데, 딱 점심시간과 겹쳐서 그런지 여의도 스타벅스 인파가 장난 아니었다. 스마트 오더로 주문했는데 대기번호가 두자리 수를 홀딱 넘었다. 사실 배고파서 밥을 먹을까 싶기도 했지만, 긴장도 되고 여의도 한복판에서 점심시간에 혼밥할 만한 식당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의 안식처인 스타벅스로 가서 안정을 취했다.


어쩌다보니 출근 시간에 딱 맞춰서 도착하게 된 회사 로비. 면접이 아니라 출근을 하러 KBS 로비에 다시 오다니 너무 감격스러웠다. 직원의 안내를 따라 내가 근무하게 될 4층 디지털뉴스부로 향했다. 부장님께 인사하고 자리를 배정받았다. 디지털뉴스부서 특성상 편집실 등 보조 인력들과 협업이 많기에 많은 분들께 인사를 하러 다녔다. 혹시 이름을 까먹을까 소개를 받자마자 어제 산 수첩에 열심히 휘날리는 글씨체로 바로바로 적었다. 특징과 함께. 역시 대 KBS 답게 다들 젠틀하게 나를 환영해주셔서 기뻤다. 내가 투입된 기간이 하필 올림픽 기간이라 가장 바쁜 시기이고, 다들 정신이 없는 시기라 미안하다고 하셨다. 나는 빠르게 눈치껏 업무를 익혀서 도움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정신 없는 하루가 지나고 퇴근할 때쯤, 면접에 들어오시기도 했던 박 모 선배가 철야근무로 출근해 마주쳤다. 선배는 합격 발표가 났던 저번주 바로 내게 카톡으로 인사를 주셨다. 그때 정말 꿈 같았다. 내겐 아직도 연예인 같은데, 내 상사라니. 박 모 선배는 정말이지 너무 좋다. MBTI도 나와 가장 시너지가 나는 ENTP시다. 그들의 귀찮음을 나는 야무지게 보완할 수 있고, 때로 무심한 모먼트가 늘 예민한 나에게 역설적으로 가끔 다행일 때가 있다. 무엇보다 일 잘하는 모먼트에서 배울 점이 많다. (모두 내 남자친구 특징임). 그리고 우리는 서로 정반대이기에 서로를 신기해하며 좋아한다는 것도 재밌는 포인트다. 앞으로 선배와 만들어낼 시너지가 기대된다. 아직 신입이기에 욕심을 부려서도 안되고, 조심스러운 것도 많지만, 그래도 근무하는 동안 선배와 함께 재밌는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해보고 싶다. 선배, 저 열심히 일 할 준비 돼있으니 맡겨만 주십쇼. 기회만 주십쇼.


그리고 또 함께 하게 된 한 분, 최 모 선배. 최 선배는 내 옆자리다. 첫 인상부터 시크하고 프리한 모먼트가 정말 기자답다고 느꼈다. 근데 재밌으시기까지 하다. 반전매력. 같이 일하면 옆에서 혼잣말을 자주 하시는데 나는 혼잣말 하는 사람 되게 좋아해서 들으면 재밌고, 나도 모르게 '리액션 봇'이 된다. 그리고 선배는 솔직하다. 박 선배와의 케미를 구경하는 것도 재밌다. 앞으로 일적으로는 물론 사회생활 부분에서 배우고 싶은 점이 많을 것 같은 선배다. 흡연장도 데려가 주시고, K는 어떤 인재를 좋아하는지, 그리고 사내 분위기가 지금 이러이러하니 조심해야 할 점까지 명확한 핵심을 잘 알려주셔서 존경심이 뿜뿜했다. 선배 MBTI는 IS, 뒤에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가 좋아하는 JTBC T 차장 선배와 비슷한 모먼트들이 많다. 그 선배는 가끔 나에게 답답한 감정을 느끼셨던 것 같은데 선배가 그렇게 느끼지 않으시도록 행동을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은 올림픽을 위주로 했다. 실시간 중계에서 시청자가 봐야 할 내용과 경기 결과, 주요 장면들을 재편집해 디지털 기사로 송고하는 일이었다. 스포츠엔 자신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어차피 시청자는 스포츠 전문가가 아닌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일 거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고 자신감이 붙었다. 그러니까, 비전문가인 내가 생각하고 보는 시선이 오히려 더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대신 기자로서 일하는 만큼 모든 정보를 꼼꼼하게 한 번 더 확인하고, 팩트를 체크하기 위해 올림픽 공식 홈페이지를 자주 들여다 봤다. 그래도 그대로 전달이 아닌 약간의 해설은 덧붙이기 위해서 경기 시작 전부터 다양한 정보를 찾아보며 공부했다. 선수의 지난 대회 성적이라든지 별명이나 서사를 찾아볼 때가 즐거웠다. 해당 종목의 특징과 수상 가능성이 높은 선수는 누구인지, 대회 장소는 어디인지들을 주로 속성으로 공부해 그에 맞는 장면이 나오면 독자들에게 전달했다.  


디지털 기사 특성상 제목과 썸네일 구성이 중요하다. 같은 내용이라도 제목에 따라, 썸네일에 따라 조회수가 다르기 때문이다. 사실 기자로서 조회수를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조심스럽긴 하다. 누군가는 부정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조회수란 좋은 기사의 지표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훌륭한 요리사라도 손님에게 어필하지 못하면 결국 파리만 날리고 만다. 내가 정성껏 준비한 기사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그러니까 손님들이 요리사 실력을 알고 찾아오기 쉽게, 홍보를 하는 과정 역시도 중요하니까 말이다. 디지털 저널리즘에서 그것은 조회수라는 숫자로 나타난다고 나는 생각한다. 조회수를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제목과 썸네일 구성이다. 올림픽 특성상 취재 내용은 별반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지상파 3사에서 똑같이 중계하는 올림픽 화면 중에 어떤 주요 장면을 잘 캐치해 맛 좋은 제목과 구성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할 것이냐가 내가 열흘동안 고민하고 노력한 부분이다. 


솔직히 첫 열흘간 성적은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잘한다는 칭찬도 많이 받고, 내 장점인 빠르게 눈치껏 적응하기가 아주 잘 통해서 선배들 인정을 많이 받은 시간들이었다. 이제 다음주부터가 중요하다. 잘해왔다고 자만하지 말고, 고꾸라지지 말고, 늘 겸손하고 처음부터 배우려는 마음으로 새로운 한주를 만들어 나가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벼랑 끝 나를 살린 KB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