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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Sep 20. 2024

절제된 아름다움 속 숨겨진 진실

Stories: Very Demure


Stories: Very Demure
절제된 아름다움 속 숨겨진 진실





올여름 패션계를 장악했던 브랫(Brat)과 블루 코어. 그 장난스러움과 화려함도 더위와 함께 서서히 잦아들고 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곧 다가올 가을의 새로운 트렌드를 반가이 맞이하는 것이다.




다시 차분해져야 할 때


이번 가을엔 이 단어만 기억하면 된다. 드뮤어(Demure). 얌전한, 조용한 정도로 해석될 수 있는 이 형용사가 새로운 트렌드라니. 쉽게 감이 잡히질 않는다. 사실 이 단어는 겸손하고 차분하며 내성적인 사람들, 나아가 주로 여성성을 묘사하는 의미로 줄곧 사용되어 왔다. 사전적 의미를 좀 더 살펴보면 남들의 주의를 끌지 않는 사람. 쉽게 말해 ‘관종’과는 정반대의 뉘앙스를 품고 있다.

그렇다면 패션에서의 드뮤어는 어떻게 재현될 수 있을까? 일단 패턴과 컬러를 최소화하고 과감하고 화려한 소재나 장식을 피하는 것이 기본이자 철칙이다. 그렇다. 본 트렌드의 핵심은 바로 절제다. 하지만 당신이 만약 패션에 관심이 좀 있는 독자라면 이쯤에서 이러한 의문이 들 것이다. 작년 가을 패션계를 평정했던 조용한 럭셔리(Quiet luxury), 올드머니(Old Money)와는 과연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인간 드뮤어 소피아 코폴라(Sofia Coppola) ⓒsherisilver.com, ⓒvmagazine.com, ⓒimdb.com


물론 겉보기엔 비슷하다. 로고나 패턴 등 눈에 보이는 요소들로 럭셔리함을 강조하지 않고, 대신 심플한 아이템을 적재적소에 사용하여 부드럽고 우아한 분위기를 내는 것. 하지만 이 둘엔 분명 차이가 있다. 조용한 럭셔리와 올드머니가 사회적 역할이나 위치를 대변하는 데에서 기인했다면, 드뮤어는 입는 이의 애티튜드 자체를 겨냥하고 있으니까. 와,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꽤나 골치 아프다. 패션과 뷰티, 인테리어를 넘어서 이젠 태도마저 트렌드화 되어버리다니.


절제의 묘미를 보여주는 드뮤어 룩 ⓒeditorialist.com, ⓒpinterest


때문에 드뮤어 룩을 연출할 때는 앞서 언급한 절제의 미덕을 항상 상기해야 한다. 할까 말까 고민스러울 땐 한 번 해보는 것이 인생의 지침이라면 드뮤어는 그 반대다. 할까 말까 고민스러울 땐 하지 마라, 즉 뭔가 더 걸쳐야 하나, 입어야 하나, 달아야 하나...라는 갈등에 빠져있을 땐 그냥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번 가을은 최소한의 아이템으로도 충분히 멋질 수 있다. 덜어낼수록 충만해지는 게 바로 드뮤어니까.


Lemaire 2024 FW
THE ROW 2024 FW


클래식한 무드가 돋보이는 LEMAIRE나 THE ROW, 편안함과 안정감을 강조한 벨라(Bella Hadid)의 베이지 셋업과 알렉사 청(Alexa Chung)의 데님 아웃핏을 참고하면 보다 직관적으로 이 알쏭달쏭한 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을 듯. 단정하고 얌전하며, 조용하고 차분한 드뮤어가 어떤 식으로 우리에게 ‘입혀질 수 있는지’를 말이다.


벨라 하디드(좌)와 알렉사 청(우) ⓒglamour.com, ⓒvogue.com





트렌드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


그러나 의문이다. 올드머니도 그렇고 드뮤어도 그렇고 이 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건 단지 스타일뿐만이 아닌 한 사람의 정체성을 좌우하는 분위기와 애티튜드다. 이전 트렌드의 대부분이 특정 아이템이나 컬러 등 외적인 부분에 치중되어 있었다면, 최근의 경향은 단지 표면적인 것만이 아닌 좀 더 깊고 내밀한 면을 건드리려 한다. 이제 트렌드는 단순히 비슷한 무드를 추구하는 것을 넘어서서 각자의 이상향까지 한 지점으로 통합시켜 버리려 하는 것일까?


