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티코스 160세 일대기 (1863~)
장난감, 화장품, 자동차, 물컵, 비닐봉지. 플라스틱은 일상생활 어디에나 있습니다. 잘 휘고, 어떤 모양과 무늬로도 성형이 가능한, 영롱한 플라스틱. 우리에게 여러 가지 대변화를 가져다 준 플라스틱은 작은 당구공 하나 때문에 만들어졌습니다. 1863년, 상류층의 스포츠였던 당구가 대중적으로 유행하게 되는데요. 당구의 유행은 아래와 같은 순환을 만들어냅니다.
당구 대중화 ▶ 당구공 수요 증가 ▶ 당구공 생산 증가 ▶ 당구공의 재료, 코끼리 상아 수요 증가 ▶ 코끼리 사냥 증가 ▶ 코끼리 개체 수 감소
당구공 회사는 코끼리 개체 수 보호를 위해 1만달러의 상금을 내걸었고, 그 결과로 ‘셀룰로이드’라는 물질이 개발됩니다. 셀룰로이드는 나무, 짚에서 추출한 천연원료(셀룰로오스)로 만들어지는데 충격에 약하고 가연성(불에 잘 타는 성질)이 있어 폭발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제품으로 상용화하기엔 어려웠습니다. 대신 셀룰로이드는 무늬와 패턴을 만들기 좋아 머리빗, 장신구, 필름 등을 만드는데 사용되었습니다. [ⅰ]
1907년, 화학자 베이클랜드는 천연 원료를 사용하지 않은 최초의 완전 플라스틱, 베이클라이트를 발견합니다. 물 생성물인 페놀과 포름알데히드를 결합한 베이클라이트는 앞서 찾아낸 셀룰로이드보다 가연성이 훨씬 낮아 물건에 사용하기 안전하고, 썩지도 녹지도 않으며, 원료를 구하기 쉬워 값싸고, 절연성(전기가 통하지 않음)이 좋아 각종 전자제품에 쓰이기 시작합니다. [ⅱ] 플라스틱의 어원, ‘아무 모양이나 만들 수 있다’는 뜻의 라틴어 ‘플라스티코스(Plastikos)’는 이렇게 시작되고 상용화됩니다.
지금 널리 사용되는 다양한 플라스틱 물질이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1930~1940년대입니다. 1920년대 과학자들이 플라스틱의 화학적 성질을 발견하면서 여러 종류의 중합물을 찾아냈고, 이는 상업적으로 활용됩니다.
1926년 : 폴리염화비닐(PVC). 천연고무의 수급 부족을 해결하는 대체 소재 개발 과정에서 개발, 상업화
1933년 : 폴리에틸렌(PE). 포장용 비닐봉지, 플라스틱 음료수 병, 전선 피복재 등 가장 많이 소비되는 플라스틱.
1938년 : 나일론. 화학공장을 운영하던 듀폰은 고급 섬유인 비단(실크)을 대체하는 나일론을 개발. 실크를 모방하지만, 몇 배 더 단단한 성질. 듀폰사는 나일론으로 스타킹을 만들어 큰 이익을 봄
플라스틱 산업은 전쟁을 통해 꾸준히 발전합니다. 2차 세계대전 기간 플라스틱은 전선 보급품인 플라스틱 헬멧, 낙하산, 방탄조끼, 방수 비닐 비옷에 사용되었습니다. 전쟁 중 미국의 플라스틱 생산량은 4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iii]
플라스틱을 어떻게 한번 쓰고 버려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플라스틱 제조사들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플라스틱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처음 플라스틱 일회용품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일회용품을 열심히 재활용해 사용했다고 하는데요. ‘한 번 쓰고 버린다’는 개념이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플라스틱 제조사들은 대중들에게 이 개념을 적응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고 합니다. 1955년 LIFE의 8월 호 표지에는 <Throwaway Living: 쓰고 버리는 일상> 이라는 제목, ‘일회용품이 집안일을 줄여준다'는 카피와 함께 쏟아지는 플라스틱을 환호하는 가족들의 모습이 실렸습니다. [ⅳ]
최초의 테이크아웃 컵
맨 처음 개발된 일회용 컵은 스티로폼으로 만들어졌다는 얘기, 들어봤나요? 스티로폼 컵이 탄생한 이후 세븐일레븐에서 최초의 종이 테이크아웃 컵이 개발됐는데, 음료가 흐르는 문제로 컵의 뚜껑인 리드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1990년, 스타벅스가 스티로폼 대신 종이로 만든 일회용컵을 매장에서 사용하게 되었고, 종이컵은 단열이 잘 되지 않아 컵홀더가 생산되었습니다. [ⅴ]
비닐봉투 vs 종이봉투
비닐봉투가 사용되기 이전에 사람들은 대부분 종이봉투를 사용했습니다. 비닐봉투는 1960년즘, 종이봉투의 남용으로 나무를 계속 베어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명되었습니다. 추후 가격경쟁에서 비닐봉투가 승리해 대중화되었습니다.
플라스틱이 대중화되면서 수많은 일회용 제품들이 등장합니다. 플라스틱은 바쁜 현대인의 일상을 행복하게 돕기 위해, 천연 원재료들의 보호를 위한 대체품으로, 혹은 가격경쟁 때문에 탄생했습니다. 1990년대를 지나 혁신적 물질로 여겨지던 플라스틱은 순식간에 골칫덩이가 됩니다.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평가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건 뭘까요? 종이냐-비닐이냐 곧, 천연재료냐-화합물이냐 보다는 ‘한 번 쓰고 버려지는 것’. 일회용의 무게와 책임을 알고 생산과 소비단계의 변화를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2편으로 이어집니다.
참고
[ⅰ] [안동진의 텍스타일 사이언스(14)] 폭발하는 당구공과 최초의 인조섬유 ‘레이온’
[ⅱ] How plastic became a victim of its own success
[ⅲ] A brief history of plastic
[ⅳ] The History of Plastic: The Invention of Throwaway Liv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