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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환영해요, J.Kim (디자이너 인터뷰)

Interview: J.KIM

Interview: J.KIM

당신을 환영해요, J.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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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고려인 디자이너 제니아 킴(Jenia Kim). 눈길을 사로잡는 꽃무늬 컷아웃,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낯선 실루엣, 여성들이 한 땀 한 땀 정성을 담아 만든 옷. 그녀가 전개하는 브랜드 J.KIM은 전통과 현대, 그리고 장인 정신을 섬세하게 엮어낸다. 옷을 입는 여성들이 편안함과 보호받는 감각을 느끼길 바란다는 그녀의 옷이 전하는 것은 다름 아닌 ‘환대의 감각’이다.

다가오는 11월 7일, 압구정 젠테 사옥에서 J.KIM 팝업이 일주일간 열린다. 옷을 사랑하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에서, 그녀의 옷이 건네는 따뜻한 온기를 직접 느껴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 팝업을 기념해, 디자이너 제니아 킴에게 서면 인터뷰를 요청했고, 그녀가 따스한 마음을 담아 전해온 이야기를 공개한다.



Q1. JENTE 콘텐츠 독자들에게 브랜드 J.KIM을 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고려인’ 출신 디자이너입니다. 그 정체성을 바탕으로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에 제가 설립한 브랜드가 J.KIM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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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자란 우즈베키스탄의 문화유산과 제 뿌리인 한국적인 감수성을 바탕으로 디자인하고 있어요. 다양한 분야의 장인들과 협업하기도 하고, 세계 각지에 있는 도시 문화와 연결을 추구해요. J.KIM이 단순한 의류 브랜드가 아닌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 되기를 바라요.



Q2. J.KIM 팀은 어떻게 일하나요? 운영 방식이 궁금하네요.


저희는 여타 브랜드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대부분의 옷을 집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만들고 있고, 이들은 가족과 함께 직접 손으로 바느질 작업을 하죠. 저희의 주요 작업실은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공간인데요. 타슈켄트에 위치한 과거 검찰관의 주택을 개조한 공간이에요. 이곳에서 작업도 하고 소규모 쇼룸도 함께 운영하고 있어요.


3.jpg 제니아 킴이 보내준 J.KIM 팀 사진


아직 우즈베키스탄에는 패션 산업이 제대로 자리 잡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희 팀원들은 하나의 큰 가족처럼 모여서 일하고 공동 주방에서 함께 식사를 하기도 해요. 또 일부 팀원들은 원격으로 근무하기도 하죠. 저희는 여기서 직접 모든 의류를 생산하면서도 글로벌 시장에 꾸준히 수출하는 유일한 브랜드입니다. 직접 로컬에서 제작하는 장인정신과 세계 수준의 탁월한 품질과 디자인을 동시에 모두 추구해요.



Q3.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나 러시아에서 자란 고려인이시죠. 이런 다문화적 배경이 브랜드에서 잘 느껴지는데요.


맞아요, J.KIM은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한국이 모두 담겨있어요. 제 성장 환경이 실제로 그랬으니까요.


4.jpg 어린 시절의 제니아 킴(Jenia Kim)


저희 컬렉션을 대표하는 수공예 기술과 대담한 컬러 사용은 우즈베키스탄에서 영감받았어요. 소련 시대 감성이 담긴 생활용품은 러시아에서, 컬렉션 곳곳에서 엿볼 수 있는 정제된 우아함과 섬세함은 한국의 영향이죠. 제겐 이 모든 게 늘 함께 공존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제 컬렉션에도 이러한 여러 문화의 흔적들이 반영되어 있죠.



