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MODERN RETRO
Trend: MODERN RETRO
패션은 과거를 입는다
FW25 컬렉션을 보면서 느껴진 과거의 향수. 볼드한 컬러, 오버 숄더, 미디 스커트, 그레이 컬러 그리고 힐까지. ‘패션은 돌고 돈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듯, 우리는 과거의 스타일을 다시금 새롭게 느끼며, 그 속에서 미래의 패션을 만들어간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히 그 시절의 무드가 멋져서일까, 아니면 패션계가 공유하는 아카이브의 한계일까. 요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은 돌아가며 새로운 하우스를 맡고 결국 자신과 닮은 세계를 브랜드 헤리티지에 담는 추세다. 그리하여 하나의 질문이 떠올랐다. “이 반복은 새로운 창조인가, 아니면 자기 복제인가?” 이 물음을 바탕으로 이번 시즌 트렌드를 장식한 5가지 키워드를 탐구해 보고자 한다.
다시 화려한 색감이 넘쳤던 FW25 시즌. 이게 가장 두드러지게 느껴졌던 알레산드로 미켈레(Alessandro Michele)의 VALENTINO다. 컬러를 자유자재로 쓰는 그의 컬렉션에선 늘 로맨티시즘이 느껴진다. 시력이 절로 좋아질 것만 같은 고해상도 볼드 컬러들, 전통적인 발렌티노 레드 외에도 에메랄드, 핑크 등 확실한 컬러들로 시선이 간다.
동시에, 어딘가 익숙하다. FW25는 그가 VALENTINO에서 선보인 두 번째 레디 투 웨어 쇼로, 첫 번째 쇼는 일각에서 “혁신보다는 자기 복제에 가깝다”라는 비판도 뒤따랐다. 기존 그가 전개해 온 GUCCI에서 로고만 달라진 거 아니냐는 것. 그러나, 바로 그 익숙함이 ‘미켈레다움’의 핵심이기도 하다. 미켈레의 진짜 매력은 ‘컬러를 보는 눈’에 있다. 능수능란하게 색을 다루고,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조합으로 룩을 완성하는 그의 능력치.
런웨이에서 만난 빨, 주, 노, 초, 파, 핑크! 이번 FW25가 전한 메시지는 ‘무채색에서 벗어나자는 것’.쌀쌀한 계절에 밝은색을 더해주면 룩의 생기가 확 산다. 레드 팬츠로 강렬한 무드를 선보인 LOUIS VUITTON, 옐로우 재킷과 블랙 팬츠를 매치한 BOTTEGA VENETA를 참고하자. 어떤 아이템을 선택하는지, 혹은 컬러 비율을 어떻게 따라 미니멀한 룩부터 화려한 룩까지, 다양하게 스타일링할 수 있으니.
확실히 과감한 컬러가 대세다. 그런데 오버 숄더를 곁들인. SAINT LAURENT의 수장 안토니 바카렐로(Anthony Vaccarello)는 SAINT LAURENT 90년대 오뜨 꾸튀르 아카이브에서 영감받았다고 밝힌 이번 컬렉션을 두고 “이런 채도가 높은 색상들로 실루엣을 강조하고 싶었다. 내가 해 본 것 중 가장 강렬한 색상이다”라고 소개한 바 있다. 색만큼 어깨에 힘을 잔뜩준 실루엣 룩으로 구성하며, 자신감 있는 여성상을 그려낸 점이 인상적이다.
SAINT LAURENT은 늘 여성의 ‘힘’을 이야기해 온 브랜드다. 그 대표적인 예시가 1966년 디자이너 이브 생로랑(Yves Saint Laurent) 시절 선보인 ‘르 스모킹(Le Smoking)’이다. 당시 여성이 턱시도를 입는 건 금기시되던 일이었기 때문에 남성을 대표하는 옷을 통해 여성에게 새로운 주체성을 부여한 상징적인 디자인으로 회자한다. 이번 시즌 어깨를 한껏 강조한 블레이저 디자인으로 브랜드 헤리티지를 유유히 이어간 셈.
오버 숄더 룩을 가장 쉽게 소화하는 방법은 아우터를 입는 것. 스트라이프 블레이저 재킷을 쉬어한 원피스와 함께 스타일링한 coperni. 옷 좀 입는 사람이라면 스타일링에서 ‘선택과 집중’을 모를 리 없을 터. 상의에 포인크를 주고 하의에는 힘을 빼는 공식을 택한 모습이다.
겨울에도 코트를 고수하는 ‘얼죽코’라면 이번 시즌엔 오버 숄더에 허리는 쏙 들어간 세련된 디자인의 X 실루엣 코트를 놓치지 말 것. 이미 한차례 소개한 적 있는 이 스타일은 특유의 드라마틱한 대비 덕분에 옷 입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평소 직선적인 체형이 고민이었다면 적극 추천.
미우치아 여사는 MIU MIU FW25를 두고 고민했다. "우리가 여성성에서 무엇을 지켜낼 수 있을까. 이 위험한 시기, 전쟁에 도움이 될까?" 그 답은 심플한 패션이었다. 화려함보다는 일상에서 직접 활용할 수 있는 활용도 높은 아이템을 주로 선보였으니. 실제로 미우치아가 즐겨 입는 미디스커트가 울, 나일론, 가죽 등 각기 다른 소재로 변주되어 대거 등장했다.
