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4남매를 등교시킨 후 곧장 화장실로 뛰었다. 화정역과 붙어 있는 공용주차장은 수업 1시간 전에는 가야 주차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무료로 배우는 수업인데 주차비 아까워서 기를 쓰고 일찍 집을 나서는 나에게 주차비 얼마나 한다고 그러냐며 남편이 눈을 흘긴다.
매일 4시간씩 화정역에 있는 여성인력 센터에서 SNS 양성자 과정 수업을 듣고 집으로 달려와 가방만 소파에 던져 놓고 부엌으로 직진이다. 그 후에도 일은 끝날 줄 모른다. 정리하고 아이들을 돌보고 12시부터 내 숙제를 해결하고 나면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든다. 3시간 정도밖에 자지 못하니 다크 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와 몰골이 말이 아니다. 아침마다 거울 속 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뒷걸음을 칠 정도다.
‘오늘 숙제하며 팩이라도 붙이면 내일은 조금 나으려나?’
세수하다가 문득 드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44년째 아날로그를 고집하던 컴맹이 SNS라니! 놀랍다 못해 기함할 노릇이지만 피곤에 잠긴 내 모습까지도 나는 참 좋다. 온전히 나를 위해 열정을 불태우며 파고드는 시간, 학창 시절 진로 고민할 때도 이렇게 불태운 적은 없었다. 분명 그 시절 이렇게 성실했다면 서울대에 갔을 거라며 중얼거리게 된다.
첫 수업 때 MBTI를 통해 성격을 분석했다. 다양한 질문을 통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나의 정체성과 하고 싶은 것, 잘하는 것을 찾아내기 위해서다. 그것을 글로 쓰고 PPT에 담아 핵심 키워드를 뽑아야 했다. 남편, 아이들 모두 빼고 오로지 나에 대한 것으로 채워야 한다. 숙제 제출을 못 한다고 해서 학점을 못 받는 것도 아니요,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닌데 나는 고민하고 질문하기를 밤새 이어 나갔다. 18년을 ‘가족’이라는 명사에 영혼을 갈아 넣어 살고 있었는데 그걸 빼고 나를 찾으라니! 일주일이나 내 리포트는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나의 심장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뛰고 있었다.
어느덧 3주가 지나가고 있었다. SNS 양성자 과정은 기초적인 구글 아이디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 홈페이지 제작, 디자인툴인 미리 캔버스를 활용한 썸네일 만드는 법, 사진 촬영을 통한 유튜버 제작 등 수업도 다양했다. 나는 그중 인스타그램에 가장 관심이 많아서 일상만 올리던 내 피드를 나답게 고쳐 나갔다. 경력 단절 여성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라 PPT로 자기소개서 만드는 법과 면접 코칭이 마지막 과정이었다. 1기부터 4기까지 총 200명 중 3명을 뽑아 상금 10만 원을, 1등에게는 전문가에게 자기소개서를 1:1 코칭받을 기회도 준다고 했다.
나는 미련하리만치 최선을 다했다. 18년 만에 아니 어쩌면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내가 주어가 되는 기회일 것만 같았다. 제일 큰 이유는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나도 어떤 것에 미칠 줄 아는 여자라는 존재감 말이다. 나는 3명 중 한 명으로 뽑혔다.
마지막 수업, 발표를 앞두고 있었다. 어떤 옷을 입고 갈지 고민이 됐다. 발표자답게 단정한 정장을 입을지 방구석 패셔니스타답게 쌈박한 옷을 입을지. 나는 찢어진 아이스진에 보라색 짧은 트위드 재킷을 입기로 결정했다. 트위드 재킷 안에 부드러운 실크 나시를 챙겨 입었는데 온몸을 감싸는 감촉이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작은 떨림들은 하이힐을 신고 허리를 세워 당당히 걸으며 흡수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함께 공부했던 선생님들은 “오늘도 역시!”라며 엄지 척을 날리셨다. 처음 보는 1기, 2기, 4기 선생님들의 힐끗거리는 시선에 어깨의 힘도 가벼워졌다.
스펙 좋은 두 분의 발표가 끝나고 내 차례가 되었다. 어제저녁 늦게까지 수정하고 연습했는데도 끝나고 나니 아쉬움이 남았다. 이제 드디어 끝이다. 100시간의 수업 동안 지각 한 번 하지 않았다. 숙제도 미루지 않고 제시간에 제출했다. 끈질긴 나의 근성이 빛을 보는 오늘이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랐다.
“1등은 김보현 선생님!”
인생에서 처음 1등이다. 갑자기 내 이름이 불리자 어리둥절했고 3기 선생님들은 우리 기수에서 1등이 나온 것에 기뻐하며 축하 인사를 전했다. 가족들이 제일 먼저 생각났다. 휴대전화를 꺼내 가족 톡방에 메시지를 띄웠다.
‘오늘 7시 최고집. 내가 쏜다!’
처음 느끼는 짜릿한 성취감에 심장이 뜨겁게 달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