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젠젠 Sep 02. 2022

빌어먹을 호기심

나는 왜 힘이 드는가?

일하다 카톡창을 확인 해보니 몇시간 전 언니한테서 다급해 보이는 메세지가 여럿 와있었다.



‘바빠? 

'카톡 가능해? 

'우리 이거 할래? 듀애슬론? 

'엄청 재밌겠지.우리 이거 하자.'

'날짜 비워둬' 

'너무 재밌겠지?' 


나의 생각과 의지를 묻던 메세지 초반과는 다르게 대회 참가가 기정 사실화가 된 듯한 메세지 흐름은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일단 듀애슬론이 무엇인지 검색해 본 후 참가 자격 요건을 쭉 살펴보고 한마디를 남겼다. 반박할 조건들이 너무도 많았지만, 일단 가능성이 의심되는 것부터 가장 따져묻고 싶었다.


‘언니, 이거 철인 2종 경기인데 자전거도 없는 우리가 가능하다고요?’


듀애슬론은 참가자 본인의 로드 자전거 혹은 MTB를 필수로 지참하여 지정된 장소에서 검차 후 대회 전날 대회장에 거치를 해야 한다. 듣기만 해도 굉장히 번거로운 대회임이 분명했다. 전제는 로드 혹은 MTB 자전거가 있어야 했고, 우린 자격 미달이었다. 자격 요건에서 충족하지 않는데 대체 무슨 수로 이걸 진행할 셈인지 물어봐야했다.


‘나 하고 싶은데.. 어디 방법 없을까?’

‘잘하자는 거 아니고, 참여에 의의를 두자고. 우린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완주만 하면 되는거야.^^’


슬금슬금 떡밥을 던지면서 한발 물러서면, 오히려 내가 덥석 그 떡밥을 문다. 언니의 전형적인 영업 스타일이다. 우리의 대화에서 항상 언니는 타율 좋은 낚시꾼이었고, 나는 그 꼬임에 훌러덩 넘어가는 피라미었다.


‘이거 봐. 기념품 엄청 좋아. ‘

‘스폰서도 빵빵하고 참가비가 16만 원인데, 그 정도도 안 주면 양아치 아닙니까?’

‘마침 이 대회 너네 집 근처에서 열리네! 끝나고 그 근처에서 놀면 되겠다. 바다 옆을 달린다니 생각만 해도 짜릿하지?’ 

‘….? 아니 이거 우리 완주할 수 있냐고요…완주를 해야 기쁘게 놀죠.’

‘수영 빼고니까 충분해. 비경쟁부문 나가면 된다니까. 지금부터 바짝 2달 반안에 연습해 보자고. 앞으로 주말마다 시간 비워’


소통이 전혀 되지 않는 창과 방패같은 대화가 흘러가며 나는 참여의사를 명시적으로 피력하진 않았지만, 다른 한쪽으론 자전거 없이 참여할 수 있는 수를 계산하고 있었다. 따분했다. 경험에도 역치가 생겨 점점 더 자극적이고 새로운 것이 필요한 차에 ‘옳다구나’ 싶었고 호기심이 발동했다. 오랜만에 깨어난 호기심은 더 오래 겨울잠자고 있던 부지런한 자아를 깨워냈고, 그 둘이 만나 시너지를 내기로 합심했는지 내 머리속은 아주 빠르게 모든 가능성을 따져본 후 합리적인 방법을 도출해 내어 어느새 언니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언니의 영업타율 한자리가 올라가는 소리를 애써 무시한채 말이다.


‘자전거는 여기서 빌리면 될 것 같아요. 우리 자전거 못 타니까 MTB 말고 로드로 빌려요. 각자 자전거 빌리고, 연습은 주말에만 가능할 거 같으니까 그때 만나요.’


대회 접수와 자전거 대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저 대화를 끝으로 나는 일에 파묻혀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보냈고 듀애슬론은 기억의 저편으로 넘어갔다. 순간의 호기심으로 일은 저질러 버렸고, 책임은 미래의 내가 질 터였다.

2주일 뒤 대여한 자전거가 배송 완료되었다는 문자가 오자 그제서야 완전히 까먹고 있었던 듀애슬론이 급하게 머리속을 스쳤다. 마침 언니에게도 연락이 와있었다.


'큰일 났어. 나 자전거 이렇게 못 타는 거 실화야?'

“…… 언니 자전거 못 타요?'

“너 로드 타봤어? 이거 일반 자전거랑 차원이 다른데? 연남동에서 망원 한강공원 가는 도로에 차들이 쌩쌩 달리니까 무서워 죽는 줄 알았어.  중심 잡는 것도 어렵고 이거 진짜 무서워. 너도 빨리 타봐야 될 것 같아." 횡설수설 언니가 말을 이었다.


"아…. 일단 헬멧 꼭 쓰시고요. 보호장비 철저히 하세요. 우리 이번 주에 만나니까 그때까지 사고 나지 말아요. 제발"

어수선한 대화를 마치고, 나는 ‘로드를 탈 수 있을까. 지금이라도 대회 포기할까.’ 엄습하는 불안감을 애써 모른 채 하며 일에 다시 몰두하기 시작했다.


