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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아름 Oct 03. 2023

당연하지 않은 당연함

Adios,  고마웠어요!

여행의 묘미는 역시 사람이다. 음식, 문화, 예술, 웅장하고 아름다운 자연환경도 있지만 그래도 역시 사람이다. 사람 안에 문화도 음식도 예술도 다 들어있으니까... 사람이 없으면 하나님이라도 이 지구가 썰렁하고 쓸쓸하시겠지? 그만큼 사람만큼 아름다운 존재도 없다. 다시 쓰는 택리지를 집필하셨던 신정일 선생님은 한국의 온 땅을 두 발로 걷고 글을 쓰시면서 사람만이 다닐 수 있는 길을 안내하신다. 차가 갈 수 없는 길은 오토바이가, 오토바이도 못 가는 길은 자전거가, 자전거도 못 가는 길은 사람의 두 발만이 갈 수 있다고 늘상 말씀하셨다.  선생님을 따라 문경새잿길을 걸었던 기억이 난다. 사람만이 갈 수 있는 길, 여행도 그렇다. 사람만이 여행을 할 수 있고 그런 중에 여운으로 인연으로 남는 것도 사람이다. 


마지막 밤이다. 여정 중 1/3에 해당하는 닷새는 아팠지만 그래도 여정을 잘 마친 것 같다. 서비스부문에 종사한다고 해서 모두가 그렇게 친절할 수 없고, 또 사람 향기가 나는 것도 아니다.  마지막 저녁이라 May May와 교외에 나가기로 약속을 했는데, 시장단 모임이 급히 잡혀 VIP실에 차출되어 오늘 약속이 아쉽게도  어그러졌다. 밤 11시에나 업무가 마감되니 그 시간에 나갈데도 없고, 노는 나야 상관없다지만 내일도 출근해야 하는 메이를 불러낼 수도 없었다. 잠깐 짬을 내어 나온 메이는 아쉬움에 내 손을 부여잡고 얼굴에 부비대며 어쩔 줄을 몰라한다.  


리셉션의 Phu는 내가 몸살을 앓을 때, 여러 차례 방을 바꿔서라도 좀 더 편안한 방을 제공해 주었고 각종 수제 허브차를 몸살이 나을 때까지 직접 가져다주며 살뜰하게도 살펴주었다. Min은 아침마다 같은 자리에 앉아 식사하는 나를 기억하고는 매일같이 캐모마일티와 카푸치노, 수박 주스를 갖다 주었고, Phang은  내가  랩탑 삼매경에 빠져 점심시간이 지나도록 일을 하고 있으면 자리를 비워달라는 대신 따뜻한 물과 커피를  조용히 테이블 위에 놓고 갔다.  Bar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내가 로비에서 어슬렁거리거나 랩탑을 펼쳐 놓고 일을 하고 있으면 쿠키를 가져다주기도 했다. 돌아다니지도 않고 대부분의 시간을 호텔 죽순이로 지내는 내가 이들 눈에 어찌 비췄을지는 모른다.  다만, 나라는 사람이 호텔 죽순이보다는  인사성이 밝은 사람으로 각인된 듯하다. 머무는 기간 내내 경비아저씨건 풀을 매는 분이건 누구에게든 이곳에서 근무하는 분들에게 진심으로 인사를 건넸다. 아는 얼굴이라고 어찌나들 반가워하던지.. 아마도 그것이 고마웠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사람이 사람을 존중한다는 느낌, 그런 것 말이다.


내일 떠난다고 하니 Thu 가 직접 만들었다며 튤립꽃다발을 선물해 준다. 나를 주려고 일부러 손뜨개를 해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감동이다. 호텔에서 모든 손님들에게 주는 기념품도 아니고, 그녀가 직접 만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꽃다발이다. 꽃향기 대신 뜨개실에서 향수냄새가 난다. 그저 눈으로 얼굴로 인사하며 웃어준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는데도 참 과분한 선물이다. 감사하고 행복하다. 




메이와의 저녁식사가 어글러진 마당에 하루종일 몸살로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 호텔 직원들과 피자를 먹기로 했다.  셰프의 셰프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레스토랑에 피자 세 판을 주문했다. 양이 많다고 했는데 생각보다는 적다. 그래도 리셉션과 FNB에 가서 그동안 고마웠던 마음을 피자 한 조각으로라도 전했다. 지극히 작은 나눔을 환하게 받아준 그들이 고맙다. FNB셰프는 자기가 이 지역 최고의 셰프라면서도 OO에서 주문했다고 하니 정말 좋아해 준다. 업무의 고단함으로 얼굴이 굳어버린 것만 같았는데, 그가 웃다니 피자 한 조각이 큰 역할을 했다. 


언어가 잘 통하지 않아도, 물론 내 돈 내고 머물렀다고는 하지만 이들 덕분에 편히 먹고 편히 쉬었다 간다며 인사를 하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할 일을 다 한 것처럼 말이다.  그들의 환한 웃음이 내 마음에 따뜻한 불을 지핀다.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조차도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겠다는 겸허한 마음이 더욱 드는 밤이다. 다음에 올 때는 꼭 작은 선물이라도 준비해 와야지 하는 소박한 마음도 같이 말이다. 


감사했습니다. 다시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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