줄스 르브론의 틱톡 속 한 장면 ⓒcgwall.com


최근 틱톡에서 화제가 되었던 줄스 르브론(Jools Lebron)의 영상, ‘내가 직장에서 얌전하게 지내는 방법’은 이러한 트렌드의 몰개성적 움직임을 잘 꼬집는다. 현재 떠오르는 드뮤어 코드를 전면적으로 내세우면서도,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화려하고 과장된 제스처를 취하며 세련되게 비판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트렌드가 아닌 자기 인식과 자신감, 이 둘이라는 것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유머러스한 풍자가 돋보이는 그녀의 영상에 대중들은 열광적으로 화답했다. 오죽하면 나사(NASA)의 SNS에도 Demure라는 단어가 등장했을 정도니까. 이와 같은 반응은 대중 역시도 ‘요구된 트렌드’에 큰 염증을 느끼고 있다는 걸 증명한다. 대체 그대들이 생각하는 얌전함과 조용함, 차분함은 무엇이란 말인가?


ⓒNASA Earth


어쩌면 트렌드는 이제 가이드(Guide)가 아닌 오더(Order)가 되어버린지도 모른다. 올드 머니는 태생부터 부유한 사람의 조용한 사치를, 드뮤어는 마모되고 정제된 얌전한 캐릭터를 연기하도록 유도한다. 그렇지 않으면 감각 없는 사람이라는 오명을 씌우면서. 걱정이다. 더 이상 트렌드가 당시의 문화적 함의나 패션의 역사를 파악하는 척도가 아닌, 단발적이며 연극적인 인스턴트 퍼포먼스 정도로 변질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


그렇다고 해서 매 분기 경쾌하게(?) 급변하는 트렌드를 마냥 무시할 순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 개인이 사회성을 획득하는 데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테지만, 관심사를 공유하는 데에서 피어나는 뿌리 깊은 소속감은 웬만해선 외면할 이가 없다.

그러니 트렌드를 맹목적으로 따르지 마라... 이런 뻔한 충고는 별 소용이 없다. 첫째, 이 정도는 누구나 알고 있으며 둘째, 누구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외감과 뭔가 뒤쳐지는 느낌은 결코 느끼고 싶지 않으니까. 특히 패션에서 만큼은!


가까운 관계일수록 취향도 닮아가는 법 ⓒpinterest


그래서 오래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트렌드를 현명히 활용할 수 있을까? 답은 이렇다. 트렌드가 가진 불편한 지점을 오히려 긍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솔직히 입던 옷만 계속 입으면 재미없는 게 사실이다. 시간은 흐르고, 문화는 변하고, 그에 따라 미감 역시 변하고, 내 신체도, 분위기도 끝없이 변하니까. 그렇다면 대책 없이 뒤바뀌는 트렌드는 어쩌면 숱한 도전의 기회가 되어줄 수도 있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따르고 있을테니 괜시리 눈초리를 받을 순간도 없다.

앞서 언급했던 드뮤어 역시 그렇다. 평소 왈가닥 소리를 듣던 내가 당연히 어울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차분한 무드의 옷들을, 주위의 우려나 비난 없이 맘껏 입어볼 수 있는 좋은 찬스가 찾아온 것이니. 바로 이것이 트렌드의 순기능이다. 나도 모르는 나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 혹시 알아? 의외로 너무나 잘 소화하게 될지.


셔츠와 데님은 드뮤어 룩의 대표 조합 ⓒwhowhatwear.com


쏟아지는 트렌드 앞에서 당황하고 있을 독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은 그 어떤 것으로도 정의될 수 없다고. 당신은 오직 당신이라고. 이 한 문장만 온전히 마음속에 장착시켜 둔다면 당신은 더 이상 트렌드에 함몰되지 않을 것이다. 또 휩쓸리면 좀 어떤가. 언제든 다시 제자리를 찾아올 텐데. 그러니 전혀 망설일 필요도, 겁먹을 필요도 없다. 그토록 숭배하며 한 시기를 통째로 바쳤던 위대한 유행들도 알고 보면 그저 한 철 신나게 즐기고 홀연히 떠나버리는 여행과도 같은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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