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13
⠀어릴 적엔 밤바다가 무서웠다. 아니, 윤슬이 밝게 반짝이는 낮에도 바다는 줄곧 사나운 짐승처럼 내게 심히 으르렁댔다. 그저 아빠가 항구와 맞닿아 있는 아찔한 바닷물 근처를 배회할 때면, 나는 두려움에 사로잡혔고, 몸속엔 공포와 불안이 가득 차, 발을 헛딛기라도 하면 그대로 푹 가라앉을 것만 같았다. 그러한 푸른빛에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나는 울어야 했고, 매번 속으로 아빠를 크게 불렀다. 그의 발밑에 괴어 있는 짠내는 무척 어둡고 지독했으며, 그 냄새를 따라 내려가는 층계에는 가파른 파멸과 증오가 묻어 있었고, 그 밑으로 발을 내딛는 인간은 내게 너무나 작아 보였다. 하물며 항구의 볼따구를 살살 때리는 과묵한 파도 소리는 분명 더러운 소음이었다. 그때의 나는 그 불길한 물에 누군가라도 발이 빠지면, 곧바로 온 육체가 으스러지는 줄 알았다. 그러고 그 위로는 물먹은 죄책감과 구슬픈 살갗이 둥둥 떠다닐 것만 같았다. 지금도 그 시절을 회상할 때면 내 동공엔 새빨간 바다가 그려지고, 눈망울엔 소금기가 서린다. 그때와 달리 농익은 머릿속은 다시 느릿느릿 굼뜨고, 흐르는 눈물 속의 짠내는 더욱 짙게 풍겨 오른다. 난 왜 그리도 바다가 무서웠을까. 온 사방이 푸른색으로 뒤덮여 한 평생 짠내만 맡아온 인간이, 어째서 그 반쯤 젖은 층계가 두려웠을까.
⠀어릴 적의 난 왜 친숙한 바다 앞에서 항상 조바심에 가득 찼을까. 어째서 수평선과 나란히 겹쳐 있는 인간의 뒷모습이 그리도 나약해 보였을까. 지금도 나는 어설프게 왜곡된 기억들 속에서 격렬히 발버둥친다. 항구의 각진 절벽이 왜 무서웠는지, 어째서 그 바닷물로 향하는 좁은 층계가 두려웠는지 지금도 잘 알지 못한다. 그저 어릴 적의 나는 바닷물로 가까이 다가가는 사람의 손을 가히 붙잡고만 싶었다. 그저 우리가 위험해 보였고, 불안해 보였고, 아슬아슬해 보였다. 항구의 울퉁불퉁한 돌바닥 위를 버티는 내 두 발마저 그 자잘한 굴곡에 맞춰 부서져 있었다. 그렇게 균열 위에서 맞이한 우리의 바다 구경은 틀림없이 무언가 불안했고, 바닷바람이 실어 오는 짠내는 익숙함이 진동했다. 왠지 모르게 그때의 난, 바다 앞에 선 사람의 몸이 곧 수평선에 잘려 나가는 줄로만 알았고, 어쩔 때는 그 날카로운 칼끝이 목주름 옆에 자리했기에, 정말 위험천만해 보일 뿐이었다. 그렇게 뒤에 물러나 있던 작은 인간은 바다의 심연 속으로 함께 빨려 들어갈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다급한 마음의 손짓은 소금기 서린 허공을 마구 헤집어 놓았고, 신발의 밑창은 새까맣게 닳고 있었으며, 나는 그렇게 암담하고 비참한 바다를 완전히 등진 채, 귓가에 들려오는 파도 소리에 맞춰 울부짖고 있던 것이었다.
⠀신발 밑바닥에 끼어버린 자잘한 돌멩이는 쉽게 빠지질 않았다. 우리가 짊고 살아야만 하는 과거의 흠집 같은 것이 계속 내 발목 밑을 무겁게 잡아당기는 나날들이었다. 어릴 적의 난 이따금 의기소침했고, 거듭 스스로에게 가련함을 강하게 입력했다. 그러나 때론 허영심에 잡아먹혀 하찮은 내 옆구리를 양쪽으로 길게 잡아 늘렸고, 그럼에도 때아닌 억울함에 혼자 거대한 눈물을 떨구며 방바닥에서 바다의 잔물결을 여러 번 보았다. 집안은 항상 겸연쩍은 표정들이 떠돌아다녔으며, 그러면서도 격렬한 분통이 벽에 단단히 박혀 그 공간을 나도는 우리를 여러 번 찔러댔고, 그들 사이에 껴 있던 큰 돌멩이는 분명 더러운 숫자의 나열이었다. 거실 바닥의 박복한 주름은 그들의 인내심을 이따금 넘어뜨렸고, 그 겉면에는 어설픈 증오와 떨어져 나간 숫자들이 즐비해 있었다. 그들이 착실히 일구어 온 집안의 무늬들은 일순간에 찢겨나가기도, 혹은 물에 젖어 먹먹한 울분의 눈빛을 형형하기도 했으며, 나는 어쩔 때는 그 배경을 완전히 모른 체하며 어두운 밤을 고요히 넘겼다. 바다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아도 파도의 사나운 눈동자는 방 안쪽에서도 비춰 보였고, 그 소음은 앳된 인간의 조그마한 꿈속까지 이어졌으며, 이튿날의 등굣길은 축축이 적셔져 몹시 끈적거렸고, 그날의 밑창은 여전히 보잘것없었다.
