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남기
*이 글은 <민간중국> 1장~3장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 Pixabay, Unsplash
한국 언론에 등장하는 중국은 특정한 키워드로 대표된다. '시진핑', '공산당', '혐한', '조선족', '반중', '사회주의' 등이 그 예다. 이 중에 조선족이라고 하면 한국인 입장에서 그들은 '재중동포'로 정의된다. 그런데 중국 정부와 중국인은 이들을 중국의 55개 소수민족 중 하나로 인식한다. 연합뉴스 자료에 따르면 조선족은 2022년 기준으로 170여 만 명 정도가 인구 통계에 잡힌다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조선족이 중국 소수민족 중에서 16번 째로 인구가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소수민족은 어떨까? 중국 소수민족 중에서 가장 많은 인구 분포를 자랑하는 광시 자치구의 좡족은 그 수가 무려 2천만 명에 달한다. 한국 인구수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숫자다. 한때 언론에 빈번하게 등장했던 신장 자치구의 위구르 족은 천만 명이다. 또한 55개 소수민족 전체의 인구수를 합하면 중국 인구의 8.9%에 해당한다.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중국에는 꽤 다수의 소수민족이 살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이민자를 차별하는 분위기가 만연하지만 표면적으로는 타민족을 포용하는 미국과 달리 중국은 그 역사에서 소수민족을 한족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시도들에 적극적이었다. 위구르 족이 한족이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위구르 자치구에 중국 역사박물관을 세우고 그들에게 한족의 역사를 주입시킨다. 그렇다면 소수민족은 중국의 격동기에 수반되었던 차별과 배제의 역사에서 국가적 억압에 어떻게 대항하고 그들 스스로를 지켜냈을까?
<민간중국> 1장은 중국의 한 국경마을에서 농촌개발을 둘러싸고 여러 주체들, 특히 마을 노인들이 마을 청년 및 간부들과 갈등을 빚는 이야기다. 윈난성의 한 국경 마을은 2013년에 마을 전체가 농촌 개발지역으로 지정되어 마을 주민이 인근 지역으로 이주하는 상황이 현실화되었다. 이 이야기에서 중심 화자는 마을 노인들이지만 개발의 주체는 그들이 아니라 마을 간부와 공산당원이다. 이 갈등을 표면적으로만 접근하면 전통과 현대, 청년과 기성세대, 변화와 보수라는 키워드의 나열만 있을 뿐 왜 마을 노인들이 더 이상 마을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하는지를 알 수 없다. 그들의 완고함에는 이유가 있는데, 자신들과 매일같이 접촉하는 마을 간부들의 지속적인 마을 지원금 횡령과 마을 재산 불법 매매가 노인들의 신뢰를 갉아먹어 왔고, 이런 일들이 마을 이전 문제 전부터 퇴적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기저에는 200년 넘게 다이족 마을만의 의사결정이나 문화 체계가 존속해 왔는데, 마을 간부들이 그것을 의도적으로 무시해 온 데 대한 분노가 자리하고 있었다.
