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하루 즐거운 게 목적인 긍정요정 모녀의 여행기
10월 연휴의 끝자락 엄마와 여행을 떠났다.
장소는 장수와 순창. 올해 여름 지인들과 다녔던 여행에서 좋았던 장소를 엄마와 함께 다녀오기로!
사람들은 부모님과 여행하려면 조금 힘들다고 하는데 나는 전혀 아니다.
오죽하면, 인터넷에 부모님과 여행할 때 미리 받아놓아야 하는 맹세라는 제목 아래와 같은 내용이 돌아다닌다.
하나, “야 이거 짜서 못 먹겠다.” 금지
둘, “여기 뭐 볼 것 있다고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몰리냐?” 금지
셋, “아직 멀었냐?” 금지
넷, “음식이 달다.” 금지
다섯 “이거 얼마냐?” 금지
등 10가지나 있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오히려 모시고 다니기보다는 나의 훌륭한 여행 메이트이다. 아주 죽이 잘 맞는다.
사진도 우리 집에서 2등으로 잘 찍는다.(1등은 나인 거 안 비밀)
여행 중간중간 사람들이
“딸이 엄마 여행 데리고 다니니까 진짜 좋겠다!”라고 하셨는데
내가 먼저 “아뇨! 엄마가 저랑 놀아주는 거예요! 우리 동네에서 제일 바쁜 사람인데(실제 그렇다_문화센터만 3개다님) 저랑 시간 내서 여행 와주신 거예요.”라고 답했다.
여행의 시작! 엄마의 못 다 끝난 명절인사를 위해 집 근처에 친척집을 한 곳 들르고 출발! 우리의 목적지는 장안산 군립공원
지난 6월 마음이 아주 힘들 때 걸었던 곳인데 걷는 내내 엄마가 좋아할 것 같아서 엄마 생각이 났었다.
예상 출발시간보다 조금 늦어져 목적지에 도착하면 11시 일 것 같았다.
30분 전에 물어봤을 때 별로 배고프지 않다던 엄마는 “우리 밥 먹고 가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안될 게 없던 나는 “그래!”하고 바로 다시 내비게이션을 검색해 우리가 원래 가려던 다슬기 수제비 맛집 “영광분식”으로 갔다.
오호. 명절 연휴 내내 열심히 장사를 하셨는지 10월 2일부터는 쉰다고 안내가 붙어있었다. 잠시 고민을 하려 차를 세웠다.
차를 세우고 문을 연 식당을 찾고 있는 중에, 엄마는 고사이를 모참고 내려서 주변 풍경을 둘러봤다.
“야. 혜지야 얼른 내려봐. 여기 코스모스 있어~ 물 하고 다리하고 하늘 하고 너무 예뻐. 네가 딱 좋아할 스타일이야.”
마침, 알맞은 식당을 찾고 엄마의 풍경구경에 동참했다. “와우. 풍경이 가을 자체였다.”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었다.
“가을엔 코스모스지!”라고 하며 포즈를 취한다.
“오히려 거기 식당이 문을 닫아서 식당 찾느라 이렇게 멋진 풍경을 봤네?” 엄마가 웃으며 말한다. “그러니까 말이야.” 진짜로 공감이 돼서 딸이 답한다.
검색해서 찾아간 보배식당
큰 나무를 좋아하는 나는 “와. 나무 봐. 사장님 가게 자리 진짜 잘 잡으셨다.” 라며 차에서 내렸다.
사장님은 큰 나무가 만드는 그늘을 지붕 삼아 평상에서 토란대를 다듬고 계셨다.
여기서 먹은 어제비! 매운탕을 끓이고 남은 국물로 만든 수제비라고 한다. (엄마 설명)
사장님이 차려주신 상에 어제비에 숟가락을 담그고 국물을 떠서 입에 넣자마자 긍정요정 엄마의 한마디
“혜지야 거기 문 닫기 잘했다. 거기 문 열어서 이거 못 먹었으면 아쉬울 뻔했어. 딱 좋네!”라며
세상 맛있게 먹었다.
그나저나 엄마.. 배 안고프다고 하지 않았어?
국물하나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먹은 우리는 걸으러 출발했다.
“밥 먹고 걸으니까. 딱 든든하니 걷기 딱 좋네.”
“그러니까 엄마! 그리고 우리가 점심을 좀 먼저 먹고 걸어서 그런가. 사람들 점심 먹을 시간이라서 그런지 여기도 사람이. 별로 없어. 딱 좋아!”
긍정요정 모녀는 그 숲길을 온전히 즐기면서 걸었다.
“딱 적당히 걸었다. 딱 좋네!”
잘 걷고, 숲을 충분히 누리고
출출해질 때쯤 장수 ‘긴물찻집’
사람들 보다 조금씩 빠르거나 늦게 움직인 탓에
적당히 우리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을 때 움직였다.
“지금 이 시간이 딱이다! 오후 해가 여기 딱 들어오니까. 반짝거리면서 엄청 예쁘다.”
라고 또 그 공간을 온전히 누렸다.
이제 장소를 옮겨 순창에 있는 숙소(금산여관)로 왔다.
너무 늦은 체크인이면 사장님이 불편하실까 봐 엄마랑 나는 부랴부랴 들어왔다. 5시쯤 들어와서
1시간 정도 쉬고 있는데, 저녁을 드시러 가신 사장님이
“여기는 시골이라 식당들이 조금 일찍 문을 닫아요. 얼른 드시고 오세요. 요 앞에 피자 워크샵이라고 기가 막히게 하는 집 있어요. 거기 우리 여행자들도 있으니 가서 인사하고 드세요!”
이 지역 맛집을 알려주시고 싶은 사장님의 마음은 정말 이해가 되지만 우리는 치킨을 먹고 싶어 둘이 이미 이야기를 해놓은 상태였다.
긍정요정이긴 하나ㅋㅋㅋ먹고 싶은 것은 먹어야 하는 우리. 하지만 사장님의 호의도 함부로 무시할 수 없었다.
“둘 다 먹자! 일단 피자를 조금 먹고 치킨을 사들고 가자.”
이것도… 긍정의 효과인가 아님 위대한 위의 능력인가?
피자집에 들어가니 피자집이 가득 차있었다. 과연 맛집이 맞긴 했나 보다.
“사장님 자리가 없나요?”라고 여쭈니 “자리는 만들 수 있는데, 도우가 다 떨어졌어요. 죄송해요.”, “오! 아니에요. 사장님 다음에 꼭 올게요!”
하고 나와서 “엄마. 진짜 다행이다. 도우가 없데. 치킨 먹으러 가자.”, “그러니까. 딱이네. 가자.”
치킨집의 종류도 여러 곳이라서 고르다가 매장에서 식사가 가능한 순창읍 멕시카나 치킨에 갔다.
가끔 아무리 프랜차이즈라도 사장님의 손맛에 따라 치킨맛이 천차만별인 것을 알고 있는 먹깨비들이라 치킨이 나올 때까지 긴장했다.
치킨이 나오고 퍽퍽 살을 찾아(둘 다 퍽퍽 살을 좋아한다.) 입에 딱 넣는 순간 “맛있다!. 딱 좋네.”라고 하며 치킨 한 마리를 다 먹었다.
엄마는 치킨을 먹고 나오는 길에 “나. 하루종일 속이 조금 불편했는데, 그게 싹 내려갔어. 먹고 싶은 것을 먹어서 그런가 봐.”라며 웃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피자를 안 먹었냐?
다음날, 집 가는 길에 포장했다.
아니.. 사장님이 이 피자집을 괜히 추천한 게 아니구나?
하여튼 이번 여행 딱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