말 그대로 미디스커트의 향연이었던 MIU MIU FW95. 브랜드 초기 쇼 향수를 불러일으키면서도, 지금 결국 미우치아는 이번 컬렉션을 통해 다시 한번 말했다. 일상의 옷이야말로 가장 여성다운 옷이라고.
미우치아 여사의 선택을 받은 아이템답게, 절제되고 단정한 무드를 드러내기에 미디스커트만한 아이템이 없다.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뭐 입을지 고민이라면 이 아이템에 주목하자. 그 이상적인 룩을 실현한 HERMES, LEMAIRE! 두 브랜드 모두 어두운 컬러에서 소재의 변주를 둬 레이어링 하는 재미를 더한 스타일링을 보여줬다. 역시 겨울에는 옷을 겹겹이 쌓아 룩을 완성하는 재미가 있는 법.
위의 룩이 다소 심심하게 느껴진다면, 개성 있는 컷아웃 디테일을 보여준 Rabanne, Christian Dior 스타일링을 참고하자. 퍼를 활용한 키치한 무드부터 이번 시즌 또 다른 대세인 레이스를 활용한 시크 무드까지.
그레이 컬러 잘 쓰는 법. FW25 시즌에서 잔잔하게 존재감을 드러낸 그레이 컬러. 언제나 그래왔듯, 이번 컬렉션에서도 줏대 있게 그레이를 탐구한 THOM BROWNE를 살펴보자. 브랜드 시그니처 컬러는 유지하되, 비율과 실루엣에서 다채로운 테일러링이 돋보였다. 다만 그레이도 다 같은 그레이가 아니다. 가히 그레이의 대가답게 차콜, 애시, 실버 등 소재에 따라 색이 가진 온도를 조절해 보였다. 이렇듯 뉴트럴 톤이라도 룩 자체가 무게감 있는 이유는 실루엣은 각 잡혀있지만, 디테일 하나하나가 실험적이기 때문.
2001년 브랜드를 처음 설립한 이후부터 그레이를 잘 써온 THOM BROWNE. 클래식이 왜 클래식인지 몸소 보여주는 중이다. 패션계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아카이브와 재해석을 두고 매 시즌 분분한 말들이 오가는 가운데… 브랜드의 정체성인 슈트 중심의 남성복이라는 틀을 깨고 젠더 리스 스타일을 적극 활용하며, 나아가는 톰 브라운의 행보는 가히 주목할 만하다.
FW25에 등장한 그레이 컬러는 주로 멀끔한 수트와 함께 등장했다. 어딘가 중후하면서도 차분한 매력의 그레이에 빠진 GUCCI, LUDOVIC DE SAINT SERNIN. 모두 절제된 무드이지만, 소재에 차이가 있다. 그래서인지 두 룩의 느낌이 비슷한 듯 다르다. 역시 하늘 아래 같은 회색은 없다.
그레이도 충분히 재밌게 입을 수 있다. BALMAIN이 그 모범 답안! 목을 감싸는 탑, 팬츠 위에 레이어드한 스커트. 한 색상이지만 전혀 룩이 지루하지 않다. 소재와 디테일에 따라 같은 그레이도 무드가 확 달라지니까.
사실 힐은 한물갔다고 생각했다. 편하고도 멋스러운 슈즈들이 지천으로 널렸으니까. ISABEL MARANT의 FW25는 그 생각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2000년대 초반 ISABEL MARANT 특유의 ‘보헤미안 쿨’ 감성을 다시금 재현해 내며 핫걸들의 신발장에 한자리 차지할 준비를 마쳤다. 괜히 다시 베켓(Bekett) 슈즈 붐이 온 게 아니다. 세미 시스루 타이츠와 함께 스타일링한 앵클 부츠는 세미 시스루 타이츠 적당히 드레스업한 룩에도 편한 룩에도 어울린다는 게 장점. 세련된 도시 여자 룩 한 끗을 완성해 주는 슈즈되시겠다.
편안함과 세련됨을 함께 추구하는 ‘프렌시 시크’ 룩의 대명사답게 과거 ISABEL MARANT 컬렉션에서는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은 룩들이 가득하다. ‘패션은 돌고 돈다’라는 말이 유효한 건 결국 우리는 과거에서 지금의 모습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일 것. 과거와 닮았지만 ‘지금’이라서 가능한 고유한 동시대성이 담긴 패션! 이런 레트로라면 완전 환영이라며.
이제 힐도 단순한 힐이 아니다. 브랜드의 아이덴티티가 담겨 있는 CHANEL 로고 크림색 왕진주 부츠. 올 화이트 룩에 맞춰서 포인트가 되어 정말 사랑스럽다. 코코 샤넬(Coco Chanel)의 진주 사랑이 전해지는 이 아이템.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모던 레트로’가 아닐까.
어쩌면 우리가 패션에서 마주하는 반복은 퇴보가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진화일지도 모른다. 그 단서를, 지금까지 소개한 다섯 가지 키워드에서 마주했길 바라며.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