마을 밖의 공간에 대한 불신 또한 이들이 이주를 반대하는 이유다. 그들에게 있어 집은 단순히 거주하는 공간이 아니라 ‘자이신’의 보호를 받아 생활하는 공간이다. 그러니 이사를 가면서 어떤 정화의식도 하지 않고 원래 살던 집을 헐지 않는 것은 다이족이라는 세계관의 분열과 마을 공동체의 붕괴를 의미한다.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은 이 세계관 안에서 실체가 있는 공포로 탈바꿈한다. 책에서 많은 노인들이 마을 간부는 비판하지만 차마 당과 정부에 대해서는 비판하지 못했던 것은 과거 격변하던 중국 현대사에서 그들을 지켜주었던 존재가 국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실제로 마을 사람들이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은 자이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마을 공동체 안에서 질서를 지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사상적으로 영향을 더 많이 끼치고 그들의 실존적 삶(경제적, 사회적 삶)의 방향키를 쥔 것은 당과 정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이들이 이렇게 고집스러울 정도로 모두의 이주를 반대하는 이유는 단순히 마을의 운명을 걱정해서라기보다 자신들이 더 이상 마을의 질서에 편입되지 못하고 향방을 책임질 권력을 잃는다는 사실이 두려워서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개발 전에는 촌장이 있음에도 노인들이 비공식적으로 마을의 일에 심심찮게 개입해 온 것을 봤을 때 과연 그동안 노인이 아닌 사람들(청년, 마을 위원회, 타 지역에서 이사 온 사람)은 자신을 어떻게 대변해 왔고 목소리를 내기 위해 어떤 창구를 활용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민간중국> 2장은 개혁개방 시기의 중국부터 90년대 후반의 도쿄, 그리고 2015년 상하이를 거쳐 서울에 오기까지 한 재중동포의 이동성에 대해 다룬다. 김형이라는 인물은 교육과 노동을 위해 연변에서 도쿄로, 또 도쿄에서 상하이로 이주를 감행했고 그에 따른 계층 상승에 성공했다. 그러나 한 남자의 눈물겨운 성공담 뒤에는 재중동포로서 그와 가족이 감내해야 했던 물리적, 정신적 폭력이 있다. 개혁개방 초기 상황이 혼란한 틈을 타 소위 말하는 여러 ‘주먹’들이 연변에서 기승을 부렸는데, 이 조직들은 문혁 시절 논리에 따르면 ‘소자산계급’에 해당하는 자영업자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종종 금전적 갈취를 일삼았다. 한족이 아닌 민족은 중국 정부의 비호를 받기 힘들었던 그 시절은 김형이 회상하듯 ‘주먹’의 시대였다. 당시의 구별 짓기가 주먹이었다면, 2016년의 김 형에게는 그 기준이 한류로 옮겨온 것 같았다. 상하이에서 15억 상당의 아파트에 거주하면서 아이에게 필요한 생필품은 대부분 한국 제품을 사용하고, 코로나의 영향이 아니었으면 진작에 강원도에 가서 스키를 타고 있었을 그를 보니 기분이 묘했다.
1,2,3장의 공통점은 내가 중국의 관영 매체나 해외 언론에 의해 체에 걸러진 한족 중심의 중국 모습이 아니라 중국 정부가 지속적으로 한족 문화권에 포섭하려 하는 소수 민족의 삶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미디어에서 자주 접하던 연변 조선족의 이야기보다 생소한 다이족과 회족의 사연이 더 흥미로웠다. 한편 책에서 회족 사진작가인 마다홍은 사라진 신장 위구르 예술가들에 대해 회상하는데, 거의 수용소에 있다는 말에 위구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마침 작년 8월 31일 UN에서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일어난 위구르족 학대와 고문 실태에 관해 보고서를 발표한 사실을 뉴스를 통해 알 수 있었다. 3년 동안의 조사 분량에는 중국을 탈출한 학대 피해자들의 증언과 수용소의 현황에 대한 내용들이 있었는데, 놀라운 것은 ‘교육 센터’라는 이름으로 설치된 수용소가 380개에 달한다는 사실이었다. 이 보고서의 발간 배경에는 중국의 전방위적인 압박이 있었다고 바첼레트 전 대표는 밝혔는데, 개인적으로 그동안 UN이 중국의 입맛대로 흘러간 사실은 없거니와 미국과 서방의 압박이 심했으면 더 심했지 덜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서 이 발언은 상당히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UN이 사실상 미국의 스피커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하필 미중 갈등이 심화되었던 시점에서 보고서를 발표한 것도 의심스러워서, 이 보고서의 의도가 순수하게 인권 탄압을 고발하는 것에만 있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최근 피해자의 '빼앗긴 영광'이라는 말이 한 드라마를 통해 회자되고 있다. 소수민족의 상처는 과연 누가 달래줄 수 있을까? 이들의 빼앗긴 영광은 누가 찾아줄 수 있을까? 유독 많은 생각이 교차하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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