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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도치 Jul 28. 2023

<나라는 이상한 나라> 마음을 위로하는 심리학 한 스푼

책 읽는 도치


모름지기 세상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먹고사니즘과 타인의 평가로 점철된 일상에서 스스로를 돌아볼 여유가 없어서다. 이 책은 이런 저런 일로 옹졸해진 마음과 그걸 들키지 않으려 벽을 쌓는 현대인의 마음을 저자는 무장해제 시키고 진실된 나와 마주보게 한다. 책 한 권이 전하는 위로는 나의 생각보다 강력했다. 


이 책은 저자가 제목을 참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 나의 마음을 이해하는 가이드북 형식의 느낌도 나고. 전공도 인문학 쪽이고 그 분야 책만 읽어온 나는 인문학 하는 사람들 특유의 잘난 척하는 말투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이 책은 분야가 달라서 그런건지 아니면 저자가 필력이 좋아선지 이해하기 쉬운 언어와 비유로 차근차근 설명해서 마음에 든다. 


마음을 사로잡은 구절들



무언가에 대해 유독 당당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두려워서 보이는 방어기제일 가능성이 크다. 어떤 일을 충동적으로 저지르는 성향인 나는 반대로 생각하면 두려워서 망설이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 것이 아닐까? 



나는 누구에게 칭찬을 들으면 “남 참 똑똑해” 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하는데, 이게 높은 자존감의 표시가 아니라 ‘똑똑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불안감의 표시였다니… 무의식적으로 내가 모르는 지식에 대한 강박이 있었나 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호흡 곤란이 오고 심장박동이 빨라지며, 소화가 안 되고 머리가 자주 아프다고 저자는 말했는데, 모두 내가 공시를 준비할 때 겪었던 증상들이다..! 그때는 시험이 코앞에 다가온 상황이라 증상의 종류를 안다고 해도 나아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 확실히 그 시절의 나는 나에게 참 무심했다. 아픈지도 모르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기 바빴으니. 



원론적으로는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도 좋고 관계에도 좋다는 말은 맞는 이야기지만, 안타깝게도 이 사회에는 본인이 아픈지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타인에게 자신의 마음을 건강하게 표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회 생활을 위해 스스로를 속이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세상이 과연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지.



책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부분인다. 이혼한 엄마를 그리워해서 아침을 먹고 있음이 드러나는 마지막 말이 슬픈데, 그것과 별개로 이 짧은 대화에 기승전결을 함축하는 저자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일품이다. 



상대에 대한 선악 구분이 단순한 사람과는 답답해서 대화하기 싫어진다. 유명인의 아주 작은 실수에도 인성이나 배경, 가족을 들먹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사람들은 타인을 너무 쉽게 판단한다. 기준도 모호한 도덕적 잣대로 타인을 재단하려 드는 사례가 최근까지도 보여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특정인에 대한 신격화와 악마화는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인 걸까?



수동 공격은 약자가 힘으로 밀리는 강자 앞에서 취할 수 있는 무기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학원에서 알바했을 때 모르는 것을 물어봤다고 혼난 적이 있었는데, 나를 혼낸 사람이 부원장이라 화를 내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내가 취한 공격은 갑자기 그만둔다고 통보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무책임한 행동이었지만 당시에는 학원에서 가장 오래 일한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분노에 휩싸여 누구를 배려할 여유가 없었다. 수동 공격은 최고의 방어 수단이 맞다.




위의 인용은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취할 수 있는 최고의 공격이 맞다. 그러나 나는 이런 심리적 치유만으로는 사회가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정의에는 나에게 피해를 준 상대를 응징하고 처벌하는 '응보적 정의'가 있고, 다친 나의 마음을 치유하고 망가진 일상을 회복하는 '회복적 정의'가 있다. 그런데 회복적 정의가 존재하려면 응보적 정의가 언제나 선행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실현되었다면 <더 글로리>와 같은 드라마는 필요 없었을 것이다. 가해자들에 대한 적절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는데 피해자들이 어떻게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까? 



2차 이득은 병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거나, 생활에서 이득을 얻는 현상을 말한다. 나는 이걸 다른 말로 해석했는데, ‘나을 가능성이 있는 상태’로 해석했다. 병이 나으면 자신이 누리는 이득을 더 이상 못 누리게 될까봐 치료를 미룬다는 이 현상은 나와 같이 글 쓰는 지망생에게도 해당하는 말인 것 같아서 뜨끔했다. ‘작가가 될 가능성’에 머물고 싶어하는 마음을 간파당한 것만 같아서:) 그래서 내가 '가능성에 머물지 말자'는 말을 특별히 좋아하나보다. 



나는 친구를 만나면 내가 알게 된 정보를 얘기하는 것이 대화의 대부분을 이루는데, 이게 그렇게 건강한 대화는 아니었나 보다. 일방적으로 내가 말하는 정보를 들어야 했던 친구는 귀에서 피가 났으려나. 나름 생산적인 대화라고 생각한 내가 어리석었나ㅋㅋ



인간은 항상 지나고 나서야 깨닫나 보다. 나도 공시를 그만뒀을 때는 공부한 것들이 사회에 나가면 아무 쓸모도 없을 거라는 생각에 암담했는데, 막상 학교에 복학하고 보니 들어있는 지식이 많아 복수전공 수업이 따라가기 수월했고, 전공 공부에도 적잖이 도움 되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 내가 이것 저것 글을 쓰는 것도 당장은 아무 도움 안 될 수 있지만, 혹시 아나. 나중에 다른 일에도 도움이 될 지. 



사람은 자신의 사고와 행동을 사회에서 규정한 자아상에 늘 비교할 수밖에 없다. 가정과 학교에서 학습한 건전한 궤도에 어울리지 않으면 이 사회는 개인에게 궤도를 수정하라고 끊임없이 강요하고는 한다. 나는 한때 다른 길을 간다고 비난받는 것이 두려워서 안전한 선택지에 나를 가두고는 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고 싶어서 남들과 다른 궤도로 향하는 중이다. 주위의 걱정과 비난이 예상되지만, 뭐 상관없다. 어떻게 살든 간에 인생은 원래 불안정하고 불완전하다. 나는 기꺼이 불안정한 삶을 즐기려 한다. 궤도에서 벗어날까 두려워서 아무런 시도도 못하는 삶이야말로 건강하지 못한 것이다.



오랜만에 분석하지 않고 그저 즐기는 마음으로 읽은 책이라 그런지 읽으면서 위안을 많이 받았다. 그래, 마음에 위안을 가져다 주는 것이 책을 읽는 목적이었지! 하지만 이렇게 장점이 많은 책에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완결성이 좀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읽다가 책이 갑자기 끝난다. ‘이제 이야기를 끝낼 겁니다’라는 시그널도 없이 설명이 갑작스럽게 끝을 맺는 것이 도통 적응이 안 된다. 이건 저자가 책 앞머리에서 밝혔듯이 시리즈로 기획된 것이라고 해도, 완결을 내는 것은 책을 쓰는 작가라면 기본이 아닌가 싶다. 아니면 다음 책에서는 이러이러한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예고라도 해주던가. 재밌는데 클리프 행어도 없이 한 회가 끝나버리는 드라마를 시청한 기분이다. 이 점을 제외하면 <나라는 이상한 나라>는 심리학 입문서로 손색없다. 잘 쓰인 책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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