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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젠젠 Feb 04. 2023

글쓰기의 두려움

글이란 무엇인가.

글을 언제부터 썼을까. 억지로 써야 했던 초등학교 방학 일기 말고 스스로 쓰기 시작한 건, 여행시절 쉽게 깨버린 새벽, 공용 거실로 나와 랩탑을 키면서부터였다. 무엇을 할지 다음날의 계획을 세우진 않았지만, 전날 무엇을 했는지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루틴화되고 재미없는 일상생활이지만 기록해 보고자 펜을 든 게 벌써 햇수로 5년째이다. 꼬박꼬박 일기를 쓰진 않지만 일기를 쓰며 두려움을 느낀다. 글쓰기가 두렵고, 점점 안 쓰며 나의 문장력은 거의 몇 년째 정체하고 있다.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고민하니 세 가지 정도로 정리된다.


글을 쓰면서 나타나는 첫 번째 두려움은 자기검열이다. 사실 글을 잘 써야 하는 상황도 아니고 굳이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닌 일기에서 내 스스로를 검열하면서 쓰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마치 내 일기가 세상에 내놓아질 것만 같은 기분. 그래서 온전한 나를 드러내지 못하고 본연의 감정을 숨기게 된다.

그래서 자꾸 나의 표현이 정제된다. 문장이 메말라가는 게 보인다. 사실 팩트 문장 구성으로만 이뤄진 내 글은 나의 온전한 목소리가 드러나지 않는다. 이럴 거면 기자가 되어 기사를 썼겠지. 초고 때의 내 모든 감정을 쏟아내서 표출하고 싶은 열망과는 다르게 퇴고하며 자꾸 표현들을 걷어내고 핵심만이 담긴 딱딱한 문장들만 남겨진다. 그래서 내 글은 제3자가 쓴 글처럼 느껴진다.


글쓰기의 두려움의 두 번째는 글의 소재이다. 내가 한 현상에 대해 깊이 고찰해 보지 않고, 풍부한 배경지식도 없는데 한 가지 주제에 대한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그나마 써본 글들이 나의 경험이나 일상생활에 대한 고찰이다. 그마저도 깊은 고찰을 하지 않아서 글을 마지막 까지 끌고갈 힘이 없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정말 한 주제를 갖고 끈질기게 고민해서 한편의 글을 내는 사람을 동경하지 않을 수 없다.

장황하게 첫 부분을 쓰다가 보면, 대개 열에 일곱은 쓰는 와중에 다른 생각에 사로잡혀 글이 다른 주제로 넘어가고 싶어 한다. 그래서인지 항상 내 일기는 쓰다만 경우가 많았다. 끝맺음을 생각조차 못 하는 것이다. 떠오르는 그 생각을 놓치고 싶지 않아 다양한 주제에 대한 2-3가지 문장만이 중구난방으로 나열되는 경우가 많았다. 브레인스토밍할 때는 좋지만, 한 가지에 대해 기승전결로 나누고, 논리적 구조를 갖고 진득하게 써야 되는 글쓰기에서는 최악의 습관이었다. 이는 분명 내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서 벌어지는 일이다. 처음과 다르게 글이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흘러가게 되고, 더욱이 퇴고를 하지 않으니 뜻 모를 글로 남게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글쓰기의 두려움의 마지막은 수사력의 부재이다.

글은 많이 읽어 본 사람이 잘 쓴다고 하는 말에 열렬히 공감한다. ‘오후 네시가 되었다.’ 와 어스름이 다가와 창문 빛으로 그림자가 길어진다.’은 완전히 다르지 않은가. 참 버석버석한 감정을 가진 난 당연히 전자의 문장만을 쓴다.  뛰어난 문장력, 수사 어구들이 마음을 울리는 섬세한 글들이 좋아보이는데 그런 글을 못쓴다는 생각에 더욱 내 글들을 숨기고만 싶어진다. 어쩌면, 그 모든 원인은 내 글을 보고 ‘실력이 없다고 수군거릴까 두려운 게 아닐까’ 란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단단하고 여물어진 문장을 쓰는 다른 사람들을 보고 나면, 내 문장은 숨기고만 싶다. 그래서 합평 시간이 무서웠다. 남들꺼 읽는 건 좋지만.



이 글을 씀으로 인해, 첫 번째 두려움은 조금 해소가 된 듯하다. 이렇게 공개된 곳에 이렇게 내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여전히 두 번째와 세 번째 두려움은 어떻게 해소할지 잘 모르겠다. 답은 뻔히 나와 있는 걸 애써 외면한다. 불변의 법칙인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는 것. 게으른 나는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다. 세상엔 정말 글 잘 쓰는 사람이 많던데. 문장력에 대한 센스가 없다면 글로 밥 벌어먹고 살 생각하지 말라던 친구의 말이 갑자기 떠오른다. 글로 밥 벌어먹고 살 생각은 크게 없지만, 내 이야기는 남겨두고 싶어. 휘발되지 않는 글이니까 더더욱 예쁘게.


글에 대한 고민을 몇 해째 거듭하며 글쓰기 수업도 듣고, 글쓰기 모임도 두어번 가졌다. 그러면서 차차 글에 대한 욕심을 버리는 중이다. 내가 못쓰는 글은 두고, 내가 잘 쓸 수 있는 글을 써보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내 문체가 이렇다는 걸 받아들이는 중이다. 대신 소재를 조금 더 재밌는 걸로 가져가자. 내가 했던 경험은 누구도 경험 못했을 거니까. 이건 나만 했던 거니까.


글은 독자가 있을 때만 완성이 되는거라고 했다. 읽고 싶은 글은 어떻게 쓰는 것일까. 오늘도 나는 그 궁금함을 해소하기 위해 글을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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