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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레쌤 Nov 25. 2022

통번역 출신 영어 강사의 은밀했던 과거 4

- Connecting dots -

3편 이야기 요약


1. 미국에서의 첫 친구를 사귀었다.

2. 낯선 땅의 그들은 생각보다 나를 환영해 주었다.

3. 나 혼자 세상을 경계하고 오해를 한 기분이었다.




4편 시작


미국으로 와서 처음 한 달이 지나는 동안은

눈 뜨면 출근해서 종일 스시와 롤을 만들고

퇴근해서는 잠만 자며 보냈었다.


한 달이 지나자 주변 지리와 동네 분위기, 사람들이 파악이 되기 시작했고 조금씩 '내 동네'라는 개념이 자리 잡히기 시작했다.


외국에 관광으로 놀러 온 것이 아니라 그냥 삶을 살려고 온 것이다 보니 생각 자체가 '즐김' 보다는 '적응'과 '순응'이 되어버렸다.


관광객들도 많이 오는 지역이었지만 괜스레 '나는 관광객이 아니니까'라는 생각이 더 커서

관광지에도 놀러 갈 생각도 하지 않은 채 하루하루 그렇게 평범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래도 매일 같이 가게에서 만나는 친구들 외에도 친하게 지내는 이웃들이 조금은 생겨서

오늘은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첫 번째 이웃은 경비 아저씨였다.


미국에서의 집은 한국의 흔한 복도식 아파트 같은 곳이었고 건물 입구에 커다란 출입문과 그 뒤에는 경비실이 있는 구조였다.


그래서 매일 같이 집을 오가며 경비아저씨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는데, 그 덕분인지 금세 아저씨와는 친해지게 되었다.


경비 아저씨는 괜스레 정겹게 느껴지는 인상이어서 환하게 웃으며 주먹 인사를 주고받으며 매일 1분 정도 이런저런 스몰 토크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하루는 오후에 일찍 퇴근하는 날이었는데 재료가 조금 많이 남아서 저녁에 집에서 먹으려고 롤을 조금 만들어서 포장 용기에 담아 온 적이 있었다.


집에 들어오는데 경비 아저씨가 퇴근 안 하고 있길래 인사를 주고받다가 포장해 온 음식 박스 두 개 중에 하나를 건네며 '한국인의 정'을 주었더니 그는 매우 감동받아하며 "와우 땡큐 서프라이즈 잇츠 크레이지 굿 보이"를 외쳤다.


다음날부터 그는 나를 "my best friend"라고 불렀고 그렇게 나의 지위는 승격(?)이 되었다.



참고로 내가 일했던 초밥집은 재미있는 문화가 있었다.


요리사의 경우 자기가 먹을 음식 정도는 가게 재료를 마음대로 사용해도 괜찮았고 맛에 자신 있으면 모두에게 시식 테스트 후에 가게 메뉴로 팔아도 되는 곳이었다.


판매 금액의 일부는 개인 인센티브로..ㅎ


그래서 나도 종종 한국에서 익혔던 레시피를 응용해서 창작 요리를 만들어보곤 했고 가끔씩 괜찮게 나온 요리는 경비아저씨에게도 건네며 냉정한 평가를 부탁하기도 했다.


자칭 미식가였던 그는 나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며 대부분은 냉정이 아니라 냉한 평가를 주긴 했지만 늘 바닥까지 싹싹 긁으며 다 먹어주는 모습에 요리사로서(?) 뿌듯함을 느끼곤 했다.


그렇게 그의 냉한 평가를 뚫고 살아남은 요리는 딱 하나였다.


요리명: 엄마와 아기


비법 소스로 버무린 연어알을 곁들인 원형 연어 초밥. 일명 엄마와 아들.


Mother and baby이라고 소개를 했더니 나보고 잔인한 놈이라고 했던 메뉴였는데 맛있다며 팔아보라고 적극 권해줘서 가게 식구들에게도 평가를 요청했고 결국에는 스페셜 메뉴로 가게에서 일주일 간 판매도 했다.


꽤나 인기가 있어서 쏠쏠하게 인센티브를 챙기기도 했던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훗날 내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아저씨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누구보다 빠르게 택시에 나의 짐을 실어주기도 했다.


정이 참 많은 미국 아저씨였다.


아직 친구들하고 작별인사 다 안 끝났는데..




두 번째 이웃은 옆집 엄마와 딸이었다.


옆 집에 살았던 아주머니와 그녀의 어린 딸은 내가 이사를 온 첫날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

내가 같은 층에 가는 것을 알고는 나를 처음 봤다면서


'새로 이사 왔냐, 반갑다, 나는 이름이 뭐다' 등

폭풍 같은 수다를 쏟아내던 분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가끔씩 엘리베이터에서 만나 잠깐의 스몰토크를 하는 엘리베이터용 이웃이 되었다.


