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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캐슬 Aug 23. 2022

이 시대의 카케무샤를 아시나요

쓰다 버려지는 사람들


카케무샤란 과거 일본에서 군주(다이묘)를 암살에서 지키기 위해 가짜로 내세운 군주로, 비슷한 얼굴을 가진 사람이 군주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다. 카케는 그림자를 뜻하고 무샤는 무사를 의미한다. 그림자 무사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의 이병헌이 카케뮤사다.




카케무샤가 과거의 유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현대에도 형태가 조금 바뀐 카케무샤는 존재한다. 직장생활을 하면 알겠지만 회사에는 직책이라는 계급이 존재한다. 그리고 과거의 그들 처럼 굳은 일이나 위험한 일을 대신하면서 쓰다 버려지는 비정규직이라는 카케무샤가 있다. 현대의 카케무샤는 과거처럼 얼굴이 똑같은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회사 내부에서는 비정규직인데, 외부에서는 정규직으로 알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대학에도 계급이 존재한다. 그리고 조금씩 형태는 다르지만 교수의 강의를 대신하는 카케무샤가 존재한다.

이름도 대학마다 조금씩 달라서, 겸임교수나 시간강사, 연구조교수, Post-doc(비정규직 박사 후 연구원도 강의가 가능하다) 등으로 불린다. 이렇게 다양하게 구분하는 이유는 각각이 상이한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본업이 따로 있어서 4대 보험을 받고 있거나 대학 소속 연구원이거나 대학원생이거나.




이들 카케무샤들은 이름은 달라도 모두가 교수라는 군주 아래에서 교수가 건네주는 강의를 하게된다. 대학에서는 모두 그들이 카케무샤(강사)라는 것을 알지만 강의를 듣는 대학생들은 교수라고 부른다.




내가 대학에서 첫 카케무샤 생활을 시작한 것은 집 근처의 전문대로 박사학위 과정 4년 차쯤이었다. 그 당시는 시간강사법이 있기 전이다 보니, 선배나 인맥을 통해 알음알음 소개를 받아 강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는 운이 좋게도 졸업한 선배의 강의를 이어받게 되었는데, 슬프지만 딱 1년만 강의할 수 있었다. 강사들 사이에서는 절대로 시행 안될 거라던 시간강사법이 하필이면 1년 뒤에 시행되어 버린 것이다.




한편으로 시간강사법은 모든 카케무샤에게 동등한 기회를 주었다. 알음알음 비공식적으로 카케무샤가 되는 것이 아닌, 공식적인 강사 임용 공고로 모두가 카케무샤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받게된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시간강사법 초기에는 대부분의 대학이 4대 보험 필수 지원과 최소 강의를 보장해주어야 하는 시간강사를 원하지 않았다. 본업이 따로 있는 겸임교수를 원했다. 그렇다. 대학 카케무샤들도 계급이 있었다.




그렇게 내 카케무샤 경력은 1년 만에 끝났다.

놀랍게도 슬픔은 없었다.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해야 할 시기였기 때문이다.

반년 뒤, 나는 박사학위를 받았다.






끌어당김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강하게 바라면 어떤 형태로든 이루어진다는 이론이다. 나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군대에서 작성한 미래일기를 보면 2020년 즈음 박사학위를 받을 것이라고 적혀 있었고 미국이나 일본에서 공부를 이어가겠다는 것까지 적혀있다.




박사를 받기까지 5년 6개월. 졸업하면 해외로 Post-doc을 가겠다는 꿈은 잊지 않았다. 학위 심사가 끝나고 졸업까지 2달 정도의 기간이 있었기에, 하루하루 나를 받아줄 해외 연구소를 검색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여기까지만 보면 모든 것이 순탄한 삶이었다. 하지만 오라는 끌어당김의 법칙은 안오고 나쁜 일은 한 번에 몰려온다는 머피의 법칙이 나에게 찾아왔다.




첫 번째 시련은 졸업과 동시에 찾아왔다. 일본의 연구소로 Post-doc을 가고자 했지만 한일 양국 간의 정치적 이슈가 발생하면서 No-Japan 운동이 시작되었다. 애초에 학과도 마이너하고 전공도 마이너 해서 일본 내에 연구소도 몇 개 없었는데, 양국의 사이까지 나빠지니 아무리 찾아도 자리가 나오질 않았다. 타이밍이 나빴다.




어쩔 수 없이 모교의 연구소에서 Post-doc을 시작했다. 운이 좋게도 졸업과 동시에 선배가 자리를 알아봐 주셨고 모교의 교수님이 내게 기회를 주셨다. 모교에서 Post-doc 생활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해외 연구소를 알아보고 있었다. 일본과의 관계가 나아질 기미가 없다 보니, 자연스레 미국 연구소로 눈을 옮겼다. 지도교수님께서 미국 대학 연구소를 연결해주시고자 하셨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짧은 고민을 비웃 듯이 코로나가 시작되었다. 그렇다. 두 번째 시련인 코로나가 찾아왔다. 그렇게 모교에서의 Post-doc 생활은 계속되었다.




