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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젠젠 Oct 10. 2022

사회 초년생의 슬픔

Beyond resposibilities

항공권을 건네받았다. 이번엔 독일 함부르크였다.


“제가 쿠웨이트 다녀온 지 3일이 채 지나지도 않았어요. 아직 시차적응이 안됐고... 한국에서 마무리해야 할 것도 있고요.”

항의 아닌 피력을 하러 부장도 아니고 이번 프로젝트에 전권이 있는 상무에게 직접 찾아갔다.


다시 날아가면 시차 적응은 할 필요도 없고. 쿠웨이트에서 잘하던데. 본인이 잘하니까 실력 발휘할 수 있는 곳으로 가야지 뭐, 안 그래요? 이번 경험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내가 특별히 추천했어요. 다들 못 가서 안달이지 않나요? 특히나 유럽은.”


미력한 항의와 구차한 변명은 상무에게 통하지 않았다. 온 김에 지난번 프로젝트 관련 피드백을 가져가라며 내어보고서 양손 가득 안고는 터덜 터덜 상무의 방문을 닫고 나왔다.


‘이번 출장이 다들 못 가서 안달 난 곳이었나?’

곰곰이 지난 몇 주간의 회의 내용을 되짚어 보았다. 내가 알고 있기로 이번 출장은 모두가 기피하는 대표와의 동행이 계획되어 있다. 기간도 무려 3주나 되는 긴 일정에 금년도 중 제일 중요한 프로젝트라 임원급들이 붙어 사활을 걸어도 될까 말까 한데 정보 공유도 제대로 안된 피라미 사원이 서포트를 하러 간다니. 말도 안 됐다. 내가 내 무덤을 파는 일인 건 지나가던 사람도 알겠다. 모든 수를 써서라도, 없는 가족 장례식이라도 만들어서 피하고만 싶었다.


내막을 알게 되었다. 원래는 다른 내정자가 있었는데 윗사람들의 정치싸움으로 사이가 틀어진 내정자가 밀려났고 뭣도 모르는 내가 희생양으로 지목되었다. 일 잘한다는 건 핑계고, 말 잘 듣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당시 한국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쿠웨이트를 가기 전부터 프로젝트 나름대로 큰 파트를 맡게 되어 돌아와선 팔로우업이 예정되어 있었다. 신입이지만 큰 프로젝트를 맡아 신이 났다.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사회 초년생인 시절에 내가 할 수 있었던  잘하는 게 아니라 ‘열심히’였으니까. 모든 전권이 나에게 있으니 재밌었고, 만든 것들에 대한 피드백이 돌아올 때마다 좋았으니까. 그렇게 열정을 무기 삼아 고생인 줄 모르고 야근과 주말을 꼬박 바쳐댔다. 그땐 그게 당연한 줄만 알았다.

함부르크로 날아가기 전 독일 프로젝트 숙지는커녕 내가 비어있는 동안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는 아무한테도 줄 수 없는 내 파트를 끝내고 가야만 했다. 겨우 기간을 맞춰 인수인계까지 완벽하게 해 두었다.


곧 발등에 불이 떨어진 3일 남은 함부르크 프로젝트가 문제였다. 정치싸움이고 고, 정확히 내 상황만 놓고 봤을 때는 큰일이 났다. 나는 또 하나의 시험대에 놓였다. 그동안 대표는 외국에 있었으니까 가끔 출장에서만 봤기에 일개 직원인 내가 얼마나 눈에 들었을까. 내 이름을 알기나 하면 다행이지. 하지만 3주 내내 소규모 TFT에서 하루 종일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나눌 거며, 업무 하는 나를 재고 따질지 안 봐도 명백했다.

이 TFT의 구성원에서 한국인은 나 혼자였고 함부르크에서 만날 나의 사수는 폴란드인 M이다. 일 잘한다고 널리 널리 한국까지 소문난 그 사람. 그 사람과 비교가 될게 자명했다. 잘해도 본전이고 망하면 계속 붙을 꼬리표인 이번 출장. 망하면 그냥 퇴사해야지. 사직서는 어떻게 쓰는 거였더라. 장렬하게 불타오른 퇴사 결심과 함께 함부르크 비행기에 올랐다.


함부르크에서 시차를 적응할 여유는 사치였다. 진행되는 대규모 프로젝트는 정신없이 혼을 쏙 빼놓았다. 출장 내 모든 스케줄에서 자는 시간 3-4시간 빼고는 일로만 가득했다.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은 출장 가면 포상성 휴가가 아니냐며 어디를 놀러 가며 무얼 살지 생각한다는데 적어도 내 출장에선 1%도 해당되지 않았다. 놀고 쇼핑을 한다고? 그럴 시간에 잠을 자야지. 안 그럼 쓰러져 죽을 것 같은데. 지금 현재 밟고 있는 땅이 함부르크인지, 서울 시내인지 구분 가지도 않는다. 호텔과 미팅 장소만을 돌아다녀서 해외에 온 것 같지도 않다.

미팅 도중 19층 창문에서 바라보는 바깥 모습은 거리를 활보하는 파란 머리에 금발 백인들,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오래된 건물 사이사이로 자리한 여유로움을 뿜어내었다. 바깥의 예쁜 풍경이 사진을 보는 듯 이질감이 들어 이내 곧 시선을 거둬 노트북 화면에 집중했다. 요령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사회 초년생 시절, 모두가 이렇게 일만 하는 줄 알았다.