Q4. 빈티지 소련 직물과 한국 자카드 실크! J.KIM을 대표하는 소재인데요. 어떻게 처음 선택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소련 시대의 직물을 보면 어린 시절의 따뜻한 기억이 떠올라요. 우즈베키스탄의 가정에서는 여전히 쿠르파차(Kurpacha)라는 전통 침구를 흔히 볼 수 있는데요. 솜이 두툼하게 들어간 이불 형태의 패브릭이에요. 가족과 공동체에서 느낄 수 있는 정서적인 연결을 상징하죠. 저는 이런 느낌을 옷에 담아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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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자카드 실크는 2019년 서울에 갔을 때 전통 한복을 알아보다 처음 접하게 됐어요. 우즈베키스탄의 강렬한 그래픽과는 다르게 정교한 자수와 은은한 우아함이 느껴졌어요. 전혀 다른 아름다움이었달까요. 그때 이후로 저는 고민하게 되었어요. 한 국가가 가지는 특성이 어떻게 섬유와 옷에 담길 수 있는지요.



Q5. 현지 장인들과의 협업으로 컬렉션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한 것 중 가장 의미 있는 건요?


가장 잊을 수 없는 프로젝트는 우즈베키스탄의 혼수 문화에서 영감받은 컬렉션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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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전국을 여행하면서 자수 장인들과 퀼터들의 집에 머무를 때, 함께 식사하고 바느질하며 진심으로 교감했어요. 그중에서도 율두즈 무히딘노바(Yulduz Mukhiddinova)라는 여성 장인이 제게 큰 영향을 줬죠.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우즈베키스탄의 전통 퀼트인 ‘쿠로크(quroq)’ 제작 기법을 배웠어요. 염색, 자수, 퀼트 작업을 하면서 여성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전통을 지키는 방식을 느꼈어요. 그 시간은 단순히 무언가를 만들어서 수익을 내려고 했던 게 아니라,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기쁨을 나누는 순수한 시간이었죠.



Q6. 어린 시절 할머니 집에서 본 베개와 닮은 꽃 모양의 매듭 디테일이 자주 보여요. 어디서 영감받은 건가요?


꽃 매듭 디테일은 무의식적으로 탄생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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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벡 전통 가정에서도 그렇고, 한국에서도 이렇게 매듭을 묶는 문화가 있어요. 일상에서 가정용품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요소이고요. 저에게 이 매듭은 소중한 것을 담아내고 보호하는 감정을 상징해요. 애초에 전략적으로 만든 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이 디테일로 저희를 기억하고 알려지면서 저희를 대표하는 요소가 된 것 같네요.



Q7. 매듭 디테일뿐만 아니라 수자니 자수, 컷아웃도 J.KIM의 시그니처 요소인데요, 이러한 섬세한 디자인 요소들을 어떻게 접근하시나요?


저는 항상 다른 누군가의 작업보다는 돌멩이, 생활용품, 지역 문양처럼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일차적이고 진정성 있는 출처에서 영감받으려 해요. 스스로 새로운 형태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편이라 그게 결국 저희만의 시그니처 디자인이 된 것 같네요. 이러한 디테일은 어떤 것의 ‘본질’을 포착하려고 할 때 나오더라고요.


8.jpg ©@j.kim


Q8. 이번 FW25 컬렉션은 ‘모성’을 주제로 한다고 들었습니다. 개인적인 경험도 반영되었나요?


맞아요, FW25 컬렉션에서는 어머니의 따뜻한 보살핌을 다뤘어요. 일상 속의 아주 평범한 순간조차도 창의성의 관점에서 보면 얼마나 소중한지 표현하고 싶었죠.


9.jpg J.KIM FW25


Q9. 여성들의 이야기가 자주 컬렉션에 등장해요. SS25 컬렉션에서는 할머니의 손길에 대한 오마주로, 자수와 기억을 재해석하셨죠. 평소 여성성과 관련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제게 여성성이란 ‘떠나고 싶지 않은 공간을 만드는 힘’이에요.

따뜻함, 보호, 무조건적인 돌봄이 깃든 환경을 만드는 능력이죠. 여성들은 삶의 경험을 통해 점점 더 아무 조건 없이 주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말씀 주신 컬렉션뿐만 아니라, 저는 늘 어머니, 할머니 그들의 조용한 강인함을 옷에 담아내려 해요. 자수, 요리 같이 소중한 사람을 위해 시간을 내는 그런 작고 조용한 행동들 말이에요.


