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여행이 그립다. 여행을 할 때면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함이 밀려온다. 즐거웠던 여행이 끝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그 아쉬움의 끝을 붙잡고 나는 또 다음 여행을 시작할 준비를 한다. 다시 말하면, 나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걸 거부하고 있다.
여행에서 얻는 건 해방감! 사실 난 이 해방감에 중독되어 버린 것 같다. 여행은 무척 달콤하다. 반면 현실은 고달프고 늘 잘 해내고 싶은 내 욕심은 사회에서 비참하게 짓밟힌다. 조금 격하게 표현했지만 사실 누구나 그렇게 살고 있다. 실패 없는 성공은 없으니.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오늘의 나는 또 그 사실을 외면한다. 그리고 여행지를 검색한다. SNS를 아주 잠깐만 들여다봐도 여행지에서 행복한 표정을 지은 사람들이 나를 유혹한다. '나처럼 어서 떠나 봐!'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그런 그들도 늘 여행하는 삶은 아닐 텐데.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것에 빠져 그 속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거다.
여행이 옳지 않다는 건 아니다. 만약 내가 여행을 떠나서 무언가를 얻는다면 그것도 인생에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돌아보고 돈으로 살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을 하고 더욱 발전시키는 방향의 여행이라면 누구도 반대할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의 나는 여행지에서 특별히 느끼는 교훈이나 깨달음이 없다. 그저 새로운 곳에서 느끼는 행복만을 좇는 사람인 것이다.
왜 평범한 일상을 즐기지 못하고이상적인 것만을 추구하게 된 걸까? 계속 반복되는 내 모습은 이렇다.
1. 머릿속이 복잡하다. 늘 고민을 안고 산다.
2. 열심히 노력해서 성과를 내지만 만족하지 못한다.
3. 늘 불만족스러운 상태니 직장을 다니면 병을 얻는다.
4. 스트레스를 원인으로 치부하고 퇴사 후 백수가 된다.
5. 여행가가 꿈이라면서 언어나 역사 공부 없이 SNS에 보이는 좋은 곳, 예쁜 곳만을 찾아다닌다.
6. 일을 하지 않으니 수입은 없고 지출만 커진다.
7. 생활에 지장이 생긴다.
물론 긍정적인 부분도 많이 있지만 한 회사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 데는 이런 부정적인 상태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면역체계에 이상이 있어 치료를 받고 있다.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스트레스나 피로가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어린 시절부터 '잘 해내야 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자라왔고 커서도 완벽주의가 강하다 보니 완성도 있게 일을 처리하지 못하면 그것이 굉장한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반은 잘하고 반은 못했을 때, 잘한 것보다는 잘못한 것만 자꾸 돌이키며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다.
알고 보면나는 여행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실수하지 않고 살고 싶은 거다.여행은 잘하고 못하고 가 구분되지 않으니까. 미리 세운 계획과 조금 달라져도 그 또한 매력 있는 여행이 되니까. 사회생활에서는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늘 말썽이다. '실수해도 돼, 인간은 누구나 완벽하지 않아.' 이걸 못 받아들이면 계속 도피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셈이다.
이제 그만!
나는 내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못하면 못하는 대로, 지금보다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아주 사소한 거라도 좋다. 영어 단어를 하나 더 배웠다던지, 꽃꽂이를 할 줄 알게 됐다던지, 청소를 잘하게 됐다던지,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어제보다 팔 굽혀 펴기를 한번 더 할 수 있게 됐다고 해도 오늘의 나는 한 뼘 더 성장한 거라고 칭찬해 주고 싶다.
꼭 큰 성공을 해야만 하는 게 아니다. 남들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볼 필요는 없다. 그저 매일 뿌듯함을 안고 부족한 나를 보듬어주며 살아갈 수 있다면 충분히 잘 살고 있는 거니까. 이제 그만 떠나자, 내 자리를 찾고 이 자리에서 조금씩 영역을 넓혀가자.그게 지금의 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