⠀다행히 커갈수록 바닷물의 수위는 올라갔다. 첨예한 푸른빛은 차츰 아빠의 정수리 위쪽으로 자리했고, 더 이상 내 두 눈에 위협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샌가부터는 그 뒷배경이 전혀 푸르지 않는데도, 사람이 작아 보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다행이지만, 어쩌면 슬픈 그림과 그 속의 비중 없는 인물로 점점 변모되는 것이었다. 내 눈높이에서는 우리 중 그 누구도 더 이상 큼지막하게 보이지 않았고, 이젠 내가 잘려나갈 차례인가 보다 하는 착각에 휩싸일 뿐이었으며, 비로소 그 더러운 소음을 가까이서 제대로 듣게 될 스스로에게 수많은 의심을 품었다. 바다에 슬쩍 몸을 잠기고 싶지 않아서, 좁고 어두운 층계로 내려가는 두 발이 부르르 떨리고 싶지 않아서, 이제까지는 속으로 누군가를 크게 불렀지만, 어느샌가부터 울음을 받아줄 사람이 사라져 버려, 혼자서 아찔한 바닷물을 조용히 배회할 생각에 온 신경이 빨갛게 멍들 뿐이었다. 그렇게 내 뒤편에 서 있는 누군가의 시선에서는 다시 옆구리의 상처가 붙잡히고, 푸르고도 붉은 그 오묘한 빛깔이 눈에 거슬리게 되며, 그렇게 난 또 잔잔한 바다를 두려워하고, 내 사람들은 짠내를 경멸하게 됨이 틀림없어 보였다. 잔파도의 악랄한 손짓만이 떠도는 바다가 눈앞에 아른거리며 내 성숙해진 영혼을 유폐시킬 게 뻔했다.
⠀그럼에도 내 두 발은 더 이상 항구의 돌바닥을 격렬히 핥지 않았다. 예전과 다른 안정감이 아래에 뭉쳐 있던 것일까. 정녕 이제는 바다 앞에서 누군가를 향해 각혈하는 추레한 모습을 내보이지 않을 수 있는 걸까. 확실히 그때의 불쾌한 소음은 좀처럼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나 바닷바람에 나부끼는 힘없는 머리카락, 코끝을 은은하게 찌르는 짠내, 그리고 우리를 감싸 안는 그곳만의 상실감은 아직도 여전했다. 하지만 그때와 달리 지금의 파도 소리는 그저 물이 밀려 들어오는 소리일 뿐이고, 전혀 날카롭게 다가오지 않는다. 바다를 향해 삶의 응어리를 실토하는 것만 같던 그의 모습이 이제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 내가 앞서 자리한 탓일까. 아니, 스스로에게 쥐여줬던 가련함이 물러가고 새로운 두려움이 차오른 탓일까. 더 이상 바다가 무섭게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적요하면서도 가냘픈 시절이 쉽게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는다. 우릴 유린했던 파도의 가증스런 눈빛에 더 이상 아연해지지 않는다. 미족했던 마음이 무언가로 채워진 것일까. 지난날의 불발된 가능성이 무한한 바다와 공생하기로 한 것일까.
⠀그러나 머릿속에 차오른 어릴 적의 바닷물을 다시 빨갛게 칠할 때면, 내 얼굴엔 조그마한 웅덩이 두 곳이 생겨난다. 흑백 가릴 것 없이 웅덩이의 온 겉면에서는 짠내가 피어오르기 시작하고, 결국 넘쳐흐르고서는 피부를 반쯤 적셔버린다. 언제까지나 무한히 우릴 쫓아왔다 도망치는 파도와는 달리 두 웅덩이 속의 물은 지금까지도 존속한다. 어릴 적의 바다 구경은 안타깝게도 눈물 속에 혼탁함으로 투영되어 구차한 변명을 안쪽에 늘어놓는다. 희미함으로 가득 찬 눈동자는 아직도 방황한다. 어지러운 삶의 연속성을 쳐다보는 신경들은 천진한 웃음을 내보인다. 내 발바닥은 대체 어떤 참담함을 감추고 있는 걸까. 난 이제 무얼 흠모하며 푸른 바다를 등지고 있어야 할까. 새벽녘의 정적은 나를 또 한 번 흑백의 관념에 빠뜨린다. 푸른 바다의 일렁임은 내 마음을 사정없이 뒤흔든다. 그때를 끄적이는 지금도 축축한 문장들 너머에 거대한 바다와 덩그러니 주저앉은 알량한 인간이 그려지고, 엉성하게 미화된 기억은 자꾸만 나를 글 바깥으로 내몬다. 그러나 나는 꿋꿋이 글 곳곳에 번진 눈물을 여백으로 옮겨 묻히고, 다음 글도 결국 끈적이는 물 위에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