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된 현실에서 꿰어내는 욕망의 서사
영국 극단 펀치드렁크가 제작한 이머시브 연극 <슬립노모어>는 예전 대한극장이었던 충무로에 위치한 7층 규모의 매키탄 호텔에서 펼쳐진다. 대사보다는 움짐임과 이미지에 치중한 ‘non‑verbal’ 공연으로 작품의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를 모티브로 하며 뮤지컬 <레베카>의 일부 스토리도 차용하고 있다.
자극을 찾아 떠도는 유령들
극장의 묵직한 문이 열리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큰 규모의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우선 관객들은 두꺼운 옷과 핸드폰으로부터 잠시 떨어져야 한다. 같이 온 일행과도 떨어져 빛이 차단된 미지의 세계를 더듬거리며 들어간다. 빛이 급격하게 차단되다 보니 의지할 것이라곤 촉각과 청각뿐이다. 간신히 의지하던 벽마저 떼어낸 후 희미하게 들리는 음악소리를 찾아 들어가면 어느새 현실과 가상의 중간지대인 '맨덜리 바'에 도착한다. 웰컴 드링크를 마시며 긴장을 털어내는 것도 잠시 관객은 또다시 희미한 빛만이 자리한 세계로 내던져진다. 새하얀 마스크를 쓴 관객들은 유령처럼 자극을 찾아 떠돌아다닌다. 이때부터 중요한 것은 본인에게 느껴지는 더 강한 자극과 충동을 따라가는 것이다. 퍼포머들이 엉켜 싸우다가 둘 중 한 명이 나가면 그 퍼포머를 따라가는 관객도 있고 남은 퍼포머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관객도 있다. 뿐만 아니라 퍼포먼스보다 공간이 주는 자극이 더 강하면 퍼포먼스를 보지 않고 공간을 탐색하기도 한다. 희미한 음악이나 빛이 나를 잡아끌면 그 끈을 붙잡아 다른 공간으로 이동해 보기도 한다. 이처럼 모든 선택은 나에게 어떤 자극이 더 강하게 오느냐로 결정된다. 따라서 1시간 분량의 공연이 세 번 반복되지만 관객들이 본 장면들은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필자 역시 다른 자극을 쫓아가다 보니 이 작품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마녀의 예언장면을 보지 못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리얼한 미장센
이 거대한 이머시브 연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실과 유리된 느낌을 주는 공간과 그 공간의 미장센이다. 각 층에 위치한 셀 수 없이 많은 방들은 콘셉트별로 매우 디테일하게 꾸며져 있어 눈길을 잡아 끈다. 제작진의 '먼지 한 톨까지 신경 썼다'는 발언이 허황된 것이 아님이 곧바로 증명된다. 또한 <슬립노모어>는 알프레드 히치콕 영화의 서스펜스 미학을 적극적으로 차용해 비극적이고 암울하면서도 환상적인 미장센을 만들어낸다. 1930년대 필름 누아르에서 봤던 명암의 대비, 불안함을 증폭시키는 비대칭적 구조, 공간과 잘 어울리는 소품과 가구, 관객들의 불안을 자극하는 스산한 음악 등이 그 공간에서 펼쳐지는 모든 스토리를 강화시키고 또 집중하게 만든다몰입형 이머시브 극에서 리얼함을 극대화 한 미장센이 얼마나 중요한지가 느껴진다.
모두가 참여자
<슬립노모어>는 무대와 객석의 뚜렷한 경계가 없을뿐더러 몇몇 관객들은 퍼포먼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전통적 의미의 관객과 배우의 역할은 허물어지고 이 극장 안에 존재하는 이상 모두가 이 몰입형 퍼포먼스의 참여자가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 정도의 관객이 지켜보느냐, 또 어떤 각도와 위치에서 지켜보느냐에 따라 관객은 배우나 퍼포머들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또 방금 본 행위를 힐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한 피를 흘린 채 욕조 안에서 관객을 응시하는 퍼포머의 손을 잡아주거나 방금 끝난 장면의 소품을 만져보려고 자신의 앞을 가리는 다른 관객을 밀치는 등 적극적 개입이나 욕망의 실현으로 자기만의 능동적 서사를 구축해 나가기도 한다. 극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 역시 능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데 더 이상 스토리가 나를 잡아끌지 않거나 적극적 개입이나 참여가 피로해질 때는 다른 공간을 점유하며 극으로부터 빠져나올 수도 있다.
공연을 즐긴 후 다시 중간지대인 '맨덜리 바'에 도착하면 흩어졌던 일행과 자신이 본 장면들에 대한 해석을 나누며 작품의 잔향을 이어간다. 욕망에 사로잡혀 질주하는 맥베스와 친절하지 않은 공연에서 모든 감각을 이용해 자신만의 능동적 서사를 찾아 꿰어내는 욕망을 실현하는 관객들은 극의 말미에는 어느새 비슷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