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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문화예술시설 통합법인 추진 실패를 되짚으며

안 되면 말고, 잊히면 그만인가

by 손동혁

2022년 말, 인천시는 문화예술시설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강화하겠다며 ‘문화예술시설 통합 재단법인’ 설립을 추진했다. 인천문화예술회관(인천광역시), 아트센터인천(인천경제자유구역청), 트라이보울(인천문화재단)이라는 서로 다른 주체가 운영중인 공연장을 하나의 재단 아래 통합해 기획력과 행정력을 높이겠다는 구상이었다.


이 계획은 가칭 ‘재단법인 인천아트센터’로 구체화되었다. 타당성 용역이 발주되고, 인력구성과 조직도까지 제시됐다. 음악 사업팀, 공연 사업팀, 무대 시설팀 등 72명의 전문 인력이 배치되는 운영 모델이 제안됐고, 인천시는 “향후 5년간 약 54억 원의 수지 개선 효과”를 강조하며 정책의 당위성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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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인천광역시 홈페이지


하지만 그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2024년 행정안전부는 재단 설립안에 대해 ‘재검토’ 의견을 내며 제동을 걸었다. 기존 인천문화재단과의 기능 중복, 수익성 부족, 유사 재단 설립에 대한 타당성 부족 등이 주된 사유였다. 이후 인천시는 별다른 해명 없이 방향을 바꿨다. 새롭게 제시된 대안은 인천문화재단 내에 ‘인천아트센터본부’를 설치해 세 시설을 통합 운영하는 방식이었다. 나아가 인천문화재단의 명칭을 ‘인천문화예술진흥원’으로 변경하는 방안까지 흘러나왔다.


그러나 정책 전환의 배경이나 시민과 예술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담당 부서의 입장 표명이나 사과는 커녕, 공식적인 정책 종료 선언도 없었다. 결국 이 사업은 원점으로 돌아갔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이 사례는 인천시가 문화정책을 대하는 태도, 정책 기획의 방식, 그리고 거버넌스 구조의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다. 명분만 앞세운 채 실질적인 비전은 부재했고, 시민과 예술인의 참여 없이 추진되었으며, 실패 이후에는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 시스템이 반복되었다.


인천시가 내세운 명분은 분명했다. 순환보직 중심의 공무원 운영 체계로는 전문성 확보가 어렵고, 기관 간 중복 운영은 비효율적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통합 운영이 실제로 시민의 문화 향유에 어떤 긍정적 변화를 줄 것인지, 각 공연장의 고유한 정체성과 공간의 장소성은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부족했다. 예술 생태계는 단순히 ‘효율성’이라는 행정 논리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각 공연장이 어떤 철학으로 운영되어야 하며, 어떤 장르와 커뮤니티를 형성해 왔는지에 대한 맥락 없이 통합을 논한 것은, 결국 예산 중심의 조직개편으로 전락했다. 지역 문화정책 전반이 '효율성'과 '조직개편'이라는 프레임에 갇혀있을 때, 시민의 문화권과 예술 생태계의 다양성은 뒷순위로 밀려난다. 문화정책은 사람과 이야기, 감정과 공동체를 엮는 정책이다. 예산과 조직도만으로는 문화의 본질을 다룰 수 없다.


시민 의견은 필요에 따라 선택적으로 이용되었다. 인천시는 초기 타당성 용역 당시 “75% 이상의 시민이 찬성했다”는 조사 결과를 내세워 추진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후 정책 방향을 전환하면서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새로운 설문조사나 의견 수렴 절차도 없었다. 마치 ‘한 번 동의했으니 끝’이라는 태도로, 시민을 정책 수립의 동반자가 아닌 수동적인 동의자로 취급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 정책 실패가 공식적으로 정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수천만 원의 예산이 투입됐고, 공공기관 설립 절차가 진행된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공식 보고서나 자체 평가 자료조차 확인되지 않는다.


정책은 실패할 수 있다. 하지만 책임 있는 행정은 실패를 숨기지 않는다. 어떤 한계가 있었고, 무엇을 놓쳤으며, 다음에는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지를 분석하고 시민과 공유해야 한다. 그 과정을 생략하면 실패는 교훈이 아닌 기억되지 않는 실수로 휘발된다. 그리고 동일한 오류는 다른 이름으로 반복된다.


지금 이 사업은 언론에서도 다루지 않고, 담당 부서도 더는 언급하지 않는다. 마치 ‘조용히 지나간 과거’가 된 듯하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가장 위험하다. 기억되지 않은 정책은 평가받을 수 없고, 평가받지 않은 실패는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


이제라도 인천시는 이번 재단 설립 추진 과정을 공식적으로 정리해야 한다. 왜 추진했고, 무엇이 문제였으며, 어떤 의견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시민과 예술인에게 솔직하게 공유해야 한다. 그것이 정책 실패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이며, 다음 문화정책을 위한 공공의 기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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