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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메이 Aug 20. 2016

석모도(3)

작은 비닐봉지 가득 담겨 있던 튀김을 다 먹고 나자, 여자는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진다.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있고, 아무런 목적지도 할 일도 만날 사람도 없는 여자는 잠깐 멍하니 서 있다가, 할 일이 생각났다는 듯 기름기 묻은 손가락을 급히 바지에 문지른다. 쑥색 7부 바지는 금새 기름얼룩으로 얼룩덜룩하다. 찬찬히 고개를 들던 여자의 눈에 동그란 지붕이 들어온다. 자세히 보니 작은 십자가가 지붕에 세워져 있다. 길 건너편으로 건너가서 살펴보는 여자의 눈에 ‘성모마리아 성당’이란 팻말이 들어온다. 외양만큼이나 소박한 성당이다. 문이 잠겨 있는 안쪽에는 20개의 의자가 가지런히 놓여 있고, 본당 옆에 아주 작은 종탑이 서 있다. 잔디밭 한쪽에는 번호판이 떨어져나간 차 한대가 오래도록 방치된 느낌으로 세워져 있고, 그 맞은편에는 고추 등을 심어둔 밭이 내리는 비에 하염없이 젖고 있다. 성당 오른편 소나무로 에워싸고 있는 집의 주인이 경작하는 밭으로 보인다. 여자는 성당 앞에 마련된 작은 수돗가에 쭈그리고 앉아 오래오래 손을 씻는다. 아직 남아있던 튀김의 기름기가 미끌거리며 씻겨내려간다. 손을 다 씻은 여자가 할 일을 마쳤다는 듯 일어나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우산을 쓰고 위태롭게 걸어가는 여자를 지켜보는 것은 어디서 나타난 길고양이 녀석 한 마리 뿐이다. 


걸어가던 여자의 눈에 소금창고가 보였다. 커다란 거미줄들이 여기저기 자기 구역임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림잡아도 10개가 넘는 거미줄이 창고마다 붙어 있다. 사람이 떠나고 얼마나 시간이 지나버린 것일까. 한 때 염전이었던 곳은 이미 황폐화되어 있었고 적당한 간격으로 지어져 있는 소금창고들은 허물어져가고 있었다. 누군가 세게 한 번 밀기만 하면 와르르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워보였다. 갈라진 나무 틈 사이로 굳어져버린 소금 언덕과 국산 천일염 봉지가 널부러져 있었다. 쓰러져가는 구조물들에는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는 듯 LPG가스통이 건물 구석마다 하나씩 줄로 이어져 있었다. 묶여 있던 개가 인기척을 느끼고 짖기 시작하자, 아낙네 하나가 경계어린 눈초리로 여자를 바라봤다. 활짝 열린 문을 통해 고단한 살림살이가 한눈에 들어왔다. 군데군데 고인 물에서 벌레가 날고, 정돈되지 않은 풀이 무성한 곳이었다. 장마가 지나가고 나면 모기가 들끓고 해는 내리쬐 살기 어려운 곳일 것이다. 그제서야 골프장으로 바뀐다는 안내 현수막이 여자의 눈에 들어왔다. 염전의 주인은 오래전에 떠났지만, 그곳에서 가진 것 없이 일했던 사람들은 갈 곳이 없어 이곳에 남았으리라. 생각에 잠긴 여자를 보고 할아버지 한 명이 작업하던 연장을 내려놓고 소리쳤다. “여기까지 뭐 하러 왔어? 염전은 이제 안해요. 안한다구!” 검게 그을린 그의 얼굴이 노기와 짜증이 섞인 말로 일그러졌다. 애써 다독이고 있던 상처를 건드렸을 때 나오는 표정이었다. 아낙네도 동조하는 표정으로 서서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 여자에게 꽂혀 있었다. 여자는 자신이 소금을 찾아 온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종종걸음으로 도망치듯 나오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뛰어가던 여자는 소금창고가 멀어지기 시작하자 왈칵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맨발에 신고 나온 샌들은 이미 진흙과 비바람에 더러워진 상태였고, 발가락은 흉하게 불어 있었다. 때마침 세게 불어온 바람이 여자의 우산을 뒤집어버렸다. 뒤집힌 우산을 수습할 정신도 없이, 우산을 놓쳐버린 여자는 아예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여자의 등 너머로 개짖는 소리가 계속 들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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