10.jpg ©@j.kim


Q11. 그렇다면 J.KIM의 옷을 입는 여성들이 어떤 감정이나 감각을 느끼길 바라시나요?


저는 여성들이 J.KIM의 옷을 입고 편안하고, 보호받고, 소중하게 여겨지는 느낌을 받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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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옷에는 정성과 진심으로 작업한 여성들의 에너지가 담겨 있거든요. 그렇게 탄생한 의상은 착용자에게 위로와 치유의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고 믿어요.



Q12. JENTE에서 만날 수 있는 J.KIM의 아이템 중 눈길이 가는 것들을 꼽아봤어요. 각 아이템에 대해 간단히 소개 부탁해요.


ITEM 1: 페탈 후디


컷아웃 디테일은 저희 컬렉션에서 반복되는 모티브에요. 편안하게 입을 수 있는 이 후디는 꽃잎이 피어나는 이미지를 전달하려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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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2: 페탈 퍼 토트백


이 가방의 영감은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과거 즐겨 입었던 카라쿨(karakul) 퍼 코트에서 영감받았어요. 동시에 장난기 있는 꽃잎 형태를 더해서 과거와 현재를 잇는 아이템으로 만들고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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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3: 블랙 바일 재킷


이 재킷의 컷 아웃 디테일 속 패턴 프린트는 쿠르파차에서 착안했어요. 나일론 소재에 미니멀한 실루엣으로 우즈베키스탄의 실용성과 한국적 미니멀리즘을 함께 담아낸 아이템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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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4: 페탈 니트 가디건


저희의 꽃잎 모티브를 부드럽게 풀어낸 가디건인데요. 옷을 만들 때 니팅 작업이 명상적인 부분이 있거든요. 그 평온함을 담아내려 했어요. 마치 가족에게 물려받은 따뜻한 옷처럼, 정서적인 온기를 전달하려한 아이템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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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3. 옷 외에도 도자기 꽃병 시리즈, 우편 소포에서 영감받은 패키징 등 다양한 작업을 선보여 왔는데요. J.KIM을 통해 세상에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나요?


최근에 우즈베키스탄의 부하라 비엔날레(Bukhara Biennial)에서 대장장이, 금자수 장인, 사진작가와 함께 인스톨레이션 작업을 진행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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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람들이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어울릴 때 문화가 발전한다고 믿어요. 이 작업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담아냈었죠. 공감과 존중을 통해서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고,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환영받고 소중하게 서로를 대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앞으로는 교육적 프로젝트에도 기여하고 싶어요. 지식을 나누고, 새로운 세대의 장인들을 길러내는 꿈이 있어요.



Q14. 요즘 빠져있는 게 있다면요?


우즈베키스탄과 중앙아시아에서 일어나는 문화를 지켜보는 일이요! 안도 다다오(Ando Tadao), 자하 하디드(Zaha Hadid) 같은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설계한 미술관, 문화시설, 레지던시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거든요. 이 과정들을 보면서 역사가 만들어지는 순간에 제가 있다고 느껴지고, 그 안에서 저도 유의미한 역할을 하고 싶어요.


Q15. 앞으로 브랜드를 어떻게 만들어 가고 싶은지 궁금하네요.


사실 고려인으로서 한국에 대한 감정이 늘 복잡했어요. 때로는 거리감도 느꼈죠. 요즘 저와 브랜드가 가진 역사에 진심으로 관심을 가져주시는 한국의 고객 분들을 만나곤 하는데요. 저희가 의미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게 돼요. 지금으로서는 한국과 우즈베키스탄, 두 나라의 유대감을 더 깊게 만들어 가고 싶어요.


Q16. 마지막으로 한국의 JENTE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J.KIM을 통해 우즈베키스탄과 고려인의 역사까지도 함께 발견해 주신다면 좋겠어요. 저희의 옷이 여러분의 문화적 호기심을 자극했다면 저의 미션은 달성한 셈이에요.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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