그러다 하루는 출근길에 엘리베이터에서 만나 어김없이 스몰 토크를 하다가 그냥 인사치레로 내가 일하는 가게를 알려주며 밥 먹으러 오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그날 저녁 정말로 아기랑 함께 찾아와서 나만의 특별한 손님으로 대접을 한 적이 있었다.



내가 만들어주는 음식들을 하나씩 먹을 때마다 배시시 웃는 아기의 모습에 정신없이 바쁜 저녁시간임에도 가게 직원들 모두가 훈훈하게 미소를 지으며 일을 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엄마와 딸은 점심시간에 일주일에 두세 번은 찾아와서 점심 특선 메뉴를 포장해가는 단골손님이 되었고 이런 훈훈한 이웃사촌 간의 모습을 가게 보스가 제일 흐뭇해했다.


Lunch Special =  $10~15




세 번째 이웃은 홈리스 아저씨였다.


미국의 따뜻한 지역에는 홈리스들이 많은데 내가 있던 곳도 그런 곳이었다.


나의 출근길에도 홈리스가 한 명 살고 있었다.


홈리스를 처음 실제로 봤을 때의 느낌은 인터넷에서만 보던 홈리스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매일 같이 그 길을 지나며 보다 보니 무언가 조금 다르긴 했다.


그의 텐트 앞에는 이런 글이 적힌 팻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homeless, not hungry

(홈리스지만 배는 안 고픔!)


보통은 홈리스인 사람들이 팻말에 적는 말은 아래 사진처럼 homless, hungry 같은 문구가 대부분인데


이 아저씨는 배가 고프지 않다고 적어놨다.


그렇다.

그는 뭔가 달랐다.

몰골도 그렇게 썩 더럽지는 않았다.


짐도 꽤나 많았고 텐트도 꽤 컸으며

강아지도 한 마리 키우고 있었다.


그리고.. 무려 이동수단인 마트에서 훔쳐온 카트도 있었다.

홈리스 아저씨의 이동수단. 밤에 가끔 저거 타고 다니더라.. 드르륵..


하루는 호기심이 생겨서 출근길에 하이~ 하며 잠시 말을 걸었는데

"I don't need your money. It's okay man"

(네 돈 필요 없단다 꼬마야)

라며 먼저 손사래를 치길래


그게 아니라 그냥 not hungry라고 쓴 이유가 궁금해서 물어보고 싶었다고 하니


아저씨는 정부 때문에 집 없이 길에서 사는 것일 뿐이지 돈을 구걸하지는 않는다며 한 5분 동안 미국의 부동산, 경제상황에 대한 비판 쏟아내었다.


경제 번역 강의 시간에 열심히 공부했던 용어와 표현들이 들리길래 조금씩 맞장구를 쳐주었는데, 대화가 좀 통하는 것 같다면서 나보고 언제든 시간 나면 와서 같이 '빌어먹을 미국의 경제 정책'에 대해 토론을 해보자고 했다.


난 그런 거 몰라.. 무서워..


끝내 그의 경제 토론 초대에 응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출퇴근 길마다 반갑게 인사와 좋은 하루 보내자는 덕담은 주고받았다.


때로는 옆 동네에 산다는 그의 홈리스 여자 친구(?)가 놀러 오기도 해서 셋이서 사이좋게 길에서 내가 사 온 맥주를 마시기도 했고 종종 근처에 있는 바닷가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하루는 내가 주는 담배를 나눠 피우면서

"사람들에게 돈 구걸도 안 받는데 어떻게 밥은 잘 먹고 다니냐"는 나의 걱정기 없는 물음에


아저씨는 "노 뿌라블럼"을 외치며 비밀이라고 걱정 말라며 호탕하게 웃곤 했다.


가끔은 나에게 "give & take" 라며 어디서 사온 건지 유통기한이 임박한 커피 원두를 주기도 했다.


내가 본 홈리스 중에 제일 이상하지만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스탠퍼드 대학 졸업 축하 연설을 할 때 connecting dots라는 말을 했었다.

점과 점이 연결되어 선이 되듯이 과거의 일들이 모여 현재를 만들어 간다는 의미이다.


나에게도 이 모든 것들이 connecting dots였던 것 같다.


도피의 수단으로 배웠던 요리를 통해서

그렇게 와보고 싶었던 미국을 취업으로 올 수 있었고 그 요리 덕분에 친구도 생기고 주변 이웃과도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도피로 인해 포기했던 싫어지기까지 했던 영어 통번역이라는 전공 덕분에 미국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있었고 생각보다 빠르게 새로운 삶에 적응할 수 있었다.


삶은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것들로 인해 나를 힘들게도 하지만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것들 덕분에 살아갈 이유를 주기도 하는 그런 이상하고 재미있는 녀석이다.




- 투 비 컨티뉴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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