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단을 곁들인)
이번 종주의 완주는 ‘A가 잘 따라올 것인가.’에 달렸다. 근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운동을 다양하게 그것도 아주 많이 하는데 나보다 체력이 좋으면 좋았지 안 좋을 리 없었다.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저 말들이 다 밑밥과 엄살을 부리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는 한편, 함께 자전거를 타본 적이 없는 터라 섣불리 판단할 수 만도 없었다. 이번 여행의 변수는 그녀였다. 얼마나 가야 할지 계획을 세우려 해도 세울 수 없다.
아무에게나 종주 제안하지 않는다고 해놓고는 섣불리 A의 오퍼에 오케이를 했다. A를 어느 정도 안다는 생각과, 같이 2박 3일 지내며 더 알고 싶은 마음이 혼재해서 덥석 승낙을 해버린 게 크다. 이런 걸 자가당착이라고 하는 건가. 내 말에 모순이 있음을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도착하기 20분 전 연락을 해볼까 했는데.. 전화가 왔다. 이번 종주 망한 거 같다고.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다. 로드를 타본 적도 없는데 간지 난다고 로드를 빌리는 친구였음을 간과했다. 정말 잊고 있었다. 로드를 타본 적이 없었구나. 왜 엠티비를 빌리지 않은 걸까. 10시 20분까지 올 수는 있는 걸까. 취소하고 11시 버스로 변경해야 하는 걸까. 자리는 있나. 취소 수수료는 얼마일까. 뒤로 밀리면 오늘 대체 몇 킬로를 탈 수 있는 걸까. 야간 라이딩은 준비 하나도 안해왔는데. 오늘 10km는 갈 수 있나? 아.. 우리 이거 맞나?
일단 내가 고속 터미널에 도착하면 10시인데, 20분 남은 이 시점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도착해서 가만히 있기보단 표를 변경하는 거였다. 안내 데스크에서 줄 서고 있는 도중 전화가 왔다. 터미널에 도착했다는. 한 줄기 희망이 보였다. 뭐지? 못 탄다더니만 생각보다 타는데?
어쩜 이건 정말 엄살일지도 모른다. 종주길에 오르는 순간 진짜 자전거 실력이 나오겠지만 로드를 처음 탔는데 이 시간을 맞췄다는 건 꽤 체력도 좋고 잘 탄다는 반증이다. '이 종주 나쁘지 않겠는데?'라는 생각이 찰나에 스쳐갔다.
우는소리를 하며 A는 나타났다. 자전거 타고 온 3.6km 순간이 제일 무서웠다고. 이 3.6km도 이렇게 무서운데 앞으로 오늘 60km은 어떻게 타냐며 굉장히 흥분한 상태로 이태원에서 어떻게 잠수교까지 왔는지를 설명해 주었다. 아저씨가 종주를 포기하라 했다는 둥, 한강에서나 타라고 했다는 둥. 아저씨가 말이 많아서 40분이나 붙잡혀있었고 그 이른 9시 아침에 손님이 무려 세 팀이나 있었고 그 와중에 외국인도 있었단다. 대체 아침부터 얼마나 버라이어티 한 상황을 맞이한 것인지 듣는 내내 시트콤 한편 찍고 온 듯했다. 결론은 탄 지 1분 만에 엎어졌고 무릎에 큰 상처를 달고 와서 너무 무섭다는데... 나의 로드 입문기랑 비슷해서 웃음이 났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이 친구를 어떻게 데리고 갈지 또 막막해졌다.
(중략)
군산 터미널에 도착한 우리는 주변에 밥 먹을 식당을 찾아봤다. 백반 집이 무난해 보였다. A와 나는 공교롭게도 식단 조절을 하고 있었다. 이번 종주는 나한텐 국토종주 세 번째 코스였는데 종주 길은 어렵지 않지만, 식단을 병행해야 하는 챌린지가 추가되었다. 처음 코스는 자전거도 모르는 와중에 633km를 무작정 타야 해서 힘들었고, 두 번째는 종주 중 제일 악명높은 코스를 리딩 해야 돼서 정신없었고, 세 번째는 리딩 + 식단이 가미되다 보니 앞선 경험을 바탕으로 길을 떠남에도 여전히 종주는 낯설었다. (익숙해지지 못하는 내가 싫기도 하고)
하얀 쌀밥과 고추장이 얹어진 다양한 반찬의 한상을 마주 한다는 게 퍽 이질감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외식을 하는 게 1달 반만이었다. 누구와 겸상을 하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탄수화물 100g, 단백질 150g 및 그 외 야채들만이 허락된 나의 식단에 작은 균열이 일었다. 내 트레이너와는 철석같이 약속을 했고 돌아가면 인바디 수치로 거짓말은 바로 들통날 터라 어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예민한 채로 진행해 종주를 망칠 수도 없었다. 이러다간 내 인간관계마저 파탄 날듯 했기 때문에 적당한 조절도 필요했다.
정말 다행히도 A는 바디 프로필을 준비하고 있어서 나보다 더 식단 관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리딩자가 보여주는 최소한 성의로 근손실을 굉장히 두려워하는 A를 위해 최대한 보급품을 단백질로 준비해갔다. 유산소를 일정 이상으로 하면 근손실이 오기 때문에, 적당히 중간중간 보급해줘야 한다는 친구의 말을 귀에 딱지 앉도록 들었기 때문이다.
군산은 작년 여행 후 1년 만에 찾았다. 철길 따라가는 길이 꽤 익숙했다. 그 길로 쭉 가면 군산 하굿둑이 나온다. 여행 왔던 곳을 다시 자전거 길로 지나가며 추억을 회상하는 것은 또 다른 설렘을 남긴다. 그 속도와 분위기, 풍경은 자전거길 위에서만 느낄 수 있기에 자전거 여행을 끊지 못하는 이유기도 하다.
금강 자전거길은 길이 정말 잘 되어있다. 그래서 종주길 중 비단길로 칭해진다. 아라뱃길이나 한강 길 아니고서는 이런 길을 만나는건 쉽지 않다. 자전거를 시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왔으면 좋았을텐데 괜스레 내 두 번째 동행자에게 미안해진다. (그 친구랑 여길 먼저 왔었어야 했는데.) 하굿둑 자전거 길로 들어서니 사람도 적고, 바람도 역방향일까 우려는 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다. 날씨가 쾌청하니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그 기분을 한층 더 좋게 만들어주는 건 날씨와 더불어 A의 실력이 좋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도 훨씬 좋았다. 그동안 함께한 운동이라고 해봤자 2번의 산행이 전부였다. 1년 전 한라산 정상을 생수 500ml과 운동화 신고 등반했던 산행 초보의 면을 톡톡히 보여준 때와 지난주 청계산 산행에서 숙취로 해롱거리는 모습과는 대비되는 체력이었다.
한층 걱정을 심어줬던 것과 달리 제대로 못 봤던 체력을 이제서야 볼 수 있게 되었다. 길이 좋고 컨디션도 좋아서 그런지 굉장히 빠르게 치고 나갔다. 평속이 23에서 27은 족히 되었다. 역시 로드 자전거는 장비빨 인가. 몰라 볼 정도로 성장한 저 모습에 뒤에서 쫓아가는가는데 어이가 없음에도 기분이 좋았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