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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콤파스 Feb 23. 2023

개발자의 직업병

믿음의 부재

개발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도 직업병이 있을까?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믿음과 관련된 직업병이 있다.


첫 번째는 나 자신을 잘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능력에 자신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 종종 자신이 없긴 하다) 무언가 개발을 진행하다 보면 테스트용으로 잠깐 이 부분은 이렇게 수정해야지, 일단을 이렇게 두고 나중에 이쁘게 리펙토링 해야지 등의 생각을 하면서 코드를 더럽게 짜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여러 기능들을 아직 다 테스트해보지도 않았는데 처음부터 공들여서 코드를 이쁘게 짜는 것이 비효율적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언젠가 추가했던 수정했던 삭제했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실제로 내가 이틀 전 추가했던 코드 한 줄 때문에 알고리즘에 문제가 생겼는데 그거 하나 찾으려고 한참이 걸렸다. 에러라도 뜨면 몰라 뭔가 잘못됐는데 코드는 돌아가는 게 더 미칠 노릇이다. 코드가 길어지고 알고리즘이 복잡해질수록 더 문제는 심각해진다. 정말 얼토당토 없는 경우는 일상생활하면서 '아! 이렇게 수정하면 효율적이겠다'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내가 코드까지 수정했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때문에 나는 나 자신을 잘 믿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내 기억력을 믿지 않는다. 때문에 계속 기록하고 정리한다. 직장 동료는 나한테 뭘 물어볼 때마다 내가 자꾸 정리해서 말씀드린다고 해서 왜 항상 정리하냐고 그런다. 정리해서 일목요연하게 잘 설명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내 기억력을 믿지 않기 때문에 한 번은 정리를 하고 내용을 공유하는 습관을 가지게 됐다. 사실은 정리 안 하고 말하면 내가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를 말을 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ㅎㅎ


두 번째는 다른 사람의 말도 잘 믿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건 주로 딥러닝 관련 연구와 일을 하면서 생긴 버릇이다. 대학원 연구실 생활을 하다 보면 교수님과 미팅을 하거나 세미나를 하는 경우가 생긴다. 대부분의 이공계 교수들은 명확한 표현을 좋아하고 애매하고 모호한 표현을 혐오한다. '성능이 10%가량 좋아졌어요'라는 말에는 성능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어떤 메트릭을 썼는지에 대한 내용이 빠져있다. 이렇게 명확하게 표현해야 하는 환경에서 지내다 보니 나도 명확한 표현이 아닌 글은 잘 믿지 않게 된 것 같다. 좋지 않은 점은 가끔 일상생활에서도 많은 것들이 의심이 간다. 가령 뉴스에서 큰 창문이 있는 집의 경우 문을 닫아두더라도 집 내부 열의 40% 가 손실될 수 있다는 내용을 보면, 어떻게 측정했고 40%는 무엇에 대한 40% 인지 생각하게 된다. 간혹 이런 쓸데없는 것에 의문을 품게 된다. 


또한 딥러닝 관련 일을 하다 보면 논문 사기꾼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학회와 저널의 종류가 정말 많고 논문에는 본인의 연구가 뛰어나다는 자랑이 아주 많다. 사실 내가 쓴 논문도 그랬기에 이해는 한다만 딥러닝 모델 개발을 하는 입장에서는 프로젝트 진행에 쓸 기본 모델을 선정하기 위해 정말 많은 논문을 봐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중에서는 실제로는 잘 동작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엄밀히 말하면 저자가 세팅한 환경에서는 잘 동작하지만 실제 환경에서는 그다지 뛰어난 성능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체리피킹에 하도 당하다 보니 기본적으로 논문을 볼 때는 아니꼬운 시선으로 보게 된다. 영어도 잘 못해서 하나 읽기도 굉장히 힘든데 막상 그다지 쓸만한 내용이 아니면 기운이 빠진다. 




글을 쓰다 보니 이 사람은 본인도 다른 사람도 믿지 않는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할 것 같은데, 사실 일상생활에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는 그렇지 않다. 다만 업무에 관련한 내용이거나 전자 제품을 사야 한다거나 특정 정보를 얻기 위해 블로그를 본다거나 할 때 툭 튀어나오는 직업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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