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ies: Nobel Prize Winners
Stories: Nobel Prize Winners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의 패션 감각 탐구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노벨 문학상. 올해엔 그 주인공이 우리나라에서 탄생하는 경사를 맞았다. 언어도 문화도 서로 다른 먼 나라의 누군가와, 오직 글만으로도 충만히 교감할 수 있다는 믿음. 작가 한강의 수상은 문학이 가진 초월적 힘을 여실히 보여주기에 더욱 뜻깊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엔 역대 노벨 수상자들의 문학 세계와 그들의 소소한 패션에 대해 함께 다루어보려 한다. 모두 다룰 수 없어 아쉬운 맘이 크지만, 문학에 대한 순수한 애정으로 엄선하였으니 너그러이 맞아주시길.
1957년, 노벨상을 수상한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당시 그의 나이는 43세, 역대 수상자 중 두 번째로 어린 나이였다. (역대 최연소 수상자는 1907년, 41세의 나이로 수상한 러디어드 키플링) 그러나 이방인(1942), 페스트(1947) 등 카뮈의 작품에는 또래에선 절대 발휘될 수 없는 통찰력이 묻어난다.
카뮈 사상의 핵심은 바로 부조리. 여기서의 부조리는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해한 영역, 즉 이성으론 납득할 수 없는 여러 일들 속에서 끝없이 살아내야만 하는 인간의 삶 그 자체다. 말 그대로 그렇다고 죽을 순 없잖아... 인 셈. 때문에 보다 중요한 건 무의미한 삶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외친다. 부조리에 저항하는 것이야 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유일한 덕목이다!
죽음이라는 그 유일한 숙명을 제외하고는 기쁨이건 행복이건 모든 것이 자유다. 인간만이 유일한 주인인 세계가 남는다. (카뮈, 시지프 신화 중)
그의 날카로운 시선처럼 카뮈의 패션 역시 한 엣지한다. 코트 깃을 한껏 끌어올린 그의 옆모습을 보라. 역시 겨울엔 얼어 죽어도 코트가 갑이다. 슈트핏은 또 말해 무엇하랴. 타이부터 베스트, 행커치프까지 완벽하게 차려입은 모습이 정갈하기 그지없다.
고급스러운 아침드라마 스타일. 러시아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Boris Pasternak)의 대표작 닥터 지바고(1957)는 자극적인 사건들에 절여진 우리에게 도파민을 선사하기 안성맞춤이다. 혼란의 절정이었던 제1차 대전을 배경으로 세상 온갖 인간 군상은 다 등장하는, 그야말로 종합 선물 세트 느낌. 도덕 따윈 개나 줘버려. 인생사 소용돌이 그 자체니까. 격정적인 무드의 스토리를 좋아한다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필독서다.
그는 1958년에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나, 정치적인 이유로 수상을 거부한 걸로도 유명하다. 또한 닥터 지바고는 시인이었던 그가 집필한 유일한 소설 작품.
닥터 지바고는 사랑의 책이다. 그 엄청난 사랑을 다른 존재에게로 널리 퍼뜨리는 그런 책이다. (알베르 카뮈)
보리스의 패션에서 주목할 점은 바로 타이다. 모든 패션 감각을 이 아이템에 몰빵한 건 아닌지 의심될 정도로 정말 다양한 타이를 멘 모습이 목격되는데, 그게 또 묘하게 그의 근엄한 아우라와 맞물려 색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슈트 차림에 있어 타이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새삼 깨닫는다.
20세기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삼대장은? 헤밍웨이, 포크너, 그리고 바로 지금부터 언급할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이다. 앞선 두 사람에 비하면 국내 인지도는 현저히 떨어지지만 모국인 미국에선 국민 작가로 통하는 인물. 1962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것도 모자라 1940년엔 퓰리처상도 받았고, 작가로선 드물게 미 대통령 자유 훈장까지 수여받았으니 이로서 검증은 충분하지 않은가.
그의 작품이 매력적인 이유는 차고 넘치지만 그중 난해하지 않고 명료한 문장은 독서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데 한몫한다. 게다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성격도 대쪽 같아 읽는 내내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질 정도. 절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인생이 산산이 부서져도 끝까지 싸우겠다는 투지에다, 자신의 죽음까지도 스스로 선택하겠다는 패기 넘치는 자세가 대단하다. 인간을 생의 개척자로 보는 것이다. 추천작은 역시 에덴의 동쪽(1952).
그렇다면 문학의 개척자, 존 스타인벡의 패션 센스는 어떨까. 기자 출신답게 자유로운 캐주얼 차림이 대부분이다. 노 타이에 티셔츠 & 재킷. 깔맞춤 따윈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지만 또 묘하게 색감을 통일하려는 섬세함도 엿보인다. 듣자 하니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무심한 꾸안꾸 룩 치고는 뭔가 다른 포스가 풍긴다.