주말에 배송된 자전거를 픽업한 후 언니가 말한 망원한강공원으로 길을 나섰다. ‘뒷일은 미래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라는 무책임함은 때를 기다렸다는 듯 값을 치뤄보라는 본색을 드러냈고, 나는 처음 만난 로드 자전거에 난색을 가감없이 표했다. 가볍고 얇은 타이어가 달린 로드 자전거는 도로면에 있는 파편들로 인한 모든 충격을 고스란히 흡수하게 만든다. 타고나면 손목, 어깨, 엉덩이, 발목 등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달라진 이 모든 부분에 적응을 하기까진 시간이 필요했다.



듀애슬론 비경쟁 부문은 총 30km로서 5km 러닝 / 20km 자전거 / 5km 러닝 코스로 이뤄져 있다. 바꿈터에서 거치된 자전거를 환차하고 정비하는 시간까지 경기 시간에 포함된다. 5km 첫 번째 러닝에서 컷오프는 50분, 자전거 20km의 컷 오프 또한 50분이었다. 해당 시간 내 바꿈터를 통과하지 못하면 실격 처리된다.

우리의 완주를 위해서 계산을 해보자면 첫 번째 러닝에서 기록을 단축하여 자전거 바꾸고 정비하고 탈 시간을 벌어야 했다. 지금 내가 한 계산은 전적으로 내 위주다. 가장 큰 문제가 있다. 언니와 나는 주종목이 달랐다. 나는 달리기로 승부를 봐야 했고, 언니는 자전거에서 기록을 단축해야 했다. 주말밖에 연습할 수 없던 나와 달리 언니는 평일에도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더니 자전거에 빠져서 살았다. 매번 자전거 관련된 정보가 잔뜩 담긴 글들과 훈련 방법 여럿 보냈지만 나는 시큰둥 했다. 그 결과 언니는 자전거 타면 부스터를 단듯 날아다녔다.




“언니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완주 못할 것 같은데요?” 


몇 주간의 연습을 통해 내린 결론이었다.

첫 번째 주엔 자전거에 익숙해지도록 행주산성에 다녀왔다. 여행 간듯 기분은 좋았고 자전거에 적응할 만 했으나 역시 속력 내는건 무서웠다. 아차하면 사고로 직결되기에 매번 긴장을 늦출 수 없었고, 특히나 따릉이가 지나가면 제법 화가 났다. 급브레이크를 잡다 제동력에 못이겨 튕겨져나가 죽을번한 일을 여러번 겪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주는 조금 더 욕심을 내서 망원에서부터 양평 두물머리를 왕복으로 다녀왔다. 총 130km를 탔는데 무리한 나머지 엉덩이를 포함한 이곳 저곳이 아파서 다음날 앓아누웠다.

네 번째 주부터는 5km 러닝 후 지정된 자전거 장소에서 환차 후 20km 타고 다시 러닝 하는 훈련을 계획했다. 근전환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아 2번째 러닝에서 힘이 다 빠져서 중도 포기하고는 길 한복판에 발라당 누워버렸다. 고민하다 없는 시간을 비집어 내어 출근 전 헬스장에서 러닝 - 사이클 - 러닝 근전환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다섯 - 여섯 번째 주가 지나고 기록이 나아질 기미가 없다 보니 초조했다. 전략을 바꾸어 체력이 안되면 자전거 용품과 보조품들로 보충해보자며 클릿 슈즈, 물통, 단백질바, 에너지젤, 포도당캔디 등 타우린 함량이 높은 것들을 미친듯이 사들였다. 집에 택배 상자가 끊이지 않았다. 실전연습이 가능한 주말은 이제 고작 3번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오지 않았으면 하고 간절히 바랬던 대회 날은 오고야 말았다. 그사이 미리 계획되어 있던 해외여행도 다녀오고, 페스티벌들도 여럿 즐겼다. 완주를 못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완벽한 조건에 놓여 있었다. 자업자득이니 그냥 재밌게 즐기는 수밖에 없었다. 날이 좋았다. 카페인 함량이 높은 보충제들을 몸속으로 흡수시켜서였을까. 기분도 정말 좋았다. 대회 곳곳에서 보이는 참가자들의 열정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저마다의 목적을 위해 나선 사람들. 괜스레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선크림도 듬뿍 바르고는 준비운동을 마치고 출발 지점으로 향했다. 땅 - 총소리가 울리고 우리는 출발했다.



예상과는 다르게 우리는 매우 준수한 성적으로 대회를 마쳤다. 그동안의 걱정은 기우였다. 우리는 앓는 소리를 해댔지만 생각보다 경쟁심이 셌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했던 훈련들이 실력 발휘에 도움을 주었다. 그냥 55km 경쟁부문으로 했어도 완주했을 거라며 볼멘소리와 함께 뒤풀이를 하러 식당에 들어섰다. 식당 옆 테이블의 사람들이 자전거 국토종주를 이야기했고 밥을 먹던 내 귀에 들렸다. 저게 뭐지? 괜시리 궁금해졌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하며 검색을 하고 언니에게 보여줬다. 


"언니 우리 이거 할래요?"


몇 번에 대화 끝에 밥을 마저먹고는 우리는 국토종주의 시작점인 정서진으로 향했다. 종주수첩이 필요했지만 모바일로도 된다고 하니 어물적 넘어갔다. 이렇게 얼떨결에 또 다른 낭만적인 개고생이 시작되어버렸다.



우린 아마 별일이 없는 한 트라이애슬론도 나갈 것이다. 한 3년쯤 뒤에.



왜 나는 힘이 드는가?

빌어먹을 호기심 때문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