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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도치 Jul 12. 2023

프랑스 국민 소셜 미디어 플랫폼이 한국에서 실패한 이유

<2023 콘텐츠가 전부다> 리뷰


대중 미디어 산업과 브랜딩 전문가, 마케터들이 입을 모아 지금이 '콘텐츠와 플랫폼이 어떤 것보다 중요한 시대'라고 말합니다.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를 하고 있는 저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죠. <2023 콘텐츠가 전부다>는 작년 한 해 대중에게 강렬하게 임팩트를 남겼던 영화, 드라마, 웹툰, 웹소설, 게임 등 많은 분야들을 톺아보고 각 산업의 동향과 미래를 예측해 보는 방향으로 책이 흘러가고 있는데요.


이 책은 굉장히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고, 작년에 들었던 대중문화 수업에서 다뤘던 내용과 겹치는 부분도 많아 이미 알고 있는 부분은 패스를 하고, 제가 읽으면서 '이 관점은 신선한데?' 싶었던 주장들을 위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k 예능만의 매력, 자막이 사라진다고? 



우리뿐만 아니라 한국 시청자들은 예능을 볼 때 자막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무한도전>부터가 김태호 PD만의 재치 있는 자막으로 인기를 얻었기도 하고, 한국인의 정서와 그때그때 시대를 잘 반영한 자막들은 시청자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한때 인기가 있었던 예능 프로그램들은 모두 자막이 중요했죠. 


그렇게 아시아를 주름잡던 K 예능은 넷플릭스의 등장과 예능 프로그램의 트렌드 변화로 전환을 맞게 됩니다. 넷플릭스가 K 콘텐츠에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기로 하면서 예능에도 그전에는 없었던 큰 규모의 투자가 이뤄지게 되었죠. 또 '최강 야구', '뭉쳐야 찬다' 등 웃음기를 뺀 예능 프로그램들의 활약으로 '다큐화'된 예능이 대세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넷플릭스에 공개되는 K 예능들은 기존의 한국 채널에서 방영되는 프로그램과 차이를 두는데, 그것이 바로 '한국식 예능 자막의 실종'입니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 공개된 여성 서바이벌 예능 '사이렌'에서 자막은 출연자들이 대화할 때 시청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만 할 뿐 '자막이 나서서 웃기려는 의도'는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또 예능에서 웃음을 유도하려면 시청자의 공감이 필수적입니다. 글로벌 시청자들을 사로잡으려면 아무래도 좀 더 보편적인 공감대를 노려야겠죠? 그래서 <솔로지옥>은 젊고 멋있는 일반인들이 나와서 데이팅을 즐기는 콘셉트를 극대화했습니다. 만약 인지도 높은 한국 연예인들이 출연했다면 이들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북미 시청자들을 잡을 수 없었을 것이란 분석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분석이에요!)


물론 이런 현상에 대한 우려도 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예능들이 넷플릭스를 통해 제작이 될 텐데, 이것은 분명 그동안 이중 번역을 해야 했던 번역 인력을 고려해 앞으로 해외 진출을 할 시 화면에서 자막이 점점 실종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한국 예능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칠 거고요. 한국 시청자만의 공감 포인트와 자막이 실종된다면 아마도 k 예능의 특색은 퇴색되고 그저 그런 글로벌한 예능이 될 수도 있을 거란 우려도 존재합니다. 



2. 동영상 플랫폼으로 변해가는 소셜 미디어



틱톡이 출시된 이후 세계 최대 동영상 플랫폼인 유튜브를 위협하는 규모가 되자, 유튜브는 이에 대항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숏츠 카테고리를 도입합니다. 음악을 더 자유롭게 쓸 수 있게 하고 동영상 업로드를 용이하게 해 숏츠로 이용자를 유도하게 하려는 목적이 있었죠. 인스타그램 또한 오랫동안 유지했던 '사진 기반 플랫폼'이라는 정체성을 탈피해 '릴스'로 동영상 플랫폼으로의 도약을 준비했습니다. 


어쩐지 요즘 인스타그램을 들어가면 인스타툰을 그렸던 작가들이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만화를 아예 동영상으로 만들어 올리더라고요. 이젠 릴스가 사진보다 더 노출이 잘 된다는 알고리즘을 파악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역시 인플루언서들은 플랫폼의 변화에 민감합니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플랫폼이 점점 텍스트와 동영상으로 양극화되어가는 것 같아요.



3. 한국에서 프랑스 국민 소셜 미디어 Bereal이 실패한 이유



몇 년 전 프랑스에서 새로운 형태의 소셜 미디어 플랫폼 Bereal이 출시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플랫폼은 내 게시물을 내가 마음대로 올릴 수 없습니다. 아무 시간에나 랜덤으로 켜지는 카메라에 2분 동안만 촬영이 가능합니다. 굉장히 특이하죠? 사용자의 자유가 극히 제한되는 Bereal은 소셜 미디어의 순기능인 '자연스러운 일상의 공유'가 가장 큰 목적이거든요. 자신의 모습을 꾸미지 않고 전시하지 않는 플랫폼이라뇨! 


