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행복하게 할 것 같은 사건들에 대한 재평가

우리는 행복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by 김상완

우리는 언제 행복을 느끼는 것일까? 누구나 한 번 이상은 스스로 또는 주변 사람들에게 던졌던 질문일 것이다. 우리는 자신 있게 ‘나는 오늘 행복했어.’, ‘어제보단 오늘이 더 행복한 것 같아.’, ‘나는 이럴 때 행복해.’ 와 같은 말을 내뱉는다. 이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각자가 생각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어떨 때 행복을 느끼는 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대답이 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행복이라는 말은 우리가 하루를 마무리하며 그 날을 평가할 때, 과거, 지금 또는 미래의 우리의 감정에 대해 묘사할 때 등 일상 속에서 빈번히 사용되는 용어 중 하나이다. 하지만 우리는 행복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우연히 듣게 된 ‘행복의 과학’이라는 대학 강의의 첫 시간에 깨닫게 된 사실이다. 행복에 관한 퀴즈를 풀고 그 결과를 보았을 때의 당혹감은 아직도 생생하다. 평소 행복에 대해 많이 고민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한 나에게 10문제 중 단 두 문제만을 맞췄을 때의 당혹감은 금방 오기로 바뀌었다. ‘도대체 행복에 대해 무엇을 이토록 잘못 알고 있는 것일까’라는 오기가 생겼고 그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찾아 더 행복해지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 이 글은 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과 결과를, ‘나를 행복하게 해줄 것 같은 세가지 사건’에 대한 재평가와 재분석을 통해 설명하고자 한다.

세 가지 사건 중 첫 번째는 목표의 달성이다.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기와 같은 일상적이고 지속되는 목표보단, 수능에서 만점 받기와 같은 오랜 기간 노력했고 순간적인 목표의 달성을 의미한다. 21살인 나에게 그러한 목표는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는 것이었다. 3년 간의 고등학교 생활을 돌이켜보면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대학에 대한 목표를 잊지 않고 살았다. 새벽에 일어나 새벽까지 공부하면서도 끝까지 목표를 위해 노력할 수 있었던 것은 원하는 대학에 가기만 하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지금 힘들어야 나중에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에 고등학생 시절 나의 하루하루를 목표를 위해 희생해가며 노력했고 원하던 대학교에 입학했다. 나는 행복했고 목표를 달성하면 행복해진다는 믿음은 더 커졌다. 하지만 ‘행복의 과학’ 수업에서는 나의 이러한 경험과 목표를 위해 오늘의 행복을 희생해도 된다는 가치관을 다르게 평가했다. 물론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대신 그러한 행복에 대해 더 면밀히 분석했고 과연 오랜 기간 동안의 행복을 희생할 만한 가치가 있는 행복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

“Happiness is the frequency, not the intensity, of positive affect.” 미국의 심리학자 에드 디너의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한 연구는 나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결국 한 사람이 행복한지 아닌지, 그 사람의 행복 수준을 결정 짓는 것은 긍정적인 정서의 강도가 아닌 빈도라는 것이다. 이 같은 행복에 대한 진술은 내가 이제껏 생각해오던 행복의 조건과 달랐다. 행복의 강도를 위해 빈도를 희생해 온 나에게 이 같은 설명은 단숨에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긍정적인 정서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강도가 높은 긍정적인 정서는 아주 희박한 확률로 발생한다. 희박한 확률로 강도 높은 긍정적인 정서가 발생하더라도 인간의 habituation 이란 특성으로 인해 그러한 정서에 금세 익숙해진다. 아무리 좋은 자극이나 감정도 유지된 채로 시간이 지나면 둔감 해지기에 오랜 시간을 희생에 달성한 목표가 주는 커다란 만족감, 성취감 등의 긍정적인 정서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따라서 먼 미래의 거대한 목표를 이룸으로써 강도 높은 행복을 쫓는 것이 아닌 오늘과 지금에 집중하며 행복의 빈도를 높이도록 노력하는 것이 행복한 삶을 사는데 유용하다는 것이다. 수업을 통해 이러한 행복의 특성을 배운 후 내 삶을 회고해보았다. 고대하던 대학을 합격했을 때를 돌이켜보면 정말 행복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 감정이 유지되는가, 아직도 그때의 행복이 삶에 영향을 미치는가 물어보면 부정에 가까운 대답을 할 것 같다. 최근에 언제 행복했는지 생각해보면,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원하던 옷을 샀을 때, 가족들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을 때와 같은 사소하고 일상적인 순간들이 떠오른다.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게 되는 건 내 하루하루를 채우는 작고 일상적인 행복들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껏 나에게 행복하기 위한 조건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은 목표의 달성이었으나 ‘행복의 과학’수업을 통해 becoming 보다 being에 집중하는 삶이 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임을 깨달으며 의미 있는 생각과 가치관의 변화가 있었다.