정규직의 무리에 들어가고 싶은 것은 박사도 마찬가지다




다시금 카케무샤가 되었다.

Post-doc으로 한 학기를 보내니, 학부 강의 1개와 대학원 강의 1개를 배정받게 되었다. Post-doc은 연구원 신분으로 강사는 아니다. 강의는 부가적인 것으로 연구가 주 업무다. 그래서 시간 강사라는 직책은 주어지지 않았지만 카케무샤는 맞았다. 학생들에게 교수라고 불리게 되었으니까.




맡게 된 학부 강의는 박사 때의 전공이라 강의 준비를 안 해도 될 정도로 편했다. 어제도. 오늘도 공부했던 내용을 가르치면 되었다. 대학원 강의는 논문 작성과 연구 방법론에 대한 강의였다. 프레시 박사 입장에서 논문 작성법에 대해 가르치는 것은 너무 쉬웠다. 최근까지 연구를 했으니까, 누구보다도 실용적인 연구 방법론을 잘 알고 있다고 자신했다.




한 학기가 지나니, 학생들에게 강의 평가를 받게 되었다. 강의 평가를 열어보면 굉장히 자세한 점수가 적혀있었다. 교강사가 학생에게 평점을 주는 것처럼, 교강사도 학생들에게 점수를 받는데, 강의 평가를 진행한 모든 학생의 평가에 따라 A+부터 F의 점수를 받는다 (물론, F를 받는 교강사는 아직 보지를 못했다.)




교강사는 대학생보다 노골적인 평가를 받는다. 강의 평가에는 수업을 들은 학생들의 코멘트와 학과 전체 교강사, 비전임 교원(강사)끼리도 비교 분석하여 교강사의 위치가 적혀있다. 어쩌면 인기 순위일지도 모르지만... A4용지 2~3장에 적힌 내용을 하나씩 읽다 보면, 짧은 16주 동안 학생들과 함께했던 수업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다.




슬프게도 교수와 카케무샤(강사)의 계급적인태 차이를 알게 되는 것도 이 시기이다.



교수는 군주이다 보니 강의를 못한다고 잘릴 일이 없다. 학생들이 최악의 강의라고 점수를 낮게 주어도 교수학습법을 수강하면 그만이다. 올바른 교수법을 배워서 잘 가르치라는 학교의 따듯한 보살핌이다.




카케무샤는 잘린다. 정확히는 재임용이 안된다. 군주를 대신할 카케무샤는 많다.


카케무샤도 교수학습법을 수강할 수 있지만 다음 재임용에 실패한다. 대학에서도 학생에게 강의평을 좋게 받지 못한 강사를 굳이 또 채용할 필요는 없으니까. 당연한 처사다. 하지만 강의평이 좋아도 재임용이 안될 수가 있다. 전임 교원이 충원되거나 학생 부족으로 강좌가 줄어들면, 자연스레 강사는 강의를 맡을 수 없게 된다. 교수와 강사의 비율도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군주를 대신하는 건 군주이고, 대신할 카케무샤도 많다.




2년이 지나니 연구조교수가 되었다. 친하게 지내던 강사분이 강의평이 좋지 않아 재임용이 되지 않았다. 한 학기가 지나고 나는 사업을 하고자 연구조교수를 그만두었다. 이제, 연구원이 아닌 순도 100%의 시간강사가 되었다. 학교에서의 수입이 시간 강사료 밖에 없게 된 것이다.




카케무샤의 업무는 1월과 7월 초에 정해진다.

다음 학기 어떤 과목이 열리고 누가 배정받을지가 정해지는 시기다. 카케무샤에게 매우 떨리는 시기이기다. 연락을 받으면 강의를 해서 돈을 받는 것이고 연락을 받지 못하면 강의를 못한다. 이번 학기는 내 전공과 같은 군주(교수)가 채용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강의를 못할 거라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과목을 3개나 맡게 되었다. 시간강사가 받을 수 있는 최대의 강의 개수였다. 오히려, 강사를 시작하고 가장 많은 강의를 받게 된 것이다. 이면에는 매우 간단한 이유가 작용했다.




3개 과목.

재임용이 되지 않은 지인 강사의 강의를 내가 맡게 된 것이다. 이렇듯 강사는 파이가 정해져 있고 그것을 나누어 먹는다.



그렇습니다.



나는 학생들이 교수라고 부르지만

나는 대학 소속의 비정규직이자

나는 어제 쫓겨난 동료를 뒤로하고 살아남은

나는 대학의 카케무샤

나는 대학 시간강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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