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문화강시' 비전의 구조적 한계와 문화자치를 위한 과제
인천시가 최근 ‘문화적 상상으로 도시를 실현하는 문화강시(文化強市) 인천’을 2026년 핵심 비전으로 제시했다. 문화·관광·스포츠·국제교류를 아우르는 이 계획은 다섯가지 분야로 구성되어 있다. 생활문화 접근성을 확대하기 위한 천원 문화티켓, 청년문화예술패스, 문화누리카드 강화와 더불어 뮤지엄파크·신규 도서관 등 문화 인프라 구축이 포함되고, 개항장 중심의 제물포 르네상스와 같은 지역브랜드 재구축 전략도 제시됐다. 여기에 AI·로봇 융합을 중심으로 하는 기술 기반 미래예술 정책, 인천유나이티드 프로젝트와 대규모 마라톤 대회를 앞세운 스포츠도시 구상, 그리고 국제기구 협력·재외동포 교류·외국인주민 정착지원·MICE 산업 육성 등 글로벌 네트워크 전략이 더해진다.
정책의 범위와 규모는 인상적이다. 그러나 이를 문화자치와 문화민주주의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몇가지 질문들이 떠오른다. 이 정책의 중심에 시민이 있는가? 시민의 문화적 권리와 자치 구조는 설계되어 있는가? 도시의 문화적 미래를 결정하는 과정에 시민은 어떤 방식으로 참여하는가?
먼저 생활문화 정책을 보자. 천원 문화티켓과 각종 지원 패스는 문화 접근성을 높이는 데 분명 효과적이다. 그러나 이는 본질적으로 소비 지원에 머문다. 시민은 공연장을 방문해 문화를 소비하는 관람객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문화민주주의가 말하는 시민은 소비자가 아니라, 문화를 스스로 생산하고 구성하는 주체다. 하지만 인천시 정책에서 시민의 생산적 역할을 강화하는 장치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지역 문화공동체와 소규모 창작주체—생활문화 생태계의 핵심 축—역시 정책에서 배제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시민의 문화적 삶은 공연장·전시장 향유라는 제한된 소비로 축소되고, 자율성과 창의성은 발전할 수 없다.
두 번째로 제물포 르네상스를 살펴보면, 가장 두드러지는 흐름은 장소성 없는 공간 개발이다. 개항장 일대 역사문화자산을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지만 지역 주민, 예술인, 생활문화 활동가 등 지역사회가 정책 설계와 실행에 참여하는 구조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개항장은 인천의 정체성, 이주와 항구의 기억, 공동체의 역사적 층위가 겹쳐 있는 복합적 장소다. 이러한 장소성을 외형적 시설 확충과 관광 프로그램 설계만으로 담아낼 수는 없다. 시민과 함께 논의하고 재구성하는 공공적 과정이 결여되면, 지역성은 관광 브랜드라는 소비 가능한 이미지로 축소된다.
세 번째로 미래예술 정책을 보면 문제는 더욱 선명해진다. AI와 로봇, 디지털 콘텐츠 등 기술 기반 예술은 시대 흐름에 부합하지만, 기술 중심성이 지나치게 강조될 경우 예술의 주체인 시민과 지역 창작자의 자리를 밀어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특히 인천 예술 생태계가 겪고 있는 구조적 문제—창작 공간 부족, 예술노동의 불안정, 지역 기반 활동의 취약성—은 정작 정책에서 다뤄지지 않는다. 미래예술은 기술의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민의 창작 능력과 비판적 문화감수성이 강화될 때 비로소 성립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정책은 기술을 미래의 중심으로, 시민을 소비자로 배치하는 구조를 강화한다.
스포츠·관광·국제교류 정책은 더욱 명확하게 도시 마케팅에 방점이 찍혀 있다. 프로축구단 경기력 향상과 대규모 마라톤 개최, 국제행사 유치는 도시의 외형적 성과를 보여주지만, 이러한 사업들이 시민의 일상과 지역사회에 어떤 실질적 변화와 의미를 만들어낼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충분하지 않다. 마이스 산업 역시 지역경제 활성화에는 도움이 될 수 있으나, 지역사회와 어떤 방식으로 연계하고 주민 참여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외국인주민·이주민 정책 또한 지역사회와의 문화적 관계 형성이나 공동체적 연결보다는 행정편의 중심의 지원에 머무르고 있다.
종합하자면 이번 인천시 정책은 문화·관광·외교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도시 경쟁력을 높이려는 전략적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문화자치의 핵심 가치—자율성, 참여성, 지역성, 공공성, 다양성—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 화려한 비전과 대규모 사업에도 불구하고 시민은 정책의 설계자도 운영자도, 의미를 구성하는 주체도 아니다. 그저 관람객, 정책 수혜자, 관광객 유입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수준에 머문다.
인천이 ‘문화강시’를 지향한다면, 사업의 양적 확대보다 문화자치의 관점에서 전체 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몇 가지 변화 방향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첫째, 시민 참여에 기반한 문화 정책 추진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시민을 정책의 수혜자가 아니라 기획과 운영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주체로 세울 수 있도록 제도를 재정비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둘째, 지역예술생태계 강화를 핵심 과제로 설정해야 한다. 기술 중심의 미래예술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지역 예술인의 노동 환경과 창작 공간, 활동 기반을 안정적으로 구축하는 일이다.
셋째, 원도심 재생은 관광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시민의 장소성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개항장의 역사와 기억을 지역 주민과 예술가, 시민단체가 함께 재해석하며 공공적 의미를 재구성하는 과정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넷째, 외국인주민·이주민·재외동포 정책은 행정적 지원을 넘어 지역사회와 연결된 문화적 공동체를 형성하는 관점에서 설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양한 참여 구조와 교류 공간을 확장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스포츠·관광·마이스 전략은 도시 규모를 키우는 성장 중심 접근이 아니라, 시민의 일상과 지역 공동체를 풍요롭게 만드는 방향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결국 도시의 경쟁력은 외형적 확장이 아니라 시민의 삶이 얼마나 깊고 넓게 확장되는가에 달려 있다.
문화도시는 시민이 스스로 문화를 만들고 공유하며 그 과정에서 공동체가 성장하는 도시여야 한다. 인천이 진정으로 문화강시를 실현하고자 한다면, 이제는 도시의 외형보다 시민의 문화적 권리를 중심에 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 유정복 시장, 시민과 세계가 함께 만드는 문화관광도시 인천 비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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