내가 생각한 나를 행복하게 해줄 것 같은 두 번째 사건은 부정적인 사건과 정서의 부재이다. 사건이기 보다는 조건이라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나는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고 슬프거나 힘든 부정적인 정서를 느끼지 않는 상태가 행복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속담 중에 ‘무소식이 희소식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부정적인 사건이 부재하는 것 만으로도 그 자체가 좋은 사건이고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정말 단지 나쁜 일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자체가 좋은 일이 되고, 우리는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까?

부정적인 사건과 정서의 부재만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주장은 부정적인 사건과 정서의 부재가 행복을 유발하는 긍정적인 사건과 정서의 기능을 대체할 수 있다는 근거가 필요하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 온 행복에 관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그러한 근거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결론이다. 행복에 관한 연구의 역사에서 중요한 변곡점이 되는 사건은 이전에 주목받아 오던 소극적인 행복관의 결함을 찾은 것이다. 기존의 소극적인 행복관에 따르면 한 사람의 부정적인 정서에 대한 논의만으로 그 사람의 행복의 수준에 대해 연구하고 논의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이러한 행복관이 잘못되었음을 긍정적인 정서와 부정적인 정서 간의 상관계수를 분석하며 파악했다. 그 결과 긍정적인 정서와 부정적인 정서는 상관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independent 한 변수라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이러한 결과가 함의 하는 바는 결국 부정적인 정서에 대한 논의만으로는 행복의 연구가 불가능하며, 부정적인 정서가 부재하는 것 만으로 그 사람이 행복하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심리학자 Watson은 하루동안 한 사람이 느끼는 긍정적인 정서와 부정적인 정서 간의 움직임을 조사했다. 결과적으로 긍정적인 정서는 아침부터 낮까지 증가하다 밤이 됨에 따라 감소한 반면 부정적인 정서는 하루 종일 거의 일정한 수준을 보였다. 이와 같은 연구결과는 단순히 긍정적인 정서와 부정적인 정서가 독립적이다 라는 결과 외에도 긍정적인 정서와 부정적인 정서가 수행하는 기능이 다르다는 것을 시사한다. 인류의 역사를 미루어 보았을 때 우리를 energize하고 동기부여하는 것은 긍정적인 정서의 역할이며 불안함 등을 느끼며 우리의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알람 시스템과 같은 역할은 부정적인 정서가 담당한다. 결국 긍정적인 정서와 부정적인 정서의 기능은 질적으로 다르며,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부정적인 정서의 부재가 긍정적인 정서의 기능을 대체할 수 없으며, 내가 생각했던 바와 달리 부정적인 정서가 없다는 것 만으로 행복하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은 다르다. 조금 덜 뜨겁다고 차가운 것이 되지 않으며, 덜 차갑다고 그게 뜨거운 것이 되지 않는다. 긍정적인 정서와 부정적인 정서도 이와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내가 이제껏 부정적인 사건이나 정서만 없으면 행복하다 라는 소극적인 행복관을 갖고 살아온 것은 아무래도 행복이 달성하기 어려운 감정이라는 생각에 스스로 행복에 대한 진입장벽을 억지로 낮추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나는 간절히 바라던 목표를 이루는 것과 같은 강렬한 사건들 만이 진정한 행복을 가져온다고 생각했고 그러한 사건들은 자주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행복에 대한 범위를 넓히지 않으면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행복의 과학 수업을 통해 내가 행복에 대해 잘못 생각해 왔음을 깨닫았다. 그러면서도 행복은 힘들고 우울한 부정적인 정서가 있을 때도 생길 수 있는 감정이라는 깨달음에 위로와 희망을 받았다. 행복한 사람이라고 부정적인 정서를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니고 부정적인 정서를 많이 느끼는 사람이라도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껏 안 좋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는데 급급하고 부정적인 사건의 부재만으로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부터는 행복관의 범위를 넓혀 무소식이 아닌 희소식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나 스스로가 남들보다 더 행복하고 우월하다는 생각이 드는 사건이 발생할 때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비판하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껏 살아온 삶을 살아보면 그렇게 살아온 것 같다. 시험에서 좋은 등급을 받으려면 남들보다 더 좋은 점수를 받아야만 했고 대회에서 수상하려면 경쟁자들보다 더 뛰어난 기량을 발휘해야만 했다. 시험점수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주변 친구들보다 내가 더 잘 쳤을 때면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내가 남들보다 우월함을 입증할 때면 기쁨과 행복의 감정을 느끼고 반대로 남들이 내가 갖지 못하는 것을 얻어 행복할 때면 우울하고 질투의 감정을 많이 느끼며 살아왔다. 하지만 종종 이러한 행복이 진정한 행복인지 의문이 들 때가 많았다. 친한 친구의 좋은 일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지 못하고, 남들이 항상 나보다 못했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사는 내 모습이 측은하게 여겨졌다. 그런 나에게 ‘행복의 과학’ 수업은 이러한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마음과 사건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않을 것이라는 가르침음을 주며 마음의 짐을 덜어주었다.

