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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관복 Dec 02. 2023

살아가는 동안

그리움을 향하여

나는 홍콩 입국장 검열관에게 여권을 무심히 내어 밀었다. 검열관이 내 눈을 마주 보며 마스크를 내리라는 동작을 했다. 또 무심하게 그 사람의 눈을 마주 보며 마스크를 벗었다. 말없이 내어주는 여권을 받아 들고 작은 캐리어를 끌고 입국장을 통과해서 나왔다.

11월 중순이었지만 홍콩은 아직 여름처럼 더웠다.

동행한 양이와 함께 공항청사 밖으로 나왔다.

운전기사를 대동하고 마중 나온 양의 남편 현이 우리 둘을 보고 오른손을 들어 흔들어 보였다.

호텔로 가는 차 안에서 나는 17년 전 이맘때 계절을 생각했다.     



그때도 나와 남편 그리고 아들은 선전공항에 내려 12월 초임에도  더운 그곳의 날씨에 입고 있던 두꺼운 겨울옷을 여름옷으로 갈아입고 홍콩세관입국장의 줄지어 서있는 사람들의 뒤꼬리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남편의 손에는 DPRK 공무여권이 들려져 있었는데 미성년자였던 아들은 엄마인 내 여권의 중간쯤 페이지에 사진이 붙어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 차례가 다가오고 있었다. 빠르게 뛰는 심장박동소리가 머리까지 울려왔고 나는 내 가슴에 손을 얹고 지그시 눌러 이 빠른 박동을 진정시키려 깊은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좀 떨리는 손으로 여권을 내어 밀었던 것 같았다. 말쑥한 유니폼차림의 검열관이 여권을 받으며 내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내 생각에는. 한참을 컴퓨터에서 눈을 떼지 않던 검열관은 손짓으로 누군가를 호출했다. 검열관의 수장 인듯한 또 다른 검열관이 내 앞 창구로 급히 왔고 그는 나의 여권을 넘겨받고 나를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가뜩이나 빠르게 뛰던 가슴이 더 세차게 쿵쿵 소리를 냈고 나는 순간 내 몸의 모든 피가 머리로 솟구쳐 올라오는 듯한 화끈거림을 느끼며 허청허청 기계적으로 캐리어를 끌고 수장의 뒤를 따라 어떤 방에 들어가 의자에 앉았다. 아들은 말없이 나를 따라왔고 옆 줄 창구에 섰던 남편도 또 다른 검열관을 따라 들어와 내 곁에 앉았다.

눈부시게 흰 와이셔츠에 짙은 남색의 유니폼을 입은 여성공항직원이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지 우리 셋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절로 내 입에서 중국어가 튀어나왔다. 보통화(표준중국어)를 구사할 수 있음을 알아차린 여직원은 느릿느릿 말했다. 당신들은 중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기 때문에 중국정부로부터 홍콩비자를 발급받아야 입국할 수 있다고, 그래서 내가 괜히 물었다.      

여기는 중국이 아니냐고,

일국양제(중국과 홍콩은 하나의 국가이며 두 개 제도)

라고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 셋은 그 방에 약 한 시간가량 방치되어 있었는데 남편은 안절부절못했다. 폭풍전야의 고요함이 숨 막히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한 요원의 안내에 따라 다시 중국 본토로 돌려보내지는 긴 복도길 위에서 남편이 나와 아들에게 우리말로 나직이, 그리고 빠르게 속삭였다.

내가 갑자기 뛰기 시작하면 너희 둘 다 무조건 나를 따라 달리라고.

다시 내 심장은 쿵쿵 내 온몸을 울렸고 미로 같은 긴 복도는 지옥으로 들어가는 땅 굴속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한 20분 정도 차를 달려 호텔에 도착했고 나는 11층의 호텔창가에 서서 낯선 도시를 내다보았다. 호텔 옆을 통과하는 기차 길 건너 50층은 넘어 뵈는 초고층 건물들이 우줄우줄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었고 그 뒤로 푸른 하늘 배경으로 그리 높지 않은 산들이 밋밋하게 병풍처럼 펼쳐져 있었다.