무라카미 하루키보다 먼저 노벨 문학상을 받아서 미안하다! 2017년 수상자인 가즈오 이시구로(Kazuo Ishiguro)는 노벨상 선정 이후 가진 기자 회견에서 이런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매번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하루키 쪽이었으니, 대중들이 봤을 땐 왠 엄한 사람이 상을 탔네라고 갸웃했을지도 모를 일.
하지만 그의 작품을 접해보면 이런 의문은 단숨에 잦아들 것이다. 1989년, 그에게 맨부커상을 안겨준 남아 있는 나날(1989)부터 타임지 창간 이래 발표된 100대 영어 소설 중 하나로 뽑힌 나를 보내지 마(2005), 가장 최신작인 클라라와 태양(2021)까지 그를 찬양하려면 입이 아플 정도니까. 그러나 이 많은 작품들은 단 하나의 키워드로 이어진다. 온기. 그의 이야기엔 세상의 어둠마저 따스하게 느껴질 정도의 온기가 스며있다.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나는 흐느끼지도, 자제력을 잃지도 않았다. 다만 잠시 그렇게 서 있다가 차로 돌아가 가야 할 곳을 향해 출발했을 뿐이다. (나를 보내지 마 중)
블랙만 잘 입어도 패션의 절반은 성공이라는 게 패션계의 정설이듯이, 가즈오 이시구로의 패션도 블랙 일색이다. 슈트는 물론 캐주얼한 차림에서도 블랙을 고집하는 걸 보면 모험보단 무난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성격일 듯. 자연스럽게 바랜 백발과 안경, 그리고 블랙이 만나 정적인 균형감을 이룬다.
인간은 언제나 자유를 꿈꾼다. 하지만 너무 많은 자유를 얻게 되면 방황하기 마련이다. 페터 한트케(Peter Handke)는 독자인 우리들에게 이러한 ‘너무 많은 자유’를 준다. 그리고 명령한다. 자, 이제 네 방식대로 한 번 즐겨봐.
이게 무슨 말이냐고?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준 관객모독(1966)이 가장 좋은 예가 될 수 있겠다. 뚜렷한 서사도 없고, 상연 내내 배우들이 관객을 지적하고, 놀리고, 험담하고, 모욕하는 게 전부다. 이게 무슨 연극이냐 생각할지 모르지만 연극 맞다. 희곡의 관습을 과감히 파괴한 혁신적인 작품이란 찬사가 쏟아졌으니까. 그는 이 작품을 계기로 유럽권의 문학상을 휩쓰는 것으로 모자라 2019년 노벨상까지 받아버린다.
“마주 서 있을 때는.” 하고 세관원은 계속했다. “상대방의 눈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페터 한트케, 페널티킥 앞에선 골키퍼의 불안 중)
페터 한트케의 열렬한 팬인 친구 J에게 추천작을 물었더니, 단 1초 만에 페널티킥 앞에선 골키퍼의 불안(1972)이라고 답한다. 기존의 소설 작법을 완전히 해체시킨 건 물론 실험적인 시도로 가득해 읽는 동안 고생 꽤나 했다고. 하지만 그 종착점에서의 쾌감 역시 굉장하다고 하니 기대해도 좋다. 우선 제목부터 혹하지 않는가. 페널티킥 성공률이 약 70%인 걸 감안하면 그 상황에 처한 골키퍼의 불안도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테니.
2022년, 프랑스 여성으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의 주인공이 된 아니 에르노(Annie Ernaux). 그녀의 작품들은 자전적 성향이 강해서 인지 흡인력이 상당하다. 가슴 아픈 사연들도,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는 사연들도, 쉽게 꺼내지 못할 은밀한 비밀들도 과감히 내뱉어 버리는 게 특징이자 그녀만의 무기.
글쓰기가 주는 기쁨 가운데 가장 강렬한 것이 뭔지 아세요? 누군가 내게 “당신은 바로 내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또는 “이 책은 바로 나예요”라고 말할 때랍니다. (아니 에르노, 칼 같은 글쓰기 중)
단순한 열정(1991)은 아니 에르노의 매서운 고백을 느낄 수 있는 대표작이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법한 일이지만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윤리의 경계를 아슬아슬 넘나드는 생각들을 끝없이 전시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에 더해 사랑과 고통의 차이마저 희석시키는 담담한 문체 역시 작품의 킬링 포인트.
허나 패션에서의 그녀는 너무나 수수하고 부드럽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강도가 센 사건들과는 180도 다른 분위기. 정돈되지 않은 부스스한 머리에 모노톤의 컬러 초이스, 자연스러운 메이크업까지. 프렌치 시크의 정석을 감상할 수 있다. 그렇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글도 패션도 심플 이즈 베스트라는 걸.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