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트로폴리스 Ⅱ: 라이오스>

by 이지영

안트로폴리스 5부작 연작 연극 중 두 번째 작품인 <라이오스>는 독일 작가 롤란트 쉼멜페니히의 작품이다. 쉼멜페니히는 두 번째 작품인 <라이오스>에서 라이오스에게 내려진 저주를 개인의 악행 때문이 아닌 가문에 내려진 오랜 저주 탓으로 돌린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오이디푸스의 아버지인 라이오스는 자신의 안위 때문에 아들을 버린 비정한 아버지에 가깝지만 쉼멜페니히는 라이오스를 가해자인 동시에 폭력적인 역사의 굴레에 갇혀버린 피해자로 보고 있기도 하다.


<라이오스>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인가?


이러한 작가의 해석은 관객으로 하여금 라이오스의 비극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하게 만든다. 쉼멜페니히는 라이오스가 저주를 피하기 위해 아이를 낳지 않고 시민들에 의해 그 대가로 처형당하거나, 저주를 무시하고 술에 취한 채 이오카스테와 관계를 가져버리는 가정, 이오카스테가 참다못해 결국 라이오스를 유혹해 관계를 가지는 상황, 예언자를 죽이는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의 모습을 차례로 보여주지만 이 모든 가정에서 오는 결말들이 라이오스의 죽음을 피하게 하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오래된 비극을 왜 다시 들추어내야 하는가?


극단 신세계의 김수정이 연출하고 전혜진이 연기한 국립극단의 <라이오스>는 동시대와의 접점을 위해 여러 장면들과 대사를 상징적으로 배치했다. 공동체가 붕괴되는 과정이 예언같이 신빙성 없는 한낱 말에서 비롯될 수도 있고 지도자의 무능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는 암시적인 말과 장면들이다. 하지만 라이오스의 선택과 결과를 개인의 악행으로 치부하지 않으려는 작가의 의도와 연출의 해석이 바로 이 부분에서 충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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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극의 한계를 보완하는 무대와 음향


<라이오스>는 전혜진 배우 한명의 일인극이다. 복잡하고 폭력적인 그리스 신화와 그 안에 얽혀있는 인물들을 소개하는 해설자의 역할부터 젠더를 넘나드는 18명의 캐릭터를 배우 한 명이 다채롭게 표현하며 끌고 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연출가인 김수정은 육중하게 자리잡은 계단과 천장과 맞닿아 있는 거대한 기계식 날개를 통해 권력에 의한 이동을 직관적으로 표현했고 오토바이, 자동차 등의 배치를 통해 이 비극이 현재와도 연결되어 있음을 암시했다. 테베의 시민을 상징하는 큰 가면 등은 전혜진이 표현하는 다양한 캐릭터를 시각적으로 보충해 주는 역할을 했으며 대형 스크린과 라이브 캠은 다양한 각도에서 배우를 비춤으로써 자칫 밋밋할 수 있는 일인극의 한계를 보완하려 했다. 음향 역시 힙합과 록을 교차하며 날선 조명과 함께 광기와 시니컬의 리듬을 변주해 낸다. 하지만 이 모든 장치들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이 극을 전혜진 배우 한 명이 끌고 가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고 전혜진 배우의 담백한 여기에 비해 상징들이 너무 과잉되어 있다는 느낌 역시 지울 수 없었다.


연작인데 하나씩 끊어서 하는 이유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안트로폴리스는 5부작이다. 독일에서는 3일 연속 마라톤 공연으로 진행되기도 했는데 국립극단에서는 이를 올해와 내년에 걸쳐 선보이기로 했다. 왜일까? 우선 국립극단은 2025년부터 2027년까지 3개년 동안 작품 구성을 대표하는 표제를 '현존과 좌표'로 정하였고 그에 부합하는 해외 우수 신작으로 이 안트로폴리스 5부작을 택했다. 안트로폴리스는 독일어로 인간의 시대를 뜻하는 안트로포챈과 도시를 의미하는 폴리스가 합쳐진 말로 인간사회가 지속되면서 되풀이될 수밖에 없는 권력갈등, 세대갈등, 윤리적 딜레마를 첨예하게 그려낸다. 또한 쉼멜피니히는 신화 속 인물들을 그대로 가져오거나 현시대적 관점으로 재해석하며 우리에게 더 유효한 질문으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을 담아냈다. 하지만 안 그래도 일반관객 입장에서 생소한 신화 속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그것도 해가 넘어가면서 따로 공개하는 선택을 한 것은 퍼뜩 이해가 가지 않는다. 마라톤공연이 한국 관객들에게 익숙하지 않더라도 작품의 공개 시기라도 앞당겨 연결성을 가지게 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 아니었을까 하는 아쉬움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