제로 섬(zero sum)은 게임이나 경제 이론에서 여러 사람이 서로 영향을 받는 상황에서 모든 이득의 총합이 항상 제로 또는 그 상태를 말한다. 심리학자 Koo와 Suh는 이러한 제로 섬의 개념을 행복에 대해 연구하는데 이용했다. 행복이 제로 섬의 개념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행복은 유한하고 한정된 양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남들이 행복을 가져간 만큼, 남들이 행복한 만큼 내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의 양은 줄어든다고 믿는다. 마치 좋은 학점을 받기 위해 경쟁하는 것처럼 행복도 경쟁의 차원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행복에 대해 이러한 믿음을 BIFAH(Belief in Fixed Amount of Happiness)라 규정하고 높은BIFAH성향과 행복의 관계에 대해 연구한 결과, 신경증과 외향성의 통제 하에서 BIFAH 성향이 높을 수록 느끼는 삶의 만족과 행복감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행복이 한정된 개념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믿음이 높은 사람들은 삶의 만족도와 행복감이 낮다는 것이다. Lyubomirsky와 Ross의 연구에 따르면 다른 사람들의 행복 때문에 우울해 하며 다른 사람들의 실패를 통해 만족을 느끼는 것은 행복을 누리기 위한 형편없는 처방법이다. 행복을 위한 더 나은 처방법은 다른 사람의 성공을 인정하며 질투하지 않고 자신의 결과에 초점을 두는 것이다. 또한 대니얼 길버트의 저서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를 보면 행복은 결코 비교 가능한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서로 다른 사람의 주관적 경험의 유사성을 정확하게 판별하는 방법은 불가능하기에 ‘내가 남들보다 더 행복 해야 해’와 같은 생각은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결국 행복은 남과 경쟁할 개념도 아니며 남들과 그 수준을 비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입을 모아 ‘행복해지고 싶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 라 말한다. 행복에 대해서 진정 우리는 그리고 나는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행복의 정의부터 비교 가능성, 빈도와 강도가 주는 영향에 대해 깊은 고민없이 삶의 동력으로 행복을 외치는 우리들은 진정 행복해질 수 있을까. 나를 행복하게 해줄 것 같은 사건들은 사실 대부분 나의 행복에 큰 관여를 하고 있지 않았고 오히려 나의 행복을 방해함을 깨닫고 선 이러한 질문에 아직도 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나에게 묻고 싶고, 물어야 한다. 행복에 대한 정답을 알아야만 행복할 수 있냐고. 행복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실제로 행복하지 않은 사건들에 행복을 느꼈다고 그 시절의 내가 불행해지는 것은 아니다. 행복에 대한 완벽한 이해나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지 정답을 모른 채 살아온 지난 시간들이 나는 분명 행복했다. 삶은 행복에 대한 정답과 오답을 나누는 과정이 아니라, 어제의 행복을 다시 떠올리고 오늘을 살아가며 내 행복의 영역을 점차 넓혀 나가는 과정이지 않을까.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어떻게 하면 내가 행복에 대해 더 잘 알고, 더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 였다. 이번 기회로 나를 행복하게 할 것 같은 것들을 재평가하며 알지 못했던 행복에 관한 사실들을 깨닫았지만 나는 이게 행복의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인생의 정답을 모르기에 사는 동안 도전과 실패를 반복한다. 그 무한한 과정에서 배우고 깨닫고 스스로를 성찰하며 기쁨과 슬픔, 행복과 좌절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정답을 알고 실패하지 않는 삶이 아닌 시행착오가 가득한 삶이야 말로 인간다운 삶이며 이러한 과정이 우리를 더 성숙한 인간, 인간다운 인간으로 성장시킬 것이라 믿기에 나를 포함한 많은 청년들이 행복에 대해 더 알고자 노력하기 보단 행복을 더 느끼기 위해 노력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