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ies: Fashion Inspired by Folk Costum
Stories: Fashion Inspired by Folk Costume
옛날엔 이런 옷을 입었답니다
전통 의상들은 현대 패션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재해석되었을까? 여기서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사실! 나라 별로 특징이 뚜렷한 동아시아의 민속 복식들과는 달리, 오랫동안 민족과 국가의 뒤섞임을 반복해 온 서양권은 상대적으로 보편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따라서 서양의 전통 의상은 나라 별 차이 대신 시대적 차이에 중점을 두어 분류해야 한다고.
1837년부터 1901년까지. 빅토리아 시대는 그 이름대로 빅토리아 여왕의 지배하에 있던 영국(대영제국)의 전성기를 가리킨다. 과학 기술은 물론 예술까지 문화적발전이 어마어마했던 시기.
하지만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하지 않았고 대부분 가사에 전념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착장 역시 실용적일 필요는 없었다. 그 악명 높은 코르셋이 유행했던 것도 바로 이 시기. 수많은 자수와 장식 역시 필수였다. 어깨를 노출시키는 낮은 넥라인과 과도한 프릴이 달린 벌집 모양의 치마가 유독 눈에 띈다. 대신 메이크업은 음란함의 상징으로 여겨져 그리 즐기지는 않았다고.
Who Decides War의 2025 SS는 이러한 빅토리아 시대의 패션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외형적으로 봐선 똑 닮은 부분을 찾기 어렵지만 요점은 웅장하고 강렬한 정신에 있다. 실용주의의 극점을 달리는 미국인 디렉터의 시선에서, 나아가 여러 가지 정보가 넘쳐나는 현대 문명의 정점에서, 그들은 독특한 무드로 자기만의 빅토리아 시대를 풀어낸다.
여전히 독특한 미감으로 관객을 매료시키는 Moschino 역시 빅토리아 시대의 로맨틱함에서 의상의 힌트를 얻었다. 19세기 여성들의 최애탬인 포크 보닛을 떠올리게 하는 모자부터 스커트를 흐르듯 수놓는 프릴 장식과 리본이 달린 코르셋까지. 러블리한 파워가 넘쳐난다.
그렇다면 지금부턴 조금 더 과거로 떠나볼까. 이번엔 15-18세기의 근세 유럽이다. 종교적 갈등과 전쟁으로 얼룩졌던 이 시기는 현대에 와선 여러 판타지 게임의 시대 배경으로 자주 채택될 만큼 다사다난했다. 왕의 등장과 그 밑으로 늘어선 수많은 계급, 불안정한 사회 분위기, 게다가 중세부터 이어져 온 여러 미신들도 성행했던 때라 이야깃거리는 넘쳐난다.
그러나 근세 유럽의 복식 문화를 정밀하게 나누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얼핏보면 다 비슷해 보이니까. 때문에 각 시기를 대표하는 특징을 간결한 키워드로 뽑아내 서로 비교하는 편이 훨씬 이해가 수월하다. 우선 16세기 르네상스엔 인체미를 극대화시킨 실루엣을 고집했다. 코르셋으로 허리를 잘록하게 만들고 패드로는 어깨와 가슴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말이다. 시대를 아우르는 영원한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상상해 보면 되겠다.
17세기 바로크엔 루이 14세라는 트렌드 리더가 있었다. 단신이던 그가 하이힐을 신은 모습은 지금 봐도 파격적. 이 시기엔 남성 역시 여성 못지않은 화려한 장식을 선호했다. 레이스와 리본은 물론 넓은 넥 칼라와 깃털이 달린 모자, 남성의 상체를 그대로 본 딴 모양의 더블릿(doublet) 등 남성용 아이템이 우수수 쏟아져 나오던 시기였다.
마지막으로 18세기의 로코코 패션은 어떨까. 이 시절 패션 아이콘은 그 유명한 마리 앙투아네트. 패션에 일가견이 있는 영화감독 소피아 코폴라(Sofia Coppola)가 동명의 영화를 제작한 데엔 다 이유가 있었다. 여성적인 곡선과 리본, 레이스, 프릴 등 장식적인 요소가 부각되었고 역사상 가장 거대한 헤어스타일이 성행했던 것도 바로 이 때다. 화려함의 정점인 셈.
알록달록한 색채와 꽃모양의 자수. 헝가리의 전통 의상엔 보는 것만으로도 싱그러워지는 자연미.가 가득하다. 근데 좀 의외인 건 이 옷에 뚜렷한 이름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저 전통 의상을 지칭하는 네프비셸레트(NÉPVISELET)라는 단어만 있을 뿐. 이토록 존재감이 넘치는데!
Nanushka의 디렉터 산드라 샌더(Sandra Sándor)는 2024 FW를 준비하며 헝가리에서 보냈던 자신의 유년시절을 떠올렸다고 한다. 자연 속에 친밀하게 녹아드는 그들의 패션을 바라보며 훗날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꿈을 품었었기 때문. 볼륨감 있는 조끼와 묵직한 코트에 헝가리 유목민들의 복장을 담아내고, 간간이 보이는 자수 디테일을 절제된 컬러 팔레트와 접목시켜 세련됨을 취했다.
헝가리 못지않게 강렬한 잔상을 남기는 러시아의 전통 의상 사라판. 비잔틴 문화의 영향으로 화려한 직물을 채택했으며 이에 진한 색감과 무늬까지 더해져 극강의 꾸꾸꾸템이 되었다. 붉은색을 주로 쓰는 이유는 악을 물리친다는 전설 때문이라고. 머리 장식으론 골드빛을 선호했는데 이 역시 종교적 이유다. 어딘가 모르게 신비로움이 느껴지는 의상.
SAINT LAURENT의 2020 SS는 러시아 무드와 히피의 조합이다. 런웨이를 따라 늘어선 골드와 그린, 블랙과 레드의 조합에서 종교화에서나 볼 법한 영험함까지 느껴진다. 또한 크리스탈과 금빛 자수 등 반짝이는 장식을 듬뿍 가미해 진짜 화려한 직물이란 이런 것임을 제대로 보여준다.
전통 의상계의 꽃인 스코틀랜드의 킬트. 고대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명목을 유지하며 꺾이지 않는 위력을 과시하는 중. 가문마다 조금씩 다르게 생겼다는 특유의 타탄 패턴은 아마 현대에서 가장 선호하는 전통 무늬가 아닐까 싶다. 지금 당장 옷장 문을 열어보아라. 분명 비슷한 느낌의 아이템 하나 쯤은 있을테니까.
마치 과거의 스코틀랜드로 돌아간 것만 같은 모습의 CHANEL 2013년 PRE-FALL 컬렉션. 레드 타탄은 물론이며 아가일 체크, 목을 완전히 감싸는 높은 넥칼라까지 당시 민속 의상에서 취할 것들은 모조리 가져왔다. 재킷이나 코트, 타이즈와 머플러 같이 현대적인 아이템에 대입했을 때도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섬세한 해석이었다.
시간을 되돌리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시간 안에서의 소중한 경험들을 기억하고 되뇌이며 마음 한 켠에 고이 간직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리고 이는 지금 이 순간, 현재를 헛되이 하지 않아야 할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