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이 될 수도 있어
”고춧가루 월매여?“
”워찌 그리 비싸?“
”뭐 먹을텨?“
”하하하, 내가 해장국 사줄게“
말풍선들이 쉴 새 없이 날아다닌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고 계절은 달력이 말한다. 올해가 특히 그랬다. 이른 아침이나 밤이 되면 제법 선선한 바람이 얼굴에 살짝 스쳐가고, 들판의 노릇노릇 익어가는 벼가 ‘나 가을이에요!’라고 해서 가을이라고 말한다. 더울까 추울까 이러한들 저러한들 어떠하겠는가. 그래도 하루 중 짬짬이 시원한 바람도 불어주고, 하늘은 청명하니 그래도 행복한 계절이다.
도시에서는 아침 7시에 문을 여는 카페가 상당수 있다. 급한대로 업무자료를 만들고 화장과 아침식사도 모두 해결할 수 있다. 사람이 거의 없어 좋고 집중해서 ‘쌈박하게’ 일하기에도 ‘딱’이다. 적당한 카페인, 약간의 생동감, 햇살 가득한 아침, 아무도 없는 넓은 공간에서 오는 충만함은 아침 7시라서 가능하다. 유동인구가 많으니 7시에도 영업이 되지만, 소도시는 편의점 말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소도시에도 대형 카페들이 진출을 하면서 드디어 금산에도 대형 카페가 몇 들어섰다. 오가며 눈으로만 익혔던 카페를 들어가보니 ‘참 좋다!’. ‘좋다’는 정말 좋은 단어다. 모든게 다 들어있는 우주와 같은 단어다. 정말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다. 인테리어도 커피맛도 모두 동일하다. 랩탑을 작업할 수 있게 콘센트도 촘촘히 설치되어 있다. 늘 다니던 카페처럼 생각없이 들어왔는데 다르다.
사람이 다르다.
도시에서는 직장인과 학생들이 주로 차지하는데 이곳은 어르신들과 농사를 짓다 커피 한잔 하러 오신 분들이 꽤 보인다. 대도시와 소도시를 차림새로 비교하기는 그렇지만 비교적 편안한 옷차림과 작업복도 보인다. 어르신들은 귀가 잘 안들리시는지 참 큰 소리로 대화를 하신다. 가만히 있어도 대화 내용이 귀에 쏙쏙 들린다. 명절에 햇고추를 빻아서 김치를 담았는데 맛이 좋아서 애들한테 몇 근씩 나눠줬단다가 시작이었다. 어르신은 휴대폰을 들더니 통화를 상당히 오래 걸죽하게 하신다.
‘고추 한근에 월매지? 올해 만히 수확했다면서“
”응 추석에 먹을것만 조금 빻았는데 이제 빻아야지. 얼마나 필요햐?“
어떤 사이인지는 몰라도 고추수확과 빻은 고춧가루 이야기로 한참 동안 통화를 하신다. 일부러 들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전화를 하는 사람이나 휴대폰 너머 어르신 목소리까지 아주 정확하게 들린다. 그러더니 한창 있다 고춧가루라면 검정 비닐봉투를 한 어르신이 가져다 주고 사라지신다. 두 어르신이 양많다고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예상치 못한 풍경이다.
한편에선 할아버지가 아이스크림과 샌드위치를 주문하시고 오니, 할머니 얼굴에 웃음이 펴진다.
’내가 해장국 한턱 쏠게”
“워찌, 이제 왔어? 배추 모종 심었어?”
“아이고 뭔 모종이여. 농사 그만 해야지”
그렇다. 장소를 만들어가는 것은 사람이다. 그 도시에 맞는 장소성과 아우라가 우러나는 법이다. 같은 인테리어, 같은 공간, 같은 음료다. 그런데 느낌이 이리도 다르다. 도시에서 공간은 그 사용자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호텔에 입점해있는 카페라면 웬지 밭에서 일하다 작업복 차림으로 가기가 꺼려질 것이다. 큰소리로 떠들거나 있는대로 볼륨을 높여 통화도 하지 않을 것이다. 관점에 따라 매너없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누구도 인상쓰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없기도 하지만,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프로토콜이자 문화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 귀가 잘 들리지 않으니 서로 목소리가 커진다. 젊은 사람들은 싫어할지도 모른다. 시끄럽다고. 그러나 이들에게는 그저 일상의 대화일뿐이니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한 시간 남짓 카페에 앉아 이 광경을 지켜보며 색다른 이 풍광이 좋다. 농촌답게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포도상자, 의자 옆에 놓은 고춧가루 봉다리. 어디에서 이런 것을 볼 수 있겠는가. 나는 지금 이곳에서만 마실 수 있는 커피를 마시고 있다. 포도, 고춧가루, 배추모종, 그리고 해장국. 내가 이 고급진 카페에서 주워 담은 키워드다. 어르신들의 큰 목청이 곁들어진 금산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일명 ‘금카치노’다. 경운기를 타고 커피를 마시러 올 수도 있다. 강남에서는 경운기를 보기도 어렵거니와 그런 특별한 서비스를 누릴 수도 없다. 이 곳에서는 가능하다. 어느 동네 앞에 들어선 대형 카페 앞에서 본 것이다.
‘ 이 것은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절로 말이 나왔다. 분명 생긴 것은 세면대인데 손을 씻으려면 쪼그려 앉아야 한다. 왜 그런고 보니, 맨발로 걷는 사람들을 위해 세족대를 설치한 것이다. 볼품은 없지만 고객을 배려한 마음만큼은 일품이다. 그 곳에서 잘 어울리는 시설이다.
낭만이라는 것이 멀리에 있지 않다. 우리 삶의 일상을 자세히 뜯어보면 그 곳만의 낭만이 있다. 아무리 닮으려해도 본질이 다르니 서울의 대형카페를 갖다놔도 느낌은 영판 다르다. 우리의 도시도 그렇다. 브랜딩이나 도시재생이니 도시디자인 사업을 하며 타 지자체, 더 나아가서는 해외 주요도시를 벤치마킹하지만 도시의 사용자가 다르기에 아우라가 다르다. 분명 같은 옷인데 어찌나 느낌이 다른지. 그래서 낭만도시라는 것은 인프라보다도 그 도시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잘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공간은 사용자를 차별한다. 사용자의 특성을 녹여내는 공간이 매력적인 곳이다. 그곳에 우리가 찾는 낭만이 있다. 도시의 낭만이 거창한데 있지 않다. 삶이 잘 녹아질 수 있게 섬세하게 배려한 공간이 있으면 된다. 낭만은 인프라보다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