한국 팀들은 함부르크 프로젝트 팔로업을 전혀 할 수 없었다. 그쪽도 매우 바빴으니까. 대신 내가 한 파트에 대한 피드백은 전해주었다. 독일 새벽 시간에 굳이 굳이 잠자는 시간을 쪼개 한국에서 진행한 프로젝트가 어땠는지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들었다. 성공이었다. 그것도 대성공.

성공이란 말을 들을 때 기분이 잠깐 으쓱해졌다. 인정을 받은 듯 한 느낌. 함부르크에서는 생사를 오가고 있지만, 저기서 만큼은 내가 인정받았구나. 그것도 잠시였다.


함부르크 현지에서의 수많은 변수들은 감히 가늠도 못하게 발생하는 사건-사고로 이어졌고 그것들은 나를 옥죄어 왔다. 미팅이 하루 전 캔슬되고 급히 추가되는 미팅 어레인지, 도로 통제로 미팅 시간에 도착을 못하니 플랜 B로 변경해야 하는 것, 프로포절 수정 등 수시로 변하는 상황들을 수습하느라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견뎌내기가 벅찼다. 잠이 부족하니 편두통은 도졌고, 호텔 약국에서 타이레놀을 두통 째 사다 먹던 11일 차 금요일. 큰 실수가 터졌다.



3주의 일정 중 두 번째 주에 온 KOL들은 우리 클라이언트 중 슈퍼 갑 클라이언트들이다. 회사 매출의 40%를 손에 쥐고 있는 사람들. 오일머니의 대가들. 어떻게든 기분과 분위기를 모두 맞춰서라도 딜을 성사시켜야 하는 하루하루가 살얼음 판인 와중에 마무리 미팅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 화룡점정에 점만 찍으면 될 것을 하늘도 무심하시지. 발표 중 업데이트가 되지 않은 이전 버전의 자료를 사용해버렸다. 프레젠테이션 도중에 화면으로 보이는 아웃 데이트된 숫자에 순간 머리가 새하얘지고 눈앞이 캄캄했다. 돌이킬 순 없었다. 그대로 진행할 수밖에.


미팅을 끝내고 대표에게 불려 가 혼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 뒤 어떻게 호텔로 돌아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영혼이 반쯤 비어있는 상태로 지친 얼굴과 함께 다른 사람들에게 인사를 한 후 호텔로 돌아왔다.

방 안으로 들어옷도 채 갈아입지 못하곤 쓰러지듯 소파에 누웠다. 예상은 했던 일이지만 서러웠다. 내 배 아파 나은 프로젝트를 내 두 눈으로 확인할 수도 없을뿐더러 프로젝트의 칭찬은 고스란히 내 몫이 될 수 없고,  나는 왜 함부르크에 와서 이 고생을 하며 안 먹어도 될 욕을 들어가면서 이러고 있는 것일까. 그간의 설움이 물밀듯 밀려서 올라왔다. 겨우 2번째 주를 마치고 마지막 한주를 버텨내야 하는데 자신이 없었다.


욕실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거울 속의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빨갛게 충혈된 눈에 눈물이 맺혔다. 차오른 눈물은 결국 넘쳐흘렀고 뚝뚝 한 방울씩 떨어졌다.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 세면대 물을 틀어놓고는 흐느꼈다. 몇 분 뒤 M은 내 흐느낌을 들었는지 화장실 문을 노크했다. 문고리를 열고 M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동안의 설움에 더욱 목놓아 울었다.



“I just don’t wanna be here, Mag. Wanna go home. I can’t do this anymore.”

“Jen, everything is fine. You’re doing well.

Let’s go to the pub and celebrate fucking stupid today.  I found the pub that is serving Paulaner draft beer that you are craving for all the time. As we missed the octoberfest and finally got an off day, so let’s take some rest.”



M은 아일랜드에서 날아온 M의 남자 친구인 N과 함께 나를 어르고 달래 근처 펍으로 데려갔다. 새빨갛게 충혈되고 퉁퉁 부은 눈을 한 나에게 M은 1L짜리 맥주를 시켜주었다. 출장이 참 힘들다고. 그래도 조금만 더 버텨보자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 따듯한 몇 마디 말들이 나를 진정시켰다.


마냥 모든 게 억울하면 안 됐다. 사실 나는 잘못한 게 맞았다. 실수하면 안 되는 정말 기본을 실수해버렸으니 프로페셔널하지 못했다. 기본만 잘해도 반은 먹고 들어가는데,  기본을 실수하는 바람에 그동안의 해온 어려운 일들이 빛을 바라버렸다. 빌어먹을 책임감 때문에 양쪽 두 마리 토끼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실수를 했던 거다. 컨디션 조절도 덕목이었고, 일의 경중을 따져 우선순위를 무엇인지 잘 판단하여야 했다고 돌이켜 보니 깨닫게 된다.  취사선택도 할 줄 알았어야 했는데 마냥 다 잘하고 싶었던 욕심이다.


 사회 초년생인 그땐 정말 멋모르고 열심히 덤벼댔다. 그게 오지랖인지 책임감인지 한 끗 차이인 듯 하나 참 무모했고 모자랐고 패기 넘쳤다.



애썼다. 수고했네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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