5박 6일의 여정이었다.

현과 양, 그리고 나 이렇게 우리 셋은 하루 세끼 꼬박꼬박 호텔 밖으로 밥을 먹으러 외출했고 식사 후에는 잠깐잠깐 없는 게 없는 시끌벅적한 야시장을 느릿느릿 구경했고 저녁때마다는 선들선들한 바람을 쏘이며 호텔 근처 이 거리, 저 거리 기웃거리며 산책했다.

현은 홍콩이 처음인 나를 배려해 매 식사메뉴에 신경을 써주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홍콩의 소시민들이 일반적으로 즐기는 홍콩음식을 먹었고 상하이음식과 사천요리, 태국요리와 베이징요리 등 골고루 메뉴를 정해 두 여자는 현의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먹었던 모든 요리에는 고기가 빠짐없이 들어갔는데 이상하게 육고기 특유의 느끼한 맛은 전혀 없었고 5박 6일 동안 내리 이런 고기 음식을 먹었음에도 질리지 않았고 간혹 김치생각은 났지만 강렬하진 않았다. 모든 국물은 마치 우리의 곰탕처럼 고기와 여러 싱싱한 재료들을 정성 들여 고아낸 진하고 건강한 맛을 연상케 하여 50대 중반의 우리들은 감탄하며 마시곤 했다.

하루 세끼 먹고 먹으면서 음식에 대한 이야기와 농을 주고받았고 먹은 후에는 거리거리를 거닐며 우리가 젊었을 적 얘기를 나누곤 했다.

그리고 나는 쉰다섯 번째 나의 생일을 이 5박 6일 중에 맞았다.

우리 셋이 내 생일날 저녁식사를 하는 모습을 사진 찍어 아들에게 보냈더니 즉시 답장 카톡이 왔다.     

왜 이케 다들 늙은 거야,

현 아저씨 하얀 머리 보는 순간 눈물이 확 나네.     

이미 할머니가 되어있는 나와, 반백의 현과, 그래도 우리 셋 중 제일 나이 어린 양은 거의 십육칠 년 전 우리들의 가장 좋은 시절에 있었던 일화들과 주변 친구들에 대한 재밌었던 이야기로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나가며 나의 55번째 생일을 같이 보냈다.     

4일째 되던 날 아침에 현이 오늘은 홍콩으로 가자고 했다. 내가 물었다. 여기는 홍콩이 아니냐고, 홍콩의 외곽이라고 하며 전철을 타고 진짜 홍콩의 중심으로 구경 가자고 했다. 적어도 10개 역을 통과 한 끝에 내려 수많은 2층버스들과 도로 양쪽 깎아지른 듯 서 있는 빌딩들과 거리를 흐르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그 유명한 빅토리아 항구에 도착하여 저쪽 맞은 켠 바다 건너 풍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보, 여기가 홍콩이야.          



온몸을 전율하며 예상했던 일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고 나와 남편과 아들은 다시 선전으로 돌아와 택시를 불러 타고 도심의 어느 번쩍거리는 호텔에 차를 멈추게 하고 프런트에 두근거리는 마음을 붙잡으며 또 여권을 내어 밀었다. 어딜 가나 신분을 확인하려면 필요한 과정이었다. 방을 잡고 기진한 몸을 누이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토요일 밤이었다.           



빅토리아 항구에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맞은 켠 항구에 도착하여 던져진 밧줄이 튼튼한 고리에 고정되는 광경을 바라보며 흔들거리는 배에서 내려 다시 소음의 도시 사이사이를 구경하고 우리가 머무르는 홍콩외곽의 호텔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나는 현의 어깨에 잠시 기대고 눈을 감았다.


살아가는 동안 그리움은 떠나지 않을 것이며 나는 그 그리움을 향해 끊임없이 목마르고 고독한 길을 걸을 것이다.     


2023년 12월 2일 신관복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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