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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Aug 17. 2022

#1; 20대의 끝자락, 제주로 이사했습니다.

제주에서 '나다움' 찾기, 살아가는 의미와 사랑하는 삶을 위하여


취향에 맞는 공간이 나에게 주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그 느낌을 애정한다. 편안함, 영감 혹은 다른 어떤 말로 이름을 붙이고 싶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나의 일상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면서도 진심을 담아 이야기할 수 있는 소재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다가, 내가 늘 머무르는 공간인 집에 대해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을 막연히 이어가다 보니, 문득 ‘집’ 이라는 말의 정의가 궁금해졌다. 사전에 따르면 집이란, ‘사람이 그 안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기 위해, 일정한 공간과 구조를 갖추어 지은 것’이다. 이보다 명확하게 집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순 없을 것이나, 집에는 단순히 이러한 물리적 요소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분명히 존재한다.


집에 관한 생각은 자연스레 작년에 읽었던 하재영 작가의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라는 책으로 이어졌다. 작가는 자신이 태어나고 유년시절을 보낸 주택부터, 독립하여 서울에 얻었던 첫 자취방 그리고 현재 살고 있는 진정한 의미의 집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집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로 풀어낸다. 그중에서도 비슷한 나이 대에 같은 동네에 살았던 작가의 경험이 마치 내 이야기 같아서, 매 페이지마다 사진으로 남겨가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처럼 집은 기둥과 벽, 바닥과 천장 같은 물리적 요소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을 채우는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가 담겨있다.


20대는 흔히 인생에서 가장 젊고 아름다우며 찬란한 시기라 일컬어진다. 스물아홉이라는 20대의 끝자락을 밟고 서서, 나도 작가처럼 그동안 지내왔던 집들을 매개로 10년의 시간을 되돌아보고 싶어졌다. 곧 나이의 맨 앞자리 숫자에 하나가 더해진다는 사실에 슬퍼하기보다는, 지난 시간들을 잘 정리해 간직하고 곧 다가올 새로운 날들을 보다 기쁘게 맞이할 수 있도록 말이다.




갓 스무 살이 되어 두근대는 마음으로 상경했던 초봄의 어느 날을 시작으로, 꼬박 7년을 채워 서울살이를 했다. 웃고 울고 사랑하고 미워하며 보낸 긴 시간들 속엔 분명 행복했던 기억도, 다시 돌아가고 싶은 미련과 같은 마음도 존재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서울에서의 7년은 내게, 좁고 어두워서 끝이 잘 보이지 않는 긴 터널과 같은 이미지로 남아버렸다. 비좁고 해가 잘 들지 않는 방, 집이라고 이름 붙이기에 너무나도 부족했던 공간, 그 한 켠에 웅크리고 있던 나를 떠올리면 한없이 가엽고 또 아까운 마음이 든다. 그렇게 마음과 몸을 돌보지 못한 채 시간은 흘러갔고, 아직도 그 기억은 내 안 어딘가에 불청객처럼 자리 잡아 때로는 무기력으로, 때로는 우울로 형태를 바꿔가며 불쑥 찾아오곤 한다.


스스로에게 부여했던 의무가 끝났다고 생각함과 동시에, 나는 서울을 뒤로하고 도망치듯 나의 가족이 있는 예전 집으로 돌아왔다. 나를 만들고 지지했던 모든 것은 원래 있던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었으나, 정작 나 자신은 너무나도 달라져 있었다. 독립된 공간과 혼자만의 시간에 익숙해져 버린 탓에, 문 하나만 열면 누군가와 마주해야 하는 그곳이 더 이상 온전한 의미의 집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 누군가가 설령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가족이라 할지라도. 거기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고여 있다는 자조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더해졌다. 어느새 너무나도 안락했던 내 고향은 한없이 안주하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벗어나고 싶은 모순된 마음이 항상 공존하는 곳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혼자 사는 삶에 목말라 있던 내게, 제주라는 기회가 찾아왔다. 만약 다시 혼자 살게 된다면 무조건 창이 크고 해가 잘 드는, 되도록 넓은 방에서 살겠노라 늘 다짐했었다. 벽면을 차지하는 큰 창을 두 개나 가진 집을 얻게 되면서 나는 마침내 그 다짐을 현실로 이루게 되었다. 일주일 새 이사는 정신없이 이루어졌고, 마음에 쏙 드는 공간을 취향대로 채워 넣는 과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즐거웠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새 이불, 그릇과 같은 살림살이를 구매했고, 제일 큰 사이즈의 택배 박스들과 캐리어에 꽉꽉 눌러 담아 온 짐을 풀어 다시 차곡차곡 정리해 넣었다. 마치 막 입학한 초등학생이 된 것만 같은 신나는 기분으로, 그렇게 나는 차근차근 제주살이를 시작했다.




먹고 자고 생활하기에 좋은 , 매일 그것을 만들어 가는 단순한 일상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는 자신을 소중히 아끼고 건강한 삶을 영위할  있도록 하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일이다.  부분이 채워지지 않으면 결국 마음도 몸도 병들기 마련이라는 것을 어린 시절의 나는 알지 못했다. 그저 하루하루 버텨내기 바빠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생활은 이제  이상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독립을 하고  , 역시 혼자 산다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실감한다. 넓은 공간을 독차지하고 원하는 대로 하루를 만들어가는 기쁨에 비례해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여야  소일거리들이 늘어간다. 잠시라도 게으름을 부렸다가는 집이 그새를 참지 못하고 관심받지 못한 티를 내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할 만큼 나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을 사랑한다. 또한 앞으로  공간을 채워  나의 이야기들이 기다려진다.



해가 질 무렵이면, 제주의 서쪽을 바라보고 서있는 나의 집에는 시시각각 그 아름다움을 달리하는 노을의 풍경이 창문에 걸린다. 그 시간쯤에는 다른 일을 하다가도 어김없이 창 밖을 바라보게 된다. 그곳에는 늘 감동을 주는 하늘과 바다가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집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며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이 생활이 얼마나 이어질지 아직은 모르지만, 20대의 마지막 페이지에 쓰일 제주에서의 이야기가 이 집과 함께 아름다운 색으로 물들어 가길 소망한다. 그리고 앞으로 인생의 길 위에서 넘어지게 되더라도, 이곳에서 단단해진 마음으로 다시 일어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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