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n Maccannell의 '꾸며진 진정성'
우리가 여행을 간다면 아마 아주 높은 확률로 초록창에 '000 현지인 맛집'을 검색할 것이다. 연관 검색어로는 '현지인에게 인기 있는 곳', '현지인들이 가는 곳' 등이 있겠다. 물론 각자의 여행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런 검색어들에서 현지인의 바이브를 느끼고 싶어 하는 이들의 수요가 많다는 것 또한 알 수 있다. 이렇게 우리는 끊임없이 여행객을 위해 잘 정돈된 관광지 이면의 '진짜' 모습에 대해 궁금해한다. 그런데 과연 여행객은 관광지의 '진짜' 모습을 포착할 수 있을까?
당신이 관광지에서 본 것들은 진짜가 아니다.
Dean MacCannell은 관광지와 여행객의 관계를 '꾸며진 진정성'(Staged Authenticity)이라는 개념으로 정의한다. 관광지에 대한 환상을 충족시키고 싶은 관광객과 그들의 요구에 부흥하려 관광지의 주민들은 기꺼이 환상을 만들어 낸다는 의미이다. 그는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무대라는 비유를 든다. 무대 앞에 앉은 관광객은 무대 위 현지인의 퍼포먼스를 보고 그것이 진정성 있는 그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관광으로 먹고사는 현지인의 여러 계산과 이해관계가 함축된 결과물이다. 무대 뒤에서 퍼포머들은 관광객이 진짜라고 착각하는 환상을 만들기 위해 가짜를 제조한다. 관광객이 보고 싶어 하는 환상은 대부분 관광지의 왜곡된 모습이거나 미화된 풍경, 혹은 식민지적 위계 관계에서 출발한 미개척지에 대한 야망으로 나타난다.
Goffman의 <일상생활에서 자아 재현>에 따르면 무대는 전면과 후면을 기준으로 공연자와 관람자, 그리고 이와 전혀 상관없는 외부자로 구성된다. 공연자와 관람자는 무대를 직접적으로 통제하고, 외부자는 평소에는 이 공간에 거의 간섭하지 않지만, 무대에 위험요소가 생겼을 때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개입한다.
여기서 공연자가 무대의 전면과 후면을 가로지르거나 관람자가 무대 후면을 궁금해하는 것, 또는 공연자가 일부러 후면을 노출시키는 것은 금기시된다. 공연자는 관람자가 원하는 관광지의 진정성을 연출하기 위해 관람자의 판타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태국에 가면 어디서든 코끼리를 볼 수 있다는 여행객의 착각을 충족하기 위해 밀렵한 코끼리를 데려와 쇼를 보여준다든지, 동남아시아 국가의 해변에서 유럽의 수상 스포츠를 즐길 수 있게 관광지를 세팅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시다.
그렇다면 관람자는 후면에서 진정성이 만들어지는 상황을 전혀 모를까? MacCannell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모든 여행객이 관광지의 역사나 숨겨진 진실 같은 것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순간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관람자들은 우연히 후면의 진실을 알게 되더라도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기꺼이 눈감아준다는 것이다. 여행객의 이런 특성이 공연의 대가를 받고 싶은 공연자의 이익과 결부되어 결국 '모두가 짜고 치는 고스톱'의 상황을 만든다. 동남아 국가들에서 소수민족들이 관람료를 받고 자신들이 사는 것처럼 꾸며진 부족 마을에 여행객들을 구경시켜주는 투어는 이미 익숙한 여행 상품이다.
그러나 이런 짜인 각본과 같은 상황을 거부하는 여행객도 있다. 이른바 지식인(intellectual)들이다. 이들은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화려한 스펙터클 대신 여행지의 유구한 역사와 유물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 즐거움을 위해 잠깐 동안 기만당하는 것은 지식인답지 않기 때문이다. 지식인은 전문가가 소개하는 그림 전시회, 클래식 공연과 의미 있는 행사 등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자기 돈을 주고 기꺼이 꾸며진 쇼를 즐기는 여행객은 호구라고 할 수 있을까? 반대로 이런 쇼에 동참하지 않고 우아한 형태의 여행을 하는 지식인은 옳은 것일까?
결국 여행에 정해진 답은 없다. 관광지에 진짜가 없는 것처럼.
사실 웬만큼 알려진 여행지들은 대부분 관광지화 되어있다. 이것은 다르게 말하면 여행자들을 위한 관광 인프라가 갖춰져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 여행을 가서 우리는 굳이 '현지만의 무언가'를 찾는 데 얽매일 필요는 없다. 그저 여행과 여행지가 주는 편안함에 몸을 맡기면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