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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nta time Mar 04. 2024

별 것 아닌 취합업무, 제대로 하기 쉽지 않다

부대 안에 있는 강아지 수를 파악해라! 지금 빨리!!


업무를 하다 보면 여러 부서로부터 자료를 취합받아 정리해야 할 때가 있다. 


자료취합을 위한 시스템이 잘 구비되어 있거나 익숙한 부서에서는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에게는 취합업무는 생각보다 손도 많이 가고 신경도 꽤나 쓰이는 업무 중 하나이다. 여기저기 발품 팔아가며 힘들게 자료를 취합받은 후 에도 의미 있는 정보로 다시 정리해내지 못하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욕은 욕대로 먹는 일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자료를 요청하는 이메일 하나만 봐도 일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기본적인 업무임과 동시에 숨겨진 내공을 드러내는 바로미터이기도 한 취합 업무, 어떻게 하면 제대로 할 수 있는지 체크해 보기로 하자.


 20살 군대에서 행정병 근무를 하면서 경험해 봤던 강렬했던 'The Dog Operation' 사례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본다.





불친절하게 물어보면,  친절한 답을 받기 힘들다.


 강원도 오지 산골 부대에서 행정병으로 근무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50년쯤 되어보이는 콘크리트 건물이 한 여름 햇빛으로 충분히 달궈진 후 내뿜는 열기, 사무실안에 빼곡히 자리잡은 군대 구식 컴퓨터 8대, 그리고 자리마다 앉아있는 빡빡머리 행정병들이 내뿜는 더위 컬래버레이션이 인상 깊었던 날이었다. 갑자기 상급부대에서 뜬금없는 공문하나가 날아왔다.  

"부대 안에서 돌아다니는 개가 몇 마리인지 파악해라"

 '개라니? 부대 안에 개가 있었나? ' 공문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정확한 설명은 없었다. 다만 '개' 숫자를 파악해서 오늘까지 보고하라는 불친절한 명령만이 쓰여 있을 뿐이었다.


 취합업무의 시작은 정보를 알고 싶어 하는 누군가의 요청에 의해 시작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본부장님이 갑자기 3분기 예상매출이 알고 싶다던지, 혹은 신입사원 퇴사가 잦은 원인을 파악하라던지 하는 꽤 심오한 비즈니스 정보에 대해서도 명령을 하달받은 일선 부서에서는 데이터를 통한 과학적인 "분석'보다는, 사람들에게 단순히 물어보는 "취합"의 방식을 자주 사용한다. 


 대충 물어봐도 Chat GPT가 그럴싸하게 보고서를 만드는 세상이라지만, 아직도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하고 있는 비즈니스에서는 신속하게 정보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로 하는 때가 많다. 그럴 때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만큼 효율적인 방법은 많지 않다.


다시 돌아와서, 그럼 왜 당시에 갑자기 개 숫자를 파악하라는 공문이 왔던 것이었을까?

근무하던 곳은 강원도 산골이었는데, 지역 특성상 부대가 한마을 건너 하나씩 촘촘히 위치하고 있던 곳이었다. 부대도 사람 사는 곳이다 보니 군인들이 강아지를 키우기도 하고, 부대 안에 자체적으로 터를 잡아 살아가는 길냥이, 강아지도 많았었다. 당시에 해당지역 유기견 개체수가 늘어나더니 주변에 마을에 있는 가축을 헤치거나, 농작물을 헤집어 놓기도 하고, 주민을 물기도 하는 등  여러 문제를 일으키는 상황이었고, 그 화살이 주변 군부대에 이어져 부대별 사육하고 있는 강아지의 현황을 정리해서 보고하라는 지시가 떨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배경설명이 적혀있지 않았다. 취합업무는 "왜 알고 싶은 건지, 무엇이 궁금한 건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어떤 궁금증은 간단한 질문만으로도 충분한 설명이 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매 분기마다 영업실적을 보고하라는 형태의 취합업무는 굳이 구구절절한 설명이 없더라도, 상호 간에 물어보는 이유와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를  인지하고 있는 유형이다.


"알파팀!!... 현재 강아지가 몇 마리인가?!"


