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 화원에 오면 그저 내 세상이라는 생각뿐이었다. 화원으로 들어서는 바로 옆. 옷이 잔뜩 걸려있는 옷걸이 행거는 언니가 나를 때리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발로 세게 짓밟히고 주먹으로 얼굴을 맞았다. 그러나 화원으로 들어서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내 세상이라는 생각뿐이었다. 페인트가 칠해진 벽에 살짝 핀 곰팡이 냄새는 친근하기만 했다. 그 냄새를 다시 맡을 수는 없지만, 그건 마치 에어컨을 틀면 시원한 바람과 함께 느껴지는 쾌적한 곰팡이 냄새와 비슷했다.
내 마음에 쏙 드는 녀석들로만 줄지어진 화분 행렬은 내 마음을 뿌듯하게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봐도 그때처럼 내 마음에 쏙 들며, 마치 내 것이고, 나와 만날 운명 같았던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화분 행렬에는 내가 좋아하는 고급스럽고 세련된 히아신스가 있었다.
베란다 은박 돗자리 위, 옆으로 돌아누우면 보이는 히아신스는 그 당시 4,000원이나 되는 수경재배 식물이었다. 히아신스는 수경재배와 흙에서 키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집 근처 화원에 가보니 수경재배 히아신스가 흙에 심어진 것보다 1,000원이나 비쌌다. 일주일에 얼마씩 용돈을 받아쓰던 어린아이였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어린 시절, 체육시간이 끝나고 다시 반으로 돌아갔을 때 맡은 그 향기는 잊을 수 없었다. 교실에서 맡았던 향긋한 히아신스는 수경재배한 녀석이었고 나도 똑같이 물에 담긴 녀석을 데려왔다. 얼마전 교실에서 고급스러운 향기를 내는 히아신스에 매료된 나는 히아신스 주인이 궁금해졌고 그와 똑같이 비싼 녀석으로 골랐다.
양파처럼 생긴 몸뚱이에 어떻게 이렇게 많은 꽃봉오리가 맺히며 이 좋은 향을 내는 걸까 마냥 신기했다. 하지만 히아신스를 처음 키워보는 나는 물을 언제 갈아줘야 하는지, 어떻게 관리해 줘야 하는지 몰랐다. 핑크와 보라색을 번갈아 내는 단단한 꽃봉오리는 있었는지도 모르게 금방 시들어버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뿌리가 담겨있는 물은 진득해졌고 양파 썩은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교실과 나의 코 끝을 장악했던 엄청난 향기는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냄새나는 썩은 히아신스를 살려보겠다고 썩은 양파 같은 둥근 뿌리 기둥을 조금씩 뜯어냈지만, 그것은 히아신스를 더 죽게 만들 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내가 만들어낸 백일몽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