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nd LAB: Renaissance Renaissance
Brand LAB: Renaissance Renaissance
폐허에 핀 로맨스
옷을 입는 건 곧 세상을 향한 선언이다.
자신에게 충실해지려는 의지, 아름다움과 문화를 향한 애정, 그리고 정치적 목소리까지 담아내는 일. 레바논에서 과거와 현재를 잇는 브랜드 Renaissance Renaissance는 관습에 우아하게 도전하는 여성을 그려낸다. 강인하게 스스로의 앞길을 개척하는 여성들이라면 빠질 수밖에 없으리라 장담한다.
Renaissance Renaissance. 제일 먼저 눈길이 간 건 브랜드명이다.
르네상스(Renaissance)의 사전적 정의는 “무언가에 대한 부흥이나 새로운 관심”으로, 프랑스어 renaissance는 ‘re-’(다시)와 naissance(탄생)의 합성어다. 이걸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브랜드명에 넣은 데는 분명 의도가 있었을 터. 팔레스타인계 레바논 출신인 디자이너 신시아 메르헤즈(Cynthia Merhej)는 그 의도를 두고, 르네상스라는 단어가 가진 ‘끊임없는 진화’라는 개념이 자신이 창작 과정을 바라보는 방식과 맞닿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르네상스’라는 단어가 고전적인 느낌을 주지만, 실제로는 그 정반대의 방향성으로 항상 나아가려는 것을 의미한다고.
사진에서 느껴지는 단단한 여성들의 에너지. 여성들을 다채로운 모습을 조명하고, 성장을 지지하며 무엇보다, 삶의 여러 시기에서 의미 있는 옷을 만들고자 하는 메르헤즈의 Renaissance Renaissance.
다시 르네상스라는 이름으로 돌아가 보자. ‘부활’이라는 의미에 집중해 본다면, 디자이너 신시아 메르헤즈의 정체성에 대해 말해야 한다.
그녀를 알고 싶다면, 증조할머니부터 어머니 그리고 자신까지 3대째 만들어 가고 있는 패션 아틀리에를 살펴보면 된다. 아틀리에는 그녀가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와 왕립 예술 대학에서 수학한 후 2016년 다시 고향 베이루트에 돌아와 시작한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자신의 어머니가 옷을 만들던 그 땅에서 말이다. Renaissance Renaissance라는 이름도 당시 브랜드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선택한 것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옷 만드는 걸 자연스레 보고 자란 그녀. 또한, 레바논인으로서 가족이 겪어야 했던 일은 그녀의 정체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쿠튀르 의상과 웨딩드레스를 제작하며 도시 전역에서 주문을 받기도 했던 증조할머니는 1948년 나크바(Nakba, 이스라엘 건국으로 팔레스타인인 약 70만 명이 고향에서 쫓겨난 사건) 당시 팔레스타인에서 추방되며 사업과 꿈을 접어야 했다고 한다. 수십 년 후, 그녀의 어머니가 옷을 디자인하며 집안의 패션 DNA를 이어가며 그녀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레바논인이라는 정체성을 빼놓고 Renaissance Renaissance를 논할 수 없다. 지금까지 보여준 컬렉션 대부분이 레바논에 관한 것이었으니. 메르헤즈는 “Renaissance Renaissance가 흥미로운 이유는 우리 민족이 함께 걸어온 길 때문이다. 전형적인 길이 아니었고, 우리 여성들은 강인한 정신력을 키웠다. 패션에도 그런 것이 필요하다. 끈기 있게 노력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2019년 브랜드가 막 인기를 얻기 시작한 시점에, 레바논은 일련의 충격적인 사건을 겪는다. 국가 통화 가치가 90프로나 폭락했고, 혁명은 실패로 끝났으며, 몇 달 후 코로나 19가 창궐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베이루트 항구에서 약 3,000톤의 질산암모늄이 폭발한다. 이는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비핵폭발이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이들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이 모든 일을 겪으면서 지속되고 있는 Renaissance Renaissance는 강인한 여성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팔레스타인-레바논 출신 정체성을 옷에 적극적으로 녹여내려는 시도가 돋보이는 Renaissance Renaissance. 로맨스와 정치를 엮어서 녹여낸 25SS는 군용 낙하산 등에서 영감받아 제작되었다. 그녀의 컬렉션에서는 군용 재킷을 재활용해 만든 아이템도 있는데, ‘지속 가능성’도 그녀가 주목하는 화두이다. 이는 전쟁을 겪었던 어머니가 오래 입을 수 있는 것만 사고, 만들었던 것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7,80년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해방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양귀비. 이 꽃에는 팔레스타인 국기의 빨강, 초록, 검정이 모두 담겨 있어 지금도 여전히 연대의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상징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완성된 것이 바로 양귀비 스커트(Poppy Skirt). 그녀가 처음 태어난 10년간 베이루트는 그저 폐허였다고 한다. 그 경험을 자기 삶의 일부로 여기고 하나의 연결고리로서 제작한 이 스커트는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다.
그 어떤 강력한 메시지도 아름다울 수 있게 풀 수 있다고 믿는 Renaissance Renaissance. 우리의 삶은 절대 단순하지 않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 로맨틱한 의상을 자신이 서 있는 세계의 정치적 메시지를 담아서 풀어내는 그녀의 옷은 복잡한 우리 삶의 본질과 닮았다.
신시아 메르헤즈는 그녀 자신과 같은 강인한 여성을 위한 옷을 만든다. 매번 20개 정도의 룩을 선보이는 그녀의 컬렉션은 한 여성의 삶에서 평생 함께하고자 하는 옷들로 채워져 있다. 특히 ‘벌룬 슬리브 블레이저’는 각각 팔레스타인 베이루트와 야파에서 각자의 아틀리에를 운영했던 어머니와 증조모의 장인 정신이 깃든 작품이기도 하다. 색감이 돋보이는 튤 패널스커트는 브랜드의 대표 아이템으로 특유의 독특한 질감과 디테일이 포인트다.
무엇보다 Renaissance Renaissance 옷은 입었을 때 몸의 곡선이 예쁘게 드러난다. 이는 여성의 체형을 고려하여 세심하게 제작된 쿠튀르적인 접근 방식 덕분이다. 단색 위주의 클래식한 아이템을 우아한 실루엣에 담아내면서 반짝이는 튤이 만들어내는 디테일까지.
Renaissance Renaissance는 말한다. 우아하면서도 충분히 강인할 수 있다고. 3대에 걸쳐 폭발로 폐허가 된 도시 속에서 살아남은 여성들이 만들어 낸 옷은 그야말로 세상을 향한 ‘부활’의 선언이다. 우아하면서도 절제된 아름다움을 지닌 Renaissance Renaissance의 옷은 시대를 초월한다. 아마도 특정한 뮤즈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디자이너가 “뮤즈가 없는 것이 곧 뮤즈”라고 말했듯, 그녀는 자신의 경험과 감정, 삶에서 겪은 모든 순간을 영감으로 삼아 스스로 뮤즈가 된다. 많은 여성이 이 과정을 함께 경험해 보길 바란다.
그리하여 로맨틱하게 패션을 통해 혁명을 꿈꾸는 Renaissance Renaissance의 여정은 계속 이어진다.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