 하지만 필자가 예시로 든 "개 숫자를 파악해라" 같이 주기적이지 않고, 돌발적인 사항에 대한 질문 한다면 반드시 그에 선행하는 이유와 답해야 하는 방식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제시해줘야 한다. 그래야만 질문을 받는 사람이 정확한 답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대답받길 원하면 명확하게 물어봐라!


"개라고 하면 고양이는 제외되겠지요? 그리고 몇 마리인지만 보고하는 됩니까? 아니면, 개의 종류라던지 나이라든지 부대에서 기르던 개인지 아님 주인이 없이 부대에서 자주 보이는 떠돌이 개라던지 하는 유형을 나눠서 표로 보고해야 하나요?"


 상급부대에 전화를 걸어 꼬치꼬치 물어보기 시작했다. 사실 공문을 받자마자  받은데로 '개 숫자를 파악해라'라고 하급부대로 그대로 다시 전달하니 나와 같은 궁금증을 가진 다른 행정병들이 성이 나서 연신 '통신보안'을 외쳐대며 질문을 퍼부었기 때문이다. (상급부대에서 명령이 떨어지면, 나와 같이 중간부대에 있는 행정병들은 다시 하급부대로 명령을 토스해 취합받는 형태였다.)


 물어보는 내용이 명료할수록, 거둬들이는 정보의 퀄리티도 좋아진다. 


 단순히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물어보는지, 왜 물어보는지, 그리고 대답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꼼꼼히고 간결하게 정리해줘야 한다. 특히, 취합이라는 것은 대부분 정량적인 데이터로 정리하여 주고받는 것이 일반적인데, 질문이 명확하지 않다면 대답도 주관적이고 엉뚱하게 흘러가기 마련이다. 


 예시로 든, 부대에 강아리 숫자를 파악하는 요청에서도 질문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래와 같이 다양한 답이 올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도대체 전 부대에서 개가 몇 마리인지 정확히 파악하는 게 거의 불가능해진다. 


A부대 : 부대에는 개가 3마리입니다. 

B부대 : 2마리 정도 떠돌아다니는 개가 있다고 합니다. 

C부대 : 원래 기르던 개 3마리 중에 1마리를 A부대로 한 달 전에 입양 보냈습니다. 

D부대 : 현재 2마리 사육 중


그래서 도대체 몇 마리인가... 쓰면서도 헷갈린다. 





가능하면 숫자나 객관식으로 대답받고, 그 형태는 '표'가 좋다.


 취합업무는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목적을 띄고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회사의 명운이 걸린 신규사업을 위해 대규모 증자를 하는 결정에 대해 직원들에게 Yes or No를 물어본다던지, 불황이 계속되어 불가피하게 정리해고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누구를 내보내야 하는지 등의 진지한 결정은 취합업무 형태를 띠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취합업무는 일상적 업무에 대해 숫자로 정량화할 수 있고, 그 대답의 유형이 명확하게 정의된 경우에 사용하는 것이 적합하다. 만약 그 형태를 띠지 않는다면, 가능한 한 그런 형태로 가공하는 것이 맞다. 앞서 이야기했던 상황에서도 조금 더 명확하게 질문했다면 조금 더 낫지 않았을까? 예시로 표 하나를 만들어서, 그 안에 숫자만 넣도록 하는 방식으로 했다면 수고가 덜했을 것이다.


1. 요청사항 : 부대에서 직접 사육 중인 강아지 현황 조사

2. 조사배경 : 부대 인근 민가에서의 유기견 피해 민원에 대한 답변

3. 작성방법 : 부대에서 사육 중인 강아지 현황을 표로 작성 (두수, 견종, 사육기간 명시)

4. 기타 사항 : 부대 내 발견되는 유기견은 별도 표로 작성 (발견시기/장소, 견종 등 최대한 상세히 명시) 




 

'The Dog Operation' 수행하면서 필자는 당시 2일을 꼬박 낭비했었다. 처음에는 유기견 숫자를 파악해서 보냈고, 두 번째는 부대에서 사육 중인 강아지를 파악해서 보냈고, 세 번째는 사육 중인 강아지의 연령대를 파악해서 보냈고, 마지막에는 강아지의 품종까지 파악해서 총 4번에 걸쳐 자료를 보냈다. 물론, 총 4번의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수없이 불필요한 질문과 자료들이 오갔던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는 친절하고 스마트하게 취합하는 훌륭한 작전만 수행하는 베테랑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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