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과 벽 안에서 공명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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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앤드월>은 산재에 관한 연극이다. 관람한 지는 꽤 되었지만 인상 깊었던 연극이라 뒤늦게라도 리뷰를 쓴다. 극장 쿼드와 즉각반응이 공동 제작한 <앤드월>은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아버지가 근무하는 평택항 작업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사고를 당한 이선호 군의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재구성하였다.
배우들의 기계화된 몸과 육중한 끝벽에서 느껴지는 사실적 압박감
극장을 들어서면 낡고 허름한 개방형 컨테이너 하나를 마주할 수 있다. 공연 초반 이 컨테이너의 끝벽이 소름끼치게 큰 소리를 내며 넘어지게 되고 이로 인해 항만 노동 환경의 폭력성 역시 단숨에 드러난다. 항만의 노동자로 등장하는 배우들은 극이 진행되면서 연신 가쁜 숨을 몰아쉬며 기계와 같은 동작들을 여러 번 반복적으로 수행해 낸다. 효율적인 움직임만 허락된 그곳에서는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듯 보였고 비효율적인 동작이나 질문 등은 생산성이 떨어지는 일로 치부되곤 했다. 그 틈바구니에서 '오늘 나에게 주어진 일이 원래 내 일이 아니지 않냐는 아성의 의문'과 '안전이 충분히 보장되어 있는 상태인지를 묻는 고래 아저씨의 질문'은 비효율적인 것으로 치부되어 밀려난다. 작가 겸 연출인 하수민은 실제 사건 현장을 보는 듯한 현실감 있는 육중한 무대와 노동자들의 반복적이고 정확한 움직임을 통해 '땀나는 시'를 그려낸다. 보기만 해도 압박감이 느껴지는 이 '땀나는 시'가 가리고 있던 것은 끝없는 하청과 재하청의 구조,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태도, 강압적인 노동환경, 이주민과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등이다.
개인의 잘못에서 답을 찾으려는 서늘한 시도
주인공 아성은 자신의 죽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려고 한다. 그런데 어떤 문제가 나한테 발생했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선택에 잘못은 없었는지 지난 삶을 반추해서 그 답을 찾으려 노력한다. 우선 아성은 사고를 당한 순간부터 시간을 뒤로 감으며 그 순간을 다시 재해석하려 한다. 1분 전, 10분 전, 16분 전으로 돌아가면 갈수록 이 사고는 언제 누가 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예견된 사고였다는 것이 자명해진다. 아성은 당시 자신에게 주어진, 원래 업무가 아닌 갑자기 지시받은, 일을 기본적인 안전교육이나 작업 설명, 안전모조차 지급받지 못한 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우리를 더욱 서늘하게 만드는 것은 아성은 명백히 절차적·구조적 문제가 있는 자기의 죽음에 대한 답을 계속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질문을 통해 찾으려 한다는 점이다. 아성은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한다. '왜 내 일이 아닌 것을 받아들였는지, 왜 나는 누굴 대신해서 하는 것을 잠자코 수용했는지' 그 질문들을 끈질기게 붙잡고 가다 보면 결국 이 질문에 다다르게 된다. 아성이 살면서 두 번 들었던 질문인데 바로 "넌 왜 그렇게 착하냐?"이다. 아성은 자기가 내던져 놓은 질문들 사이를 부유하며 "나는~"으로 시작되는 답을 찾으려고 부단히 애쓴다. 또 다른 산재사건의 피해자인 무명 역시 '엄마의 침묵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라는 질문을 통해 가닿지 못했던 곳을 반추해 본다. 시작이 문제발생 지점이 아닌 자기를 향해 있던 아성과 무명의 아픈 질문은 끝의 끝으로 가 결국 희미해진다.
죽은 사람의 시선으로 돌아볼 때 삶은 알 수 없는 의미의 실타래들일 것이다. <앤드월>은 구조적 문제를 꼬집을 뿐만 아니라 죽음의 순간에 우리가 피해자임에도 어떤 생각을 할 것인지 역시 되짚어 보려 한다. 아성의 목소리가 고행의 시가 되고 그 답들 역시 바람을 따라 저 벽 너머로 날아간다. 2024년 서울희곡상을 수상하며 문학성을 인정받은 만큼 아성의 대사는 처연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하지만 아성의 죽음을 둘러싼 객관적 진실은 참혹하기 그지없다. 이 작품은 실제 사건 당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와 아성이 자신의 삶을 통해 답을 찾아가는 여정으로서의 두 가지 서사가 동시에 진행된다. 하지만 이 두 서사는 충돌되지 않는 간극을 유지하며 관객이 그 안에서 함께 공명하도록 이끈다. 연극을 보고 나서 산재피해자의 객관적 통계자료와 숫자만으로는 절대 감각할 수 없는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서 잠시나마 벽안에서 공명했던 순간들과 벽 너머를 같이 상상해 보지 못한 나를 돌이켜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