그런데 Bereal은 한국에서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저자는 그 이유가 한국 젊은 세대의 과시적 성향을 충족하지 못해서라고 밝히는데요. 제가 봤을 때 이 분석은 틀렸습니다. 사실 젊은 세대의 이런 성향은 국가를 막론하고 어느 플랫폼에나 존재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인의 경우 소셜 미디어는 단지 과시의 수단이 아니라 젊은 세대의 생계와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겁니다. 당장 대학생은 취업 포트폴리오를 위해서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 둘 중 하나는 운영하고 있고, 직장인도 디자이너나 프리랜서인 경우 마찬가지입니다. 소셜 미디어만큼 자기 어필이 잘되는 플랫폼도 없거든요. 


책에서 나왔듯이 한국의 2030 세대 3명 중 1명은 인플루언서(내지는 크리에이터)라는 통계를 고려하면 Bereal은 sns를 생계수단으로 인식하는 한국인의 수요를 충족하지 못한 것이죠. 



4. 찐 팬이 무조건 중요하다?



최근 인스타그램을 대표로 인플루언서들이 팬덤을 상대로 한 상품 판매가 성공을 거두면서 마케팅 분야에서 이른바 팬덤 장사가 대세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 같은데요. 저도 예전엔 이것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20%의 팬이 80%의 매출을 가져온다는 말이요. 


그런데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제가 마케팅은 잘 모르지만, 이 전략이 모든 플랫폼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쯤은 알 것 같거든요. 팬덤 장사는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타깃을 대상으로 최대의 수익을 뽑아내야 할 때만 유효한 전략으로 보입니다.


한국 남자 아이돌의 현주소를 예로 들어보죠. 아이돌 업계에 관심 없는 일반인, 즉 우리 옆집 아저씨에게 남자 아이돌 누가 유명하냐고 물어보면 십중팔구 bts를 얘기할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 세븐틴, 엑소를 제외하고 이름을 아는 그룹이 얼마나 될까요? 국내보다 해외에서 유명한 스트레이키즈, 더 보이즈, 에이티즈 얘기하면 과연 알아보실까요? 


얼마 전 유튜브에서 유명한 여행 유튜버 빠니보틀님이 하신 얘기가 생각나네요. '유튜브는 찐 팬 보다 콘텐츠의 특성에 따라 지나치는 시청자가 더 많은 플랫폼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 지나가는 사람들의 니즈를 맞추는 것이 채널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길'이라 말한 바가 있죠. 


만약 팬덤 장사가 맞다고 해도 일단 대중을 상대하는 직업은 찐 팬에 매몰되면 안 된다는 것이 저의 의견입니다. 물론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많으면 좋지만 정말로 팬들만 좋아하는 콘텐츠를 생산하고 이른바 고여버리면 크리에이터의 채널 혹은 계정이 성장하기 힘들 것 같거든요. 



5. 메타버스가 진짜 유행이긴 한 걸까?



제가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의심이 갔던 대목이었습니다. 저자는 메타버스의 유행을 메타의 브랜드 이름 변경과 '제페토'의 출현을 근거로 들고 있는데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거 정말 유행 맞을까요?


제가 정의하는 유행의 기준은 '아래로부터의 유행'입니다. 아래로부터의 유행이란 건 뉴스에서 떠들면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유튜브나 소셜 미디어 등에서 사용자들의 자연스러운 입소문을 타고 형성된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유행은 예를 들면 다나카 상이나 전과자 같은 콘텐츠죠. 즉 제 주변에서 '요즘 이게 재밌대' 이 말이 나오는 것들이 진짜 유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메타버스는 (제가 추정하기로는) 주식하는 분들이 먼저 접한 정보고 이후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되어서 저녁 뉴스에 메인으로 걸리는, 그런 루트를 타고 유행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건 '아래로부터의 유행'이 아니죠. 이런 정보의 특징은 주식하는 분들이나 업계 관계자, 혹은 마케팅 전문가가 아니면 관심이 없다는 겁니다. 


당장 제 주변에서 '요즘 메타버스가 유행이래. 너 제페토 해봤어?'라는 질문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주식하시는 저희 아버지 빼고요. 만약 이게 유행이라면, 인스타를 켰을 때 스토리에 너도나도 메타버스에 대한 언급이 있고 탐색탭에 관련 콘텐츠들이 있어야 하는 건데 저는 메타버스 열풍이었을 때도 이런 풍경은 보지 못했거든요. 


물론 다분히 제 경험만으로 판단한 감이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제 주변의 2030 세대는 이것을 유행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메타버스가 뭐냐는 질문만 받았던... 하여튼 이 메타버스 부분은 읽으면서 공감이 하나도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저자의 빛나는 발상으로 가득한 책을 좋아하는 편인데요. 그런 의미에서 단순 트렌드를 나열하는 이 책에서 어떤 인사이트를 얻기는 힘들었습니다. 제가 유행을 소비하는 그룹의 한가운데에 있고 사실상 책 내용을 거의 다 체감하고 있어서 그런 걸까요:) 그래도 읽으면서 나름 흥미로운 분석들을 발견하게 되어서 시간이 아깝지는 않았어요. 올해 트렌드 궁금하다 하시는 분들은 한 번쯤 읽어볼 만합니다. 




*이미지 출처: unsplash